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의 파수꾼(김은진)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17. 8. 20.
“타인의 시간을 빼앗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265)
묵직한 말이다.
작게는 시간 약속에서, 크게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우리 국민들에게 빼앗은 것이 단 한 번뿐인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실감난다. 단 한 번뿐이기에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게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하고, 선택하고, 노력하고, 아쉬워한다.
이 책에는 타인의 시간을 빼앗는 두 시대의 폭력이 ‘타임 슬립’을 통해 이어진다.
먼저 현재의 ‘햇귀’는 겉으로는 모범생처럼 행동하지만, 햇귀에게만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태후의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또 일제시대의 ‘수인’은 넉넉한 가정에서 가수를 꿈꾸며 행복하고 살고 있었으나 일본 경찰과 앞잡이의 계략에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옥고를 치르며 일본 경찰의 가정부로 산다. 그러고도 정신대에 끌려가 온갖 고통을 당한다.
현재에서 햇귀는 정신대 할머니 댁에 봉사활동을 하다 ‘회중시계’를 통해 ‘타임 슬립’을 하며, 고통만 더해지는 수인의 미래를 막으려고 한다.
결국 수인의 미래는 달라진다. 햇귀 역시 태후에게 여전히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이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임을 깨닫고 저항할 마음을 먹는다.
햇귀와 수인의 시점에서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돼, 폭력에 노출된 햇귀와 수인이의 아픔과 상처가 잘 느껴진다. 또 ‘타임 슬립’이란 소재는 이야기를 허황되게 보일 수 있으나 결국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상징한다. 물론 우리에게 회중시계는 없다.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의 등장인물의 고민과 선택을 보여주는 ‘책’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외에 눈이 가는 인물은 ‘하루코’이다.
하루코는 식민지 전형적인 일본인이면서 수인이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한다. 그래서 햇귀를 통해 정신대에 끌려갈 위기의 수인을 돕기 위해, 잠시 수인이 역할을 한다. 물론 사람들을 속여 정신대를 구성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모든 사실을 확인하자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하루코는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일반 일본인 사이의 괴리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시각이 아닌, 식민 지배를 당한 주변국민들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깊이 반성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정신대를 비롯한 강제 동원의 역사가 과거사로만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일어나는 폭력과 연결돼 역사소설이면서도 청소년소설도 잘 연결되었다.
(102) 그러니까 유메의 말은 고장 난 회중시계가 타임머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유메는 그 시계를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내 경험과 유메의 논리를 합해 보자면 그 회중시계가 타임머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체 무엇이 거대한 에너지로 작용했을까? 고장 난 회중시계의 태엽을 감은 건 바로 나. 그렇다면 내가 바로 거대한 존재?
✎ 봉사활동을 하다 발견한 회중시계를 돌리자, 타임 슬립이 일어났다. 현실에서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로 생존에 온힘을 써야하는 엄마로 인해, 가정에서조차 학교폭력을 당하는 햇귀이지만, 무엇이든, 어떤 것에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대한 존재라는 뜻일까.
(234) 하쓰. 하나코. 할머니는 아직 수인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름을 온전히 되찾았다면 매일 밤 일본 군인들에게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까?
인생은 수수께끼투성이다. 각자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가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후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이유가 수수께끼였다. 수인 할머니는 왜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는지가 늘 수수께끼였다고 했다.
“할머니, 그건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미친 늑대들이 날뛰는 시대였잖아요. 그 늑대들의 욕심이 너무 커서, 그래서 할머니가 나쁜 일을 당한 거예요. 할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당할 이유는 없다.
(270) 인디언식 이름을 지었던 게 떠올랐다. 내가 수인의 삶을 바꿀 수 있었던 건 ‘푸른 늑대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을 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 이름을 따라 산다고들 하니까. 늑대들로부터 수인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이 태후와 정면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다시는 태후의 은밀한 빵 셔틀이 되지 않을 거고 도망치지도 않을 거다. 설사 또 얻어터진다고 해도.
유메의 인디언식 이름은 ‘푸른 바람의 유령’이었다. 그 이름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 이야기의 인디언식 이름은 사주에 따라 정해진 단어를 이어 만들고 있었다. 이름 자체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면 누구도 정해진 것은 없다. 따라서 바라는 삶은 담은 이름을 서로 불러 준다는 건 전폭적인 응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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