시바의 눈물(세사르 마요르키)

현실과 초현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 성장소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뜻하지 않게 찾아온 하비에르의 여름방학 여행에 동행하면서 마치 나 자신이 모험을 한 것처럼 신나고 즐거웠다. 더불어 앳된 소년티를 벗어던지고 사랑을 알고 타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하비에르를 지켜보는 것도 흐뭇했다.
‘음탕한 돼지’라 자처하는 형의 모습에서 요즘 아이들을 읽을 수 있다면,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하는 하비에르는 순수하면서도 조금은 단순한, 하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를 아는 멋진 소년이다. 비올레타와 경쟁적으로 책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특하던지.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토론하고 서로 돌려보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
70년 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비밀에 싸인 목걸이 ‘시바의 눈물’ 그리고 외사촌들과의 낯선 생활에 적응하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씨줄날줄로 얽혀 있으면서, 성장소설이라는 큰 줄기를 이어나가는 이 책을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인상 깊은 구절>

(8) 유령은 정말로 있었다. 다만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 뿐……. 하긴,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일도 많지 않은가.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른 채 내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하루아침에 세상이 그 전과 달리 보일 때도 허다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대부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그것이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1969년, 그해 여름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병에 걸렸고, 인류는 달에 도착했으며, 나는 유령을 보았다.

 이렇게 아이러니한 과거와 현재, 초현실과 현실의 뒤섞임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시작부터 독자의 마음을 끌었다. 매우 매력적으로.


(18) 내 눈에 비친 여자들이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여서 풀려고 하면 할수록 도저히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는 남녀 공학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학생과 사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자애들에게 손톱만치도 관심이 없었다. 축구도 좋아하지 않고, 비석치기도 할 줄 모르며, 심지어 앉아서 오줌을 누기까지 하는 여자애들은 그저 따분한 별종에 불과했다.
그런데 생각이 차츰차츰 바뀌거니, 여자애들에게 슬슬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막연하던 그 호기심이 나중에는 아주 강렬해져서 나 스스로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급기야는 슬금슬금 겁이 났다. 이러다 형처럼 남성 호르몬 과다증의 얼간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자애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니,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여자애들이 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조여들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런 말을 하고 있자니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다. 마치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처럼.

 이 소설이 진정한 성장소설임이 여기 이 문단들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비에르가 그래서 더 친근감이 가고, 귀엽다.


(62) “절대적인 법칙 앞에서, 어떤 사람은 체념을 할 테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서 방관하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영구 동력 장치를 만드는 거야. 이러한 기계 장치들 중에서 만약 어느 것 하나라도 기적적으로 작동이 된다면 열역학 제2법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날 테니까. 너랑 나랑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해도 말이야.”
“그건 마치 성배(신성한 술잔)와 같은 거죠? 성배가 없는 걸 알면서도, 아서 왕의 기사들은 성배를 찾아다녔잖아요. 성배를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중요했지, 찾고 못 찾고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죠.”

 왜 하비에르가 베아트리스의 목걸이를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복선이라고 할까? 첨단과 과거를 오가며 종횡무진하는 주인공의 가장 큰 장점은 공상을 헛되이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애들이 가진 자기중심적 즉흥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비에르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듯..`


(63) “여자들은 우리보다 똑똑하거든. 그리고 훨씬 더 현실적이지. 땅바닥에 두 발을 잘 딛고 있는 여자들에게는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멍청해 보일 뿐이야. 어쩌면 여자들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그러나 남자들은,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꿈꾸는 걸 좋아하지. 안 그러니? 너를 예로 들어 보자꾸나. 넌 공상 과학 소설을 즐겨 본다고 했어, 그치? 그 말의 의미는 곧 네가 몽상가라는 거야. 물론 나도 몽상가이고.”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우리 반 남자애들을 좀 더 알 것 같다.

(102) <노인과 바다>는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화성 연대기>만큼이나 아름다고 슬픈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두 작품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제의 장미 꽃잎처럼, 시간이 흘러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 후부터, 비올레타와 나는 일종의 문학 십자군 운동에 들어갔다. 내가 어떤 책을 비올레타에게 주면 그녀는 다른 책을 내게 주었다. 내가 다시 새로운 책으로 화답하면, 그녀는 다른 소설로 곧바로 응답했다. 읽을거리만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우리는 마치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치열하게 굴었다. 반드시 훌륭한 작품을 고른 다음 상대방한테서 읽혀서 한판승을 거두어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 멋진 우정, 또는 사랑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만남 흔치 않다.


(181) 비야 칸델라리아에 머무는 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날 밤 식탁 너머로 언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일은 나중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자칫하면 이모부를 영화 속에 나오는 악역처럼 여길 수도 있다. 실제로 이모부는 과거의 일에 얽매여 옹졸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모부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 이유는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배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 주인공이 외사촌들과 만나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눈에 띄게.


(267) “때로는 강렬한 감정 때문에 고통을 맛보기도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창피할 것 없어. 하비에르.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좋으니까…….”

✎ 순수하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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