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손원평)

 

진짜 감정, 책의 힘, 이해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오히려 진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격한 감정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곤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 사회화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느낌도 든다.

 

결국 ‘이해’와 ‘사랑’이 중요하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 ‘윤재’도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통해,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더 커진 ‘곤이’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특별한 개인이 많아져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를 유지해 가는 힘도 결국 이해와 사랑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인간의 본능을 깨야할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것도 말해 준다.

 

또 의학을 통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알려진 만큼'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한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의미 있기 보다는, 아이들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교사나 어른들이 읽어야할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홍보할 때 사용한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다.
어덜트의 사전적 의미는 (12-18세의) 청소년(특히 독자에 대해 쓰는 용어), 성년 초반의 사람. 패션계에서는 22~25세까지의 사람들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우리의 청소년 문학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데, 굳이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의도가 부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낯선 단어에 기대어 기존과 다름을 강조하려는.

 

그래도 표지 그림은 인상적이다.

 

(27)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증상이 너무 깊은 데다 나이가 너무 어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볼 수 없었고, 다른 발달 사항들에 문제가 없어 자폐 소견도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보단, 잘 느끼질 못한다.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사람들처럼 말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들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내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 네이버에서 ‘알렉시티미아’를 검색해 보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이란 책에서는 “감정에 따른 신체적 반응까지 없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이를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기쁨으로 흥분하면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중략) 발달심리학자들은 신체반응을 감정과 연결시키는 능력은 본능적으로 갖고 태어나기보다는,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익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중략) 인간이 감정을 느끼고 이를 분류할 때에는 생리적 반응과 함께 이에 대한 인지적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원인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주위의 가용한 힌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감정 상태를 유추해낸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검색 내용처럼 소설 속 윤재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신체적 반응은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윤재가 어린시절 엄마로부터 감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원인은 아닐까, 곤이의 경우도 미아가 된 후 중국인 양부모와 살면서 그런 과정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기에는 크게 반응하고 청소년 시기에는 섬세하게 반응하며 감정을 인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45)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책의 힘을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이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간편하게 강렬하게 전달되는 있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음식 속에서 담백한 맛의 다양함을 느끼기 어렵듯, 책에 대한 감정을 인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157)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 걸까.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다 결국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괴테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떠올려 봤다. 사랑이 변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학대를 가한다는 뉴스도.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용서한 이들의 이야기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 '사랑'을 감정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의 감정을 쉽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알파고'와 구별되는 우리 인간만의 특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중국 바둑 기사 커제와 대결한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들었다. 바둑에 대한 프로그래밍을 심어 놓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게임을 처음 접하듯 그렇게 반복하면서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이기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며 그것이 딥러닝의 힘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돌린다고 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로봇이 과연 허용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교사의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인간적인고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198)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는 것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224) 네 머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 볼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말이다, 난 네 병명을 늘 의심했었단다. 나도 한때 의사이긴 했지만, 의사들은 라벨 붙이는 걸 좋아하지. 그래야 특이한 현상이나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거든. 그게 명확하고 유용할 때도 물론 많고.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의 머리란 생각보다 묘한 놈이거든. 그리고 난 여전히,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박사가 웃었다.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 사람은 정의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변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정의할 수 없다. 사람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으며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다. 

 

아몬드
국내도서
저자 : 손원평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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