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꿈을 키워가는 아이

우리반 쉬는 시간, 여러 선생님들의 말소리가 가득하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만 모여 지내는 교실이라 당연히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반에는 나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똑같거나 어설픈 구절이 반복되어 들린다. 아이들이 연습을 시작한 모양이다.

세태가 개인기를 요구해서인지 올해 아이들 중에는 노래와 춤, 성대모사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한 춤 하는 승용이와 성대모사에 능통한 양기, 온갖 춤을 섞어 자신만의 몸짓으로 학교 댄스계를 평정한 형식이, 성대모사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똑같이 흉내내는 규훈이는 반과 학교에서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내 목소리나 말버릇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그래서 개인기에도 끼지 않는다.

그 중에 규훈이는 세심한 관찰력과 꾸준한 연습,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떤 선생님이든지 몇 번의 만남으로 성대모사는 물론이고 특징적인 행동까지 보여준다. 당연히 교감선생님은 물론이고 새로 부임한 기술 선생님 역시 단 몇 시간만에 규훈이의 재주를 돋보이게 하였다. 규훈이의 성대모사를 들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특징과 성격까지도 다 알 수 있다.

나와 규훈이는 인연이 많다. ‘인과 연’으로 따지면야 우연 아닌 아이들이 없겠지만, 규훈이의 학기 초 모습은 나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임시 반장으로 활동하고, 그 역할이 끝나자 여세를 몰아 학교 선도부 활동을 시작했다. 또 ‘진로’에 대한 목표도 분명해 수업시간이나 집에 가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규훈이의 다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면서 선도부 모임에 늦게 나오기 시작하고 그만두게 되었으며, 1차(중간)고사 이후에는 지각 때문에 여름방학 때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나와 보낸 아이가 되었다. 우리반은 지각을 10분 할 때마다 1시간씩 남아 공부하고 가는 벌이 있었는데 규훈이는 2시간 이상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훈이는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고 있었다. 아니 목표를 수정하고 있었다. 성대모사에 뛰어난 재능을 최대한 살리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알아보니 규훈이는 그 사이 음악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노래자랑’ 대회에도 참가하고, 꾸준히 노래와 춤을 연습해 왔었다.

벌칙으로 남아서 공부하는 규훈이를 보며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공부는 이미 손을 놓아 버렸고, 그렇다고 흉내만 내며 학창시절을 마냥 보내게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편씩 개그 대본을 쓰고, 그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첫 번째 개그는 어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의 버전으로 바꿔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규훈이에게 강한 성대모사류의 개그였다.

나름대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꿀 수 있다고는 하는데 아이디어가 부족하여 금방 막히고 말았다. 우린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기로 했다.

방학 동안 규훈이의 개그 대본이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특별한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개학하고 나면 자주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할 것 같다. 아이들 속에서 부딪치다 보면 아이디어나 재주도 더 단련될 것이고 자신의 길도 깊이 고민하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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