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 감면 신청서를 제출하며

개학한지 일주일. 이젠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듯 싶다. 아이들도, 나도 수업시차에 적응하기 시작한 듯 싶고 서로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학기초에 품었던 학급운영과 국어수업의 목표,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역시 학기초에 품었던 다짐을 잊어버려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2학기 개학은 좀 애매하다. 나와 같은 국어교사에게는 새로운 교과서가 시작되기에 계획과 다짐의 시기이지만 현실은 1학기를 마무리하거나 1학기와 마찬가지의 일이 지속되기에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다. 결국 나만 마음이 급한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업무로 바쁜 새 학기를 보냈다. 아이들을 관찰하고 아이들의 변화를 읽어내고 원인을 찾아내야 하지만, 봉사활동 누가기록에, 방학숙제 평가에 이것저것 일이 많다. 게다가 교장선생님 인사이동까지 있어 새 학기 홍역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마음이 괜히 급한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는 아이들과 '학비감면 신청서'를 가지고 숨바꼭질을 했다. 신청서를 낸다고 모두 학비감면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 형편을 알고 있는 담임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학비 감면'이 부끄럽거나 귀찮은 일이 아니라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며, 안내서를 꼭 부모님께 갖다드리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결국 가정방문 때의 형편을 기억해 보는 수밖에.
가정형편과 아이들의 표정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래서 가정방문은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특히 지금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부모의 빈부가 학업성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아닌가.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이와 부모들의 친밀도와 함께 경제사정 역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우리반에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점심을 못 먹는 아이도 있고 비싼 수술비 때문에 아버지는 집안에서 요양하고 어머니가 식당일로 생계를 꾸리시는 아이도 있다. 다른반 아이들도 이 사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 그러고 보면 '학비감면'은 참 고마운 제도이다.
하지만 교육은 국가가 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굴절의 역사와 경제정의, 분배 정의가 왜곡된 나라에서는 교육이라도 국가가 책임져야 어느 정도 사회생활의 출발선이 비슷해진다. 그래야 보수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굳이 몇 년을 정해 의무무상교육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돈이 모아지는 대로 필요한 모든 학생들의 학비를 보조해 주어야 한다. 왜 날짜를 채우는지.

이번 2학기는 학비감면을 위한 예산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고, 컴퓨터를 구입해 정보화 사업에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비에 대한 부담부터 줄였으면 좋겠다. 음료수로, 기름으로, 주민세로 교육세를 걷었으면 국가가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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