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하기 힘든 일

어중간하게 끝난 단합대회였지만, 며칠 동안 고민했던 행사였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라면 이미 체육대회나 단합대회로 충분히 시끄러웠겠지만, 신설학교라 굵직한 행사가 많아 아직까지 조용한 학교.

이런 분위기를 처음으로 깨는 학급 행사라 부담이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 학급놀이를 찾아보고, 관련 책도 참고해 먼저 함께 참여하는 '보드가드 피구', 모둠끼리 연대해 활동하는 '아메바 달리기', 마지막으로 '모둠별' 줄넘기 시합을 계획했다. 크기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모둠끼리 호흡을 맞추는 놀이를 주로 계획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단합대회 날짜가 다가오자 몇몇은 집안 일이나 학원과외로 참여하기 힘들다고 했고, 또 몇몇은 갑자기 아프거나, 집안 일이 생겨 먼저 들어간다고 했다. 항상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갑작스러움'이 문제다. 설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청소를 빨리 끝내고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맛이 없는 비빔밥은 경험하지 못했다. 집에서 밥 따로, 반찬 따로 먹으면 맛이 없는데 학교에서 모여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먹으면 참 맛있다.

학급은 그런 곳이다. 공부를 잘 하거나 못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못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못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못하거나 또, 속이 깊거나 개구쟁이이거나 서로 어울려 맛있는 비빔밥처럼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맛이 없는 비빔밥은 없지만, 속시끄러운 학급이 많은 것은 반성해 볼 일이다.

 

간단하게 자리를 정리한 뒤 보디가드피구를 했다. 아침까지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갑자기 환해지면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햇빛, 한마디로 뜨거웠다

남자는 남자만, 여자는 여자만 맞출 수 있는 다소 생소한 방식이라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곧 남학생이 던진 공을 여학생이 막거나, 여학생이 던진 공을 남학생이 막아 주기 시작했다. 남자건 여자건 자신의 장점을 살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좋겠다.

한 가지! 피구를 할 때 구역 밖에서 공을 던지는 남학생들 중 자신이 잡은 공을 특정 학생에게 돌리거나 안쪽에서 뛸 때 특정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만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번을 정하는 것을 보았다. 학교에서만큼은 똑같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겠다. 결과는 21로 짝수팀이 이겼다.

 

보디가드 피구아메바 달리기단체 줄넘기를 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너무 더워, 자유스럽게 단체 줄넘기를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더워서 얼굴을 찡그렸던 아이들도 줄이 돌아가자 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명, 나중엔 열 명까지 되는 대로 뭉쳐서 넘고, 걸리면 또 나가고 그렇게 자유롭게 줄넘기를 했다.

줄넘기는 실수한 사람이 금방 표가 난다. 그 사람의 다리에 줄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줄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발목에 걸린 줄을 보며 무척 부끄러울 것 같다. 하물며 '너 때문'이라고 지적하면 더운 날 더 부끄러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을 돌리는 사람도 줄을 넘는 사람도 차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열 번을 넘기지는 못했지만, 함께 박자를 맞추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단합대회를 시작한 지 1시간 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애초 모둠이 깨져 모둠 대항 경기를, 날씨까지 더워서 하기가 힘들었다. 선풍기도 없는 교실에서 손을 부채 삼아 다음 일정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강당에서 나머지 행사를 하자, 책상을 밀치고 수건돌리기나 짝짓기를 하자, 국어1실에서 동영상을 보자, 더우니 집에 가서 쉬자.

 

밑천이 떨어지자 머리가 멍해졌다. 날씨가 이렇게 더울 줄 몰라 실내 활동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 놀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이들과 더워서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아이들과 서로 의견 조정하다 학급활동을 정리했다. 다음에 더 재미있게 놀라자는 말을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참 허무했다. ‘허무란 단어의 뜻을 실감했다.

 

사실 한 번 모여 단합을 이루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한 번 했다는 교사의 만족감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또 단합대회를 해야 '단합'이 된다는 것도 문제다. '한 번'의 행사에 모든 것을 걸면 허무만 진해질 뿐이다. 청소를 하면서도, 숙제를 하면서도, 수업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단합'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동안 학교를 옮기며 능력을 뛰어 넘는 업무를 맡으면서 소극적인 차원에서 학급을 운영했다. 특별한 사고 없이 잘 흘러가기를, 또다른 의미의 무사안일주의다.

8개나 되는 모둠을 편성했지만, 그 모둠과 상관없이, 학급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니 모둠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학급회의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중심이 돼 활동하는 자리는 활동을 계획하는 것에서부터 준비하는 것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다.

오늘 1학년 1반 모둠 구성과 할 일을 보며, 각 모둠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 활동이라도 먼저 계획해 보고 자치활동 시간에 이야기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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