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있는 녀석들(양호문)

 

얼마 전, "최강배달꾼"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헬조선에 희망이 없어 호주로 이민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여주인공과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서울 전역을 돌며 배달하는 남주인공이, 음식점까지 장악하려는 대기업에 맞서, 동네상인들과 상생하며 배달의 전문성을 키워 창업하고 성공하는 이야기였다.해피엔딩 이야기에 비현실적이니, 그렇게 착한 배달꾼이 어디 있냐는 등 비판적인 댓글이 많았다. 공감하면서도 한편 홍세화 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나라 택시기사들의 인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든 사회의 책임을 비판했던 이야기가 함께 떠올랐다.

 

왜 우리나라가 헬조선일까.생각해 보면, 승자독식으로 인한 부의 집중, 따라서 부의 분배가 사회 전반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즉 대기업의 독과점의 그늘에, 불필요해 보이는 유통단계,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세대간의 경쟁들, 모든 문제가 심각하고 해결이 시급한 일이지만, 투표권도 없는 청소년들은 그나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작가는 전작("꼴찌들이 떴다", "달려라, 배달민족", "오 마이 퓨쳐")에서도 이런 사회와 학교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였다. 그러면서도 삶을 부대끼며 성장하는 건강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려왔다.이 책에 이야기하는 문제상황은 전작에 비해 좀더 나아보이는, 그래서 보통에 가까운 청소년을 중심인물로 삶과 부대끼며 자신의 진로를 찾고 스스로 힘으로 독립하려는 강후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알바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 '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을'의 성인들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을'의 고등학생들의 삶이란, 천민적 자본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게 이것이 억지스러운 것이 아니라 실체를 잘 드러냈다는 공감도 된다.

 

자유학기제나 자유학년제 등 다양한 체험을 강조하는 시대다.그렇다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스스로 일어나려는 학생들이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와 복지제도 속에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129) 지난 한 학기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녀보니까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기 집이 아니라 마치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가서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영혼이 증발된 허깨비가 되어 멍한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흥미가 없으니 당연히 공부가 잘되지 않았다. 열심히 따라가는 급우들이 부럽기는 했다. 그냥 모르는 척 따라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강후는 자기가 가야 할 길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량 정비 외에 정보 통신이나 영상 미디어, 환경보호도 구미가 당겼다. 학기 초에 실시한 적성검사에서는 금융 계통이 맞을 것 같다고 나왔었다. 너무나 생뚱스런 결과였다.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다양하게 체험하며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171) 세상에 이럴 수가? 똑똑하다고 자부해왔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니? 강후는 자신에게 화가 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러면 저기서 구두 수선하는 조그만 아저씨가 바로... 으히히히!"
"야, 왜 웃어? 구두 수선하는 게 뭐가 어때서 웃는 거야? 너네 아버지는 뭐, 대학 총장이야? 장관이야? 대통령이야?"
"아아! 미안해요, 누나! 내가 또 실수를."
얼른 입을 다물고 사과했다. 그랬는데도 은림이 누나는 한참이나 흘겨보았다. 이마에 '이 철없이 촐랑거리는 놈아!"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이고서.

 

 부모세대들 못지 않게 우리 청소년들도 직업의 귀천 의식이 드러날 때가 많다. 인간의 삶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를 마련해야겠지만 사회경제적으로도 기본적인 복지제도에를 바탕에 둔 임금차의 최소화(독일 같은) 같은 것도 필요할 것 같다. 

 

(216) 강후와 보라, 두범이는 3대 마왕에게 급료를 100퍼센트 다 지급해달라고 거세게 항의를 해보았다. 소용없었다. 노동부에서 발표한 청소년 알바 십계명을 들어가며 신고를 하겠다고도 했었다.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에 고발을 하겠다는 말도 해봤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법대로 하려면 해보라고 큰소리쳤다. 은림이 누나의 주도로 정말 안심알바신고센터로 신고를 했었고, 지역 노동사무소에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근로 계약서가 없다고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고딩 알바생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아예 근로자 취급을 하지않고 그저 일회용 소모품 정도로 여겼다.
기고만장해진 오리발은 인근 업주들을 끌어모아 반강제로 '일심회'를 결성하더니 알바생들의 근무 시간과 임금을 일방적으로 정해버렸다. 근로 계약서는 당연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자기들이 내건 조건으로 일을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라고 횡포를 부렸다. 또 일심회에 들지 않은 업주들은 심하게 왕따를 시켰고 수시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가 정글과 뭐가 다른가.

 

(228) "뭐야? 간호 기술? 그게 뭔데?"
"간호사 되는 거, 남자 간호사!"
"뭐어? 남자 간호사? 미친놈! 고추 떨어질 소리 하네. 의사가 아니고 겨우 간호사야? 참 꿈도 크다! 안 돼! 아버지가 알면 다리 부러지려고 그런 소리를 해? 지금 그 학교 열심히 다녀서 대학을 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네 뒷바라지 해줄 테니."

(229) "좋아. 아버지한테 말해서 허락을 받으면 엄마 찍소리 하기 없기다?"
숟가락을 식탁에 던지듯 내려놓고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고를 나온 아버지는 실업계 출신이라는 것과 대학 진학을 못했다는 것 때문에 사회에서 심한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평생 놀고먹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중1 때부터 강조를 해왔었다. 험악하게 굳어버릴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니 아버지에게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요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248) 은림이 누나가 말했듯이 일에는 순서가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해 차분히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것이었다. 먼저, 이따가 피로회복제라도 사 들고서 세탁소로 찾아가 아버지한테 자기 뜻을 확실히 전달할 작정이었다. 자신이 먼저 닫혀 있는 마음의 철문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볼 것이었다. 어쩌면 다소 말다툼이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갈 길은 내가 택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니까! 아무튼 아버지와 담판부터 지어야 될 것 같았다.
"나, 꼭 남자 간호사가 될 거야.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섰어!"

 

 주인공 강후는 개를 좋아하면서 수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간호사가 자신에게 맞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실은 강후가 '간호사'로서 인턴을 조금이라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채워야하는 봉사활동을 인턴활동과 연결시켜 볼 수는 없을까.

 

별 볼 일 있는 녀석들
국내도서
저자 : 양호문
출판 : (주)자음과모음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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