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는 이유
- 행복한 글쓰기/가르치고 배우며
- 2003. 3. 21.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학급담임으로, 교과담임으로 만나는 일은 흥분되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다른 직업에 비해 끊임없는 노력과 성숙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이 아이를 가르치는 우리 직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년간 함께 할 우리반은 남학생 29명으로 구성되었다. 나이 29와 30의 차이만큼 29명이라는 숫자는 아이들과 한결 가까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정말 아이들을 한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만큼 학교의 3월, 담임은 아이들을 파악하느라 바쁘다.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시작이기도 하지만, 급식이나 학비 지원 등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서류 신청이 거의 이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류를 잘 신청하지 않기 때문에 담임들이 미리 파악해서 신청해야하는데 '학부모 설문지', '가정환경조사서' 등은 아이들의 환경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여기서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이 시작된다.
하지만 진정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개별적인 상담과 지속적인 관찰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3월 중순은 아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로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임시반장과 부반장을 하겠다는 아이들은 돌발적인 행동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반에는 이른바 '짱'이 있다. 개학 첫날 종례 후 아이를 불러 아이의 힘을 인정해 주고, 그것을 올바른 통솔적으로 발휘해주길 조언했다. 아이 역시 나를 모르는 처지도 아니라(아이의 둘째형을 가르쳤고 1학년 때부터 여러 가지 일로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발 문제뿐 아니라 복장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다음날 임시반장이 되었다. 또 작년에 담임 선생님께 말을 함부로 했다가 나에게 크게 혼나기는 했지만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고 임시부반장을 자원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반장, 부반장을 자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두 녀석이 둘째 주 월요일에 가출을 했기 때문이다. 짱 녀석은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해 뛰쳐나간 듯 싶고, 다른 아이는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것이 화근이 되어 뛰쳐나간 것 같다. 거기에 작년 게임아이템 판매로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녀석과 한 명이 더 합세했다.
10일이 가까운 시간을 아이들은 학교 주위를 맴돌았고, 아이들의 부모와 함께 찾기 시작한지 며칠 후 아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네 명 중 세 명을 학교로 데려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집을 왜 나왔을까? 나름대로 이유를 댔지만 장기적으로 가출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는 없었다. 사실 우리(아이들을 포함해서)가 하는 일에 꼭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니 길게 묻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다니기 싫다고 한다. 사회의 시각이나 미래를 지적하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니 그제서야 못이기는 척 다니겠다고 한다.
잠시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고 학부모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다시 만난 부모들은 마음 고생이 심해 아이들과 몇마디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도 곧 큰 소리로 울었다. 아마 아이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자식에 대한 낯설음과 서운함, 반가움이 교차했기 때문이라. 잠시 일이 있어 나갔다 학교에 들어오니, 나머지 한 녀석도 웃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잡아 주기를 바랬던 것처럼 특별한 저항없이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고, 또 한 녀석은 제 발로 들어왔다. 학교로 돌아온 다음 날 아이들에게 공책을 한 권씩 주고 그동안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계획표를 만들어 실천하도록 하고,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벌도 주었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난 후의 소감?
집을 나가고 학교에 오지 않으면 신나게 놀 수 있어서 좋을 줄 알았는데 여러 날 시간을 보내고 보니 재미가 없어져서, 친구들이 있고 적당한 일이 있는 학교가 좋아서 돌아왔다고 썼다. 아이들을 걱정하며 며칠간 찾으러 돌아다녔던 일이 '조금'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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