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더 소중한 세상

“거의 하루의 반은 공부를 한다. 지겹고 서럽다. 학원 갔다 와서 컴퓨터하면 아빠가 뭐라고 하고 서럽다 못해 난 너무 불쌍하다. 지금도 빨리 자고 싶다. 또 잠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이다. 지루한 생활이다. 나도 학교, 학원 땡땡이 치고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중학교에 들어와서 부쩍 많이 한다. 중학교 생활은 너무 힘들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는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우리반 아이들 일기장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너무나 많이 들어 그만그만한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고,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이면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중학교 1학년의 글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학교를 옮기면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생활하게 되었다. 작은 키에, 남녀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어울려 놀거나, 사소한 일에도 선생님에게 와서 이르고, 작은 꾸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지만, 1년 목표가 ‘몇 등 이내’라고 심각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입시 경쟁에 뛰어난 중학생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고 글쓰기의 내용에도 꾸밈이 없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을 쉬지 않고 오가며 자신의 생각이 없어지고 틀에 박힌 글에 남들의 생각을 죽도록 외우고 다닐 것이다. ‘성적’이라는 한 줄에 보다 앞으로 서기 위해 점점 자기 주관과 생각을 잊고, 자신감을 잃고, 이기적인 아이로 변해갈 것이다. 우리는 아이의 꿈을 키워주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삶의 주체’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학습시키고 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하게 진행될 것 같다. 얼마 전 교육부 장관이 13조가 넘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학교에서도 수준별 보충수업, 교과관련 특기적성교육, 자율학습 등을 실시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학교에서 영·수를 중심으로 보충수업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갑자기 남구 ㅈ중학교의 사례가 모범이 되어 ‘그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학부모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밀어붙이고 있다.

아이들은 너무 많이 배운다. 소화할 수 있는 학습량을 뛰어 넘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면서도 현재와 같이 ‘서열화된 입시 경쟁’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 남보다 더 빠른 선수학습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의 서열’이 없어질 때까지 정규 수업 외 학교 보충수업, 학원과외, 개인과외, EBS특강을 더 많이 시킬 것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과도한 선수학습의 결과 수업에 흥미를 붙이지도 집중하지도 못한다. 더욱 큰 문제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도 미래에 대한 꿈도 없다는 것이다.

성적을 올려 갖고 싶은 것을 부모님에게 받는 것이 유일한 성취동기이다.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 아이들과 “어머니 당신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택)”라는 시를 읽고 ‘어머니’에 대한 생각 그물 활동을 했다. 어머니의 ‘사랑, 고마움, 미안함’보다는 ‘돈, 잔소리, 매, 다툼’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란다. 학교의 비정규 수업이나 학원이 아이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고 있는 만큼 아이들의 꿈과 가족은 멀어져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아이나 학교, 가정 모두 위험하다. 아이를 학교나 학원으로 떠미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사회를 이야기하고, 인생을 계획하며, 자연을 노래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내가 활동했던 연구모임의 회장 선생님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고등학교도 공립학교를 선택했다. 보충수업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공부를 시켜 점수를 몇 점 올리는 것 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과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연습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필요하다. 물론 아이의 선택이나 결정은 전적으로 아이의 ‘꿈과 의지’가 기준이다. (2004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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