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조남주 외)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여러 상황이 담긴 단편집
- 2018. 12. 17.
페미니즘에 관련된 7개의 소설을 묶은 단편집이다.
이중 '현남 오빠에게', '당신의 평화', '갱년'에는 이 소설이 표방한 '페미니즘'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여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이른바 큰 그림(빅 빅처)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남자 친구,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여자들끼리 서로 양보하며 살라는 가부장, 여자를 스트레스 해소로 대상화하는 등 모녀로 이어질 것 같은 불편함과 부당한 현실이 잘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자리에', '이방인'은 이 이야기가 왜 페미니즘 소설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획자의 말에 따르면 남성 중심의 이야기에서 여성 중심의 능동적인 인물을 그렸다는데 공감되지 않았다.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여장남자대회를 통해 이유 없이 학살당한 여성들의 한과 굴레를 나타내고 있고, '화성의 아이'는 SF적 요소를 통해 새로운 가족 관계를 그리고 있다.
개성적인 여러 단편들이 충분한 토론거리가 될 것 같다.
<조남주, 현남 오빠에게>
(38)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 읽다보면 마지막 구절이 참 통쾌하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 둘의 관계는 강현남의, 그야말로 철저한 '기획' 끝에 '만들어진' 관계다. 그래서 덧붙여진 작가노트도 공감이 간다.
(39) 느낌표를 찍고 마지막 문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런데 강현남 씨가 스토킹을 하면 어쩌지?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놓았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에 대한 언급을 보며, 개연성이 클 정도록 캐릭터가 살아 있다.
<최은영, 당신의 평화>
(51) 그가 말했던 현망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요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힘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70) "자고 가기로 했잖아." 유진의 아빠가 말했다. "엄마랑 좀 그만 싸워라. 설거지하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여자들끼리 신경전 벌이고 그래. 서로서로 양보하고 그래야 가정이 평화롭지."
✎ 여자는 시댁이냐 친가냐에 따라서도 다른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공통되는 것도 있다. 평화로운 가정을 위해 참으라고. 그래서 가부장제에 문제 의식을 가진 '선영'이 가부장제의 한계를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투쟁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김이설, 갱년>
(111) 학교마다 그런 여자애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네. 글쎄, 어느, 학교에선... 하여간 요즘 여자애들은 그래서...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여자애들은 ... 윤서 엄마는 봉인이 풀린 듯이 거침없이 소문을 풀어놓았다. 윤서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성적에 목숨 건 여자아이는 되바라진 여자애였고, 성적에 관심 없는 여자애들은 아이들이나 따라다니면서 화장이나 하는 골빈 여자애였다.
(113) "그럼요, 우리 윤서는 그저 순진해빠져서 공부밖에 몰라요"
윤서는 되바라진 여자애구나. 그럼 윤서 엄마는 어떤 여자 아이였을까. 나는 또 어떤 여자아이로 사람들에게 평가받을까. 그 평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왔던 걸까. 그나저나 그 평가는 누구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좋은 성적에 대한 보상으로 성관계를 제공하는 부모가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남자는 공부 잘 하면 되고 그래서 그 외는 허물이 아니고, 여자는 예쁘면 되고, 그래서 여자가 노력하면 독한 것이 되고. 그렇게 '여성'은 평가받고 대상화되도록 길러지고, 여자에서 여자로 대물림된다. '생리'는 그 시작이다. 그래서 작가는 '갱년기'를 문제를 인식하고 뭔가 해 봐야겠다는 '경년기'로 받아들인다.
<최정화, 모든 것을 제자리에>
(150) 물론 나는 현장을 정리하라고 보내진 게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단지 현장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오는 것뿐이었다. 만일 거기서 이상한 장면이 나타난다면 그대로 화면에 다믄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현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일단 그곳을 정리해야 했다.
(152) 그것은 내 손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잘못 놓인 다른 사람의 손이었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손이었다.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남자의 손은 내 손목이 붙은 채로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 철거 예정 건물을 기록하는 '율'은 손바닥에 습진을 달고 산다. 그래서 여자가 손관리를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한다. '율'의 습진은 사진을 찍기 전 먼저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두도록 정리해야한다는 여자로서의 강박관념을 나타내는 것 같다. 끝부분의 남자의 손은 스스로 의식하는 남성적 시각에 대한 자각인 것 같다.
<손보미, 이방인>
이 소설이 왜 페미니즘 소설인지 어렵다. 능력이 뛰어난 여자 수사관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자살하고 연이에 남자도 자살한다. 그로인해 징계를 받는다. 피의자의 자살로 의욕상실에 빠져 있넌 여자주공인은 남자 동료의 격려로 다시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남자주인공 중심의 이야기들이 로맨스로 빠지는 뻔한 장치에서 벗어난 여자주인공의 홀로서기를 다루고 싶었다는데, 그런데 재미가 없다.
<구병모,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240) 네소스의 함정에 빠진 헤라클레스, 아폴론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마르시아스,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여인들의 원한을 산 오르페우스, 도래할 새 봄의 파종을 위해 제 몸을 바치는 디오니소스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살가죽이 벗겨지거나 육신이 찢어진 허구의 이야기 속 남자들은 하고많았으나, 이 순간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표의 의식에 떠오른 것은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기고 굴 껍데기와 사금파리로 살이 도려내어져 살해당한 수학자 히파티아, 실존했던 그녀였다.
✎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들에게 여장남장대회 안내장이 나간다. 그리고 불편한 옷과 얼굴, 힐을 신은채 도망다니다 결국 죽게된다. 여성의 굴레를 상징하는 것일까? 화장이나 옷이 벗겨진다는 것은 그런 굴레를 벗어난다는 뜻일까?
<김성중, 화성의 아이>
지구가 아닌 공간에서 여성들끼리의 편안한 삶을 그리고 있다. SF 요소가 있는데 잘 정리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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