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도 행복한 나라 독일을 가다(2014)
- 행복한 글쓰기/여행기
- 2017. 9. 24.
공부 못하는 나라, 하지만 꼴찌도 행복한 나라 ‘독일’을 가다
1.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
교육학 고전인 “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커 J. 파머, 한문화) 1”에서는 교사는 자신의 자아를 가르치며, 훌륭한 가르침은 테크닉이 아닌,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교사의 자아는 무엇일까.
청춘을 교직에 바치려 했을 때의 신념, 아이들과 만나는 주요한 통로가 되는 교과에 대한 즐거움, 학창시절을 통해 겪었고 현장에서 존경의 사표가 되어주는 위대한 스승과 나의 가르침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뜰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한데 얽혀 정체성을 이루고, 이를 끊임없이 유지하며 실천하려는 성실성이 교사의 자아라고 한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교사의 자아는 매번 다양한 교육 여건 속에서 성장하기보다 ‘번 아웃(burn out)’ 상태에 빠지곤 해 왔다.
그래서 학습연구년은 자기 성찰과 관심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비록 학습연구년의 목적과 시작이, 교육정책이나 특정 주제 중심 등으로 달랐지만, 동료들의 실천과 내면의 대화를 통해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성실성을 재구성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대체로 유사했다.
학습연구년의 중반기를 넘어가는 시점의 해외연수는 성찰의 거울이 확대되었다는 데에서, 거울의 개수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될 수 있으면 더욱 낯선 곳으로, 그렇지만 우리가 지향해야할 ‘행복 교육’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를 지탱할 건강한 ‘사회 문화’를 간직한 곳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데에서 의기투합하여 ‘팀’을 이루게 되었다.
“공부 못하는 나라, 하지만 꼴찌도 행복한 나라”
그래서 유럽연합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독일 교육을 중심으로, 경쟁보다는 상생교육의 경험을 체험하고자 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사람을 중심에 둔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문화를 경험하며 유럽 문화에 대한 일반화와 함께, 분단으로 가로막혀 섬 아닌 섬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유럽연합이란 국가 간 연합의 의미를 경험하기 위해 9월 22일부터 10월 2일까지 11일 동안 독일을 중심으로 체코, 오스트리아까지 동유럽 3국을 찾았다.
2. 몸으로 배우는 독일 교육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70만의 대도시로 교통과 경제의 요지이며, 14세기 이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직할도시로 1806년까지 황제의 선거와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다. 또 독일통합을 위한 국민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독일의 역사, 사회문화 등 독일인의 삶을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프랑크푸르트 여정은 비판이론의 중심축이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연구소가 있는 ‘프랑크프루트 대학교’부터 시작했다. 독일의 대학은 시민사회와의 결합 속에서 탄생·유지된 만큼 우리나라와 같이 일정한 심리적·공간적 영역을 차지하며 ‘상아탑’이라는 한정되고 독립적인 곳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도시 곳곳에 열려 있다. 이른 시간이라 대학과 시민 사이의 소통과정을 체험할 수 없었지만 가이드를 통해 대학에 대한 시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민들은 프랑크푸르트대학의 명칭에 ‘괴테’를 붙일 만큼 괴테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후손이 없는 괴테를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괴테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에서, 문학에 대한 독일인의 태도가 느껴진다.
프랑크푸르트 중심지에는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독일의 여느 도시와 다르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상점가이며 번화가인 자일(zeil) 거리에는 회오리모양으로 뚫린 특이한 쇼핑몰과 함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공존하고, 로마군이 주둔하였다하여 이름 붙인 ‘뢰머 광장’에는 귀족의 저택으로 사용된 시청사와 정의의 여신상,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된 니콜라이 교회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고 있어, 유럽에 왔다는 실감이 크게 일었다.
해외연수를 준비하면서, EBS 지식채널e ‘공부 못하는 나라’, “꼴찌도 행복한 교실 독일 교육 이야기(박성숙, 21세기북스) 2”, “노래하는 나무(한주미, 민들레) 3” 등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일반적인 독일 교육 4도, 발도르프학교도 학생 중심, 체험교육, 토론활동,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더디지만 미래역량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부러웠고 학교 방문이 기대되었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외곽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발도르프학교’를 찾았다.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도 학생들이 마음을 붙이기 좋은 다양한 형태의 건물과 배치, 특히 자연학습장과 수공예 작업장을 보며, 교사·학생과 만나지 않아도 그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며 학교를 다닐지 예상되었다. 마침 일본 선생님들도 학교탐방을 와 발도르프학교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방문이 많은 곳이라 아이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학생 사진 촬영, 신체 접촉 금지에 대한 당부를 들었다. 가이드를 통해 독일에서 보는 발도르프학교의 이미지를 들었다. 체험과 활동이 많기에 아이들이 부모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지적한다고 한다. 공립학교는 학비를 내지 않기 때문에 발도르프학교에 보내는 가정은 중산층 이상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비교적 자유롭게 교실과 수업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학년별로 놀이 공간이 구분돼 있다는 점, 공예나 가사 실습 도구, 농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학급당 학생 수가 34명 정도로 적지 않은 수에 놀랐다. 물론 이 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둘로 소집단을 나누어 수업한다고 한다. 수업이 교과교실제처럼 운영되고 있어, 학생들이 과목을 찾아 이동하고 있으며,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에는 청소(용역)가 쉽도록 의자를 책상위에 올려 두고, 문을 잠가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수공예교실에서 짚풀 공예, 목공예, 옷디자인 수업을 참관했으며, 생태체험장에서 사과와 복분자, 토끼장을 참관했다.
발도르프학교에는 교장이 없다. 또 교사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교무실도 없다. 학교 운영은 교사, 학부모, 재정관련 대표들이 모여 운영되며, 교무실 대신에 교사휴게실이 있다. 우리에게 학교를 소개한 ‘크라우저’ 선생님도 홍보를 맡고 있는 교사로 함께 학교 곳곳을 살핀 뒤, 도서실에 모여 평소 궁금한 점을 나누었다.
1. 교실에 컴퓨터나 TV와 같은 IT 장비가 없다.
-학교 철학으로 1~7학년까지는 컴퓨터 수업이 없다. 사람 중심으로 접근한다.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이다.
2. 학부모의 학교 참여가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운영에 학생 의견은 어떻게 반영하나.
-학생 대표단이 있어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컴퓨터방, 고교생 쉼터는 학생의 건의로 마련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이 학교에 좋아서 온 것이므로 학교의 방침에 맞추려고들 한다.
3. 이 학교에도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이 있나? 학급이 따로 없이 교과교실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상담은 어떻게 하나?
-여기도 중학생 과정(7~9학년) 학생지도는 어렵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발도르프 철학에 따라 좀더 여유를 가지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1~8학년까지는 한 선생님이 담임을 줄곧 맡고 있고, 매주의 첫 시간은 담임교과를 배치하여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독일어, 영어, 수학이 중심교과이며 이 선생님들이 담임을 주로 맡고 있다.
-또 수시로 학생과 개인적인 의견을 나눈다. 독일은 시험성적 40%, 의견발표 및 질문 40%, 스터디 활동 20%로 성적을 산출하고 있기에 아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4. 예술과 수공업을 위한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옷 만들기’ 작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과는 없나?
-1~11학년까지는 모든 학생이 똑같이 프로젝트 활동을 한다. 옷 만들기를 포함해 모든 활동들이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체험이기에 똑같이 진행한다. 다만 12~13학년에는 아비투어(대입학력고사) 준비를 해야하는데 과목마다 가중치가 있어, 학생마다 원하는 과목에 달라 선택 교과를 운영한다.
5. 발도르프 학교의 독일 내 위상은 어떻게 되나?
-발도르프 학교는 독일에는 25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프랑크푸르트는 학생 수 감소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6. 사립학교인데 학비는 얼마나 되나?
-일반 학교는 학비가 무상이지만 우리 학교는 한 달에 50유로이다. 교과서나 수업 준비물이 포함돼 있으며, 학부모 수입에 따라 학비가 달라진다.
7.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하나. 또 만족도는?
-대학에서 전문 교과를 공부한 후, 1년간 발도르프 교육을 이수하면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10년간 수학, 과학, 지리 과목을 전공했으며, 보람을 느끼고 있어 현재 6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계속 일하고 싶다. 또 교사로 이 학교 출신도 여러 명 있다.
8. 교사로서 고민하는 게 있으면?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일주일에 학부모 상담 2회 등 사무적 일처리가 있다. 또 주정부의 보조금이 줄어들어 임금에 영향 받고 있으며, 아비투어가 진학을 결정짓고 있는데, 학교 철학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고민이다.
9. 근무 여건과 급여는 어떻게 되는지?
-보통 교사는 1주일에 20시간 수업을 하며 월급은 3000유로이지만 세금이 절반 정도이므로 1500유로 수준이다. 호봉은 따로 인정하지 않는다.
10. 도서실이 학교 규모에 비해 작은 것 같다.
-대부분 독일 학교에 도서관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우리 학교 아이들은 도서관을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 여기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거나 차를 마시며 방과 후 시간을 보낸다.
발도르프학교를 방문한 우리 일행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평화의 마음을 키우기 위한 독서교육, 학교가 쓸모없는 지식이 아닌 삶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수영장 활성화 방법, 수학과 교육과정의 수준을 낮추기 위해 교육감협의회 차원의 대응, 실질 문맹에 대한 정의 확립 및, 언어순화 교육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노력을 이야기 했다. 특히 발도르프 학교에서 수학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4. 끊임없는 반성, 독일의 역사 교육.
전쟁의 피해자이면서도 아직까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에 비해, 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독일은 부러운 나라이면서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곳이다. 또 베를린은 ‘동베를린사건(동백림사건)’ 등 독재정권의 체제유지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송두율 교수,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과 같은 경계인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해, 옛 동독과 서독의 국경지대를 통과할 때는 심란한 마음마저 들었다.
베를린의 첫 인상은 ‘공사 중’과 ‘푸르름’이다.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건물을 예전 그 모습대로 복원하느라 공사 중이고, 현대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려 공사 중이다. 한편 도시 곳곳이 녹지로 조성돼 있다. 심지어 브란덴브르크문에서 프리드리히 동상까지는 왕실의 사냥을 위한 정원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어 도시 녹지에 한몫하고 있었다.
한때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살벌함은 허물어지고, 작가들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소망과 이를 기념하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사진 찍는 소리로 채워졌다. 도로에 남은 벽돌자국도 지나다니는 차에 가려 일부러 살펴보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분단’은 과거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베를린과 독일 전역에는 분단과 통일보다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반성하는 기념물이 많았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같은 가해 국가이면서도 모범적인 반성과 철저한 역사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독일과 여전히 철저하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었다.
언어학자로 유명한 훔볼트가 설립한 ‘훔볼트 대학교’에도 나치의 흔적과 이를 반성하는 기념물이 남아 있었다. 1810년에 개교한 훔볼트 대학교는 1933년 나치의 집권으로 나치즘을 가르치는 곳으로 변했고, 훔볼트 대학교 앞 오페라 광장에서 히틀러의 지령에 따라 사상가 칼 마르크스, 극작가 브레히트 등 유대인이 집필한 2만권 이상의 책들을 불태웠다. 훔볼트 대학교 법과대학 광장 앞에는 그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텅 빈 도서관’이 남아 있다.
길 건너편에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보초소로 만들어 이용했던 건물을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의 위한 기념관으로 변형하면서 만든 ‘오쿨러스(동그란 태양빛이 들어오는 구멍)’와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엄마와 죽은 아들’이란 조각상으로 되새기고 있다.
또 미국대사관 옆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곳곳에 나치가 만든 유대인 수용소 2000개를 상징하는 관모양의 구조물’인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을 만들어 희생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다. 관모양의 구조물 사이를 걷다보면 바람의 공명까지 어울려,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앞서 독일 최초의 자유선거에 의해 구성된 국민의회가 열렸던 프랑크푸르트의 ‘파울교회’에도 유대인 석상과 수용소 이름을 새겨 유대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곳곳에 있다. 독일 학교에서는 이들 기념물을 방문하는 수학여행 프로그램들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또 독일 학교에서 경쟁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경쟁을 통한 효율성의 결과로 나치주의로 나타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의지라고도 한다.
우리는 독일의 역사교육을 보며 일본 역사 교육-교과서 문제와 1급 전범이 수용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와 독도 영유권 주장, 근로정신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의 모습을 경계하며 외교적인 대응은 물론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역사교육 강화에 대한 공감했다. 또 한때 나치에 의해 수없이 많은 민간인 학살을 경험했던 유대인들이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을 보며, 그들의 휴브리스(hubris, 오만)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5. 진정한 화해의 방법, 무조건.
이미 통일이 된 독일 베를린에서 분단의 아픔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우리는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의 묘역을 참배하며, 분단된 현실 속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야했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곡가 윤이상, 하버마스의 제자였던 사회학자 송두율 모두, 동베를린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이다. 특히 송두율 교수의 귀국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경계도시”는 베를린을 의미했으나 통일된 지금, 경계도시가 대한민국이고 남과 북,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가로막혀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이 소통되기 어려운 사회문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저녁, 우리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그리스어로는 ‘이산(離散)’을 의미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의 작가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특징으로 우리가 동의어로 생각하는 ‘조국’, ‘고국’, ‘모국’이 분열돼 있는 상태라고 한다. 여기서 ‘조국’은 선조의 출신국, ‘고국’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은 현재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추방당한 후 귀화한 윤이상, 송두율 교수 모두 ‘디아스포라’의 운명이었고, 호카이도조선학교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학교”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국적 ‘조선인’들도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소수자들이었다. 그런데 분단의 아픔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도 내면화 되고 있다. 분단으로 가로막힌 사고의 한계와 사상적 자기 검열은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이 시대, 또 창조경제라는 측면에서도 태생적인 한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일정이 다음날 이어져 분단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기도 했다.
600년이나 된 라이프치히 대학은 미러 글라스를 셀로 이어 붙여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라이프치히 거리가 바로코 양식의 화려한 고전적 건축물이 많은 편인데, 이런 현대적 건물들은 고전적 건축물들과 조화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이프치히 대학의 세련된 건물과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오페라 극장 ‘게반트하우스’도 그렇게 잘 어울렸다.
라이프치히의 백미는 ‘성 토마스 교회’와의 만남이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여러 번 증개축이 진행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양식, 바로크 양식이 결합돼, 신성스러움을 잘 드러내었다. 햇빛이 비추는 쪽을 향해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 뒷면을 가득 채운 파이프 오르간, 그리고 연주, 전면의 십자가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의 웅장함에 끌려 우리 가족의 무사안녕과 우리 팀의 무사귀한을 빌었다. 이 교회는 바흐가 27년 동안 오르간 연주와 지휘를 했고, 바흐의 관과 바흐 동상이 있는 곳으로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유럽의 문화란 그렇게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을 들으며 한결 가까워지는 것 같다.
라이프치히에는 독일 통일을 위해 1981년부터 ‘월요기도모임’을 만들어 9년간 촛불기도를 수행한 ‘니콜라이 교회’도 인상적인 곳이다. 니콜라이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함께 철학 없는 종교가 인간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들과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이 교회는 16세기 마틴 루터가 방문하여 설교하면서 유럽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고, 건물 하단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이기도 하다.
엘베강을 따라 브뤼울 테라스에서 만난 ‘드레스덴’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과 강변가도, 운하들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테아트르 광장’에 이르면, ‘젬퍼 오페라하우스’, ‘츠빙거 궁전’, ‘대성당’, ‘레지덴츠 궁전’ 등 시커먼 돌과 깨끗한 돌로 화려하게 쌓아올린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1942년 2월 영국과 미국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돌무덤이 되었는데 이를 복구하면서 원래의 돌과 새로운 돌을 퍼즐 조각 맞추듯 조립하였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했다.
‘츠빙거 궁전’에서 ‘프라우엔 교회’까지는 슈탈호플의 벽화 ‘군주의 행렬’이라는 타일화가 100m 정도 펼쳐져 있다. 이곳은 도자기 공예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특히 프라우엔 교회는 소이탄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돌과 이를 복구하기 위해 잔해들을 아낙들까지도 행주치마로 나르며 복구한 재건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게다가 1942년 드레스덴 폭격 당시, 영국 조종사의 아들이 참회의 뜻으로 십자가를 주조해 교회에 올렸기 때문에, 드레스덴은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오바마나 박근혜 대통령도 이곳에서 평화선언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유럽문화를 경험하며 경쟁이나 차별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상대방을 용인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화해의 몸짓을 보았다. 북한이 먼저 핵포기를 해야 대화하겠다는 식의 ‘전제’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화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홍보용이지 않을까. 이미 체제 경쟁이 끝난 남북한 상황에서 통일을 위해 상대방을 인정하며 교류할 때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은 물론 섬 아닌 섬이 돼 반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6. 저녁이 있는 삶, 사람이 먼저다
우리가 방문한 독일이나, 체코, 오스트리아의 밤은 어두웠다. 저녁 8시 무렵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으며, 주유소 옆 편의점 정도만 영업을 한다. 우리 숙소가 대부분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도시 외곽의 밤은 우리나라 산골의 밤 분위기와 비슷했다. 체코 ‘프라하’와 ‘브르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는 밤에 맥주를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9시를 넘기자 자리를 정리해 주길 바라는 점원들의 압력으로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프라하는 야경이 유명한 곳이라 대부분 관광객과 보냈고, 동유럽 3국의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체험한 건, 체코 프라하의 ‘비셰그라드’와 ‘브르노’,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비셰그라드는 체코 건국신화의 장소이며 옛 성이 있는 자리다. 여기서 바라보는 프라하의 풍경은 파란 하늘과 함께 넉넉한 시간 여유까지 겹쳐 정말 아름다웠다. 독일 로텐부르크와 함께 경치가 가장 아름다웠다. 마침 동네 장터가 열려 물건도 흥정하고 차도 마시며 지역의 상품이나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동네 장터 옆 잔디밭 한 구석에서는 북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관람객까지 공연에 참여하며 함께 즐기는 모습에서 덩달아 흥겨웠다. 특히 식당에서 거리낌 없이 모유를 수유하는 체코 여성과 그런 것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눈에 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정과 지역사회의 모습도 어느 정도 그려졌다.
브르노에서는 8시가 넘은 시각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남자건 여자건 몸집이 좋다. 독일은 비만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체코는 대체로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도 크다. 길쭉한 유전자에 여유, 운동이 그들 건강함이 바탕인 듯 싶다.
오스트리아 빈의 ‘시립공원’은 왕가가 아닌 일반인을 위해 만든 공원으로는 최초이며, 연못을 중심으로 쉼터가 잘 마련돼 있었다. 따뜻한 일요일 오전이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으며, 공원에는 파륜귱 수련자들의 명상, 음료수 판촉행사로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 공원 남쪽에는 ‘치유’라는 뜻의 쿠어살롱 앞 꽃시계도 아름다웠다. 분주한 건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우리들 관광객뿐이었다.
촉박한 일정에서 유럽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경험한 건, 의외의 상황이었다.
먼저 여행 이틀 째 우리 팀 버스기사 체코인 ‘얀 아저씨’가 라이프치히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하던 중, 동독과 서독의 국경지역(퇴링켄 주) 휴게소에서 30분간 쉬어야 한다며 차를 멈추었던 일이다. 가이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버스, 화물차 등 여객·운수업 종사자는 의무적으로 휴게시간을 보장받아야 하며 휴게시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매우 큰 액수의 벌금을 내야하는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얀 아저씨’는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로 오는 길에서도 조금 급하게 오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하루에 운행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어 그렇다는 설명을 들으며 운송 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독일의 모습에서 타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행 5일째 독일에서 체코로 가는 길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으로 적발돼 휴게소에서 30여분 정차한 일도 있었다. 갓길이 아닌 인근 휴게소까지 이동해 단속하는 경찰, 차 앞유리 중앙 하단 부분에 장착된 타코미터를 통해 규정에 맞게 근무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순천에서 독일로 이민 온 가이드는 독일에서 평준화 교육이 가능한 이유로 강력한 ‘노조’를 들었다. 독일의 노조는 회원도 많고 연대도 잘 된다고 한다. 특히 산별 노조 사이의 임금이 같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기아자동차 생산 직원이나 기아자동차 정비소 직원의 월급이 같다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은 연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회사 차원의 지원이 다른 차이점은 있다고 한다. 또 직종 간의 임금 차이도 크지 않아, 공부 아닌 기술이나 가내 수공업으로 생활이 가능한 점을 들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홍세화 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내용이 떠올랐다. 한국의 택시운전사들이 합승을 한다고 욕을 먹어야 하는 것도 운전사의 자질이 모자라기보다는 합승을 가능하게 만든 손님들의 요구 때문이며, 따블이나 따따블의 요금을 요구하게 되고 또는 무리하게 운전을 해야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것과 함께 그렇게 일해 벌지 않으면 운전사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이라는 것. 즉 서울의 택시 운행의 난맥상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하고, 그리고 택시요금을 대폭 인상하여 운전사의 처우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
결국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학교 개혁 못지않게,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사회의 강력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정병호, 창비) 5”에서 교육 개혁은 교육 제도의 문제가 아닌, 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문화 해결이 먼저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우리가 해외 연수로 ‘독일 교육’을 선택한 이유 역시 사회 문화 때문이었다.
7. 스토리가 녹아 있는 터전
동유럽 여행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 가지 요건, 의·식·주 중 건물에 특별한 인상을 준다. 독일인을 비롯한 동유럽 사람들의 검소함은 널리 알려져 있어 유행이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으며, 먹는 것 역시 쌀 대신 감자와 훈제용 고기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그러나 건물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서 옛 것의 세세함과 새 것의 우뚝솟음이나 웅장함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다른 차원의 사고를 이끈다.
유럽으로 오기 전 우리는 서양 건축물의 양식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기본 조건들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닌 사고의 변화가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곳 중에는 체코의 프라하 구시가 전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유럽 건축사를 통해 유럽인들의 사고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동유럽 3국에서 ‘로마네스크 방식’의 건물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았다. 로마네스크 건물은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순례 문화가 생기면서 순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과 아치, 이를 버틸 수 있는 부벽이 특징인데, 증·개축을 거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성은 거의 사라지고 고딕과 바로크 양식으로 변형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와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성당’의 하부는 로마네스크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가이드는 체코 프라하의 비셰그라드, ‘성 마르틴 로툰다 성당’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소개했는데 건축 시기만 일치할 뿐 정확한 특징을 추론하기는 어렵다.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아르누보 양식’은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서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고딕 양식’은 13~16세기 알프스 이북 지방의 건축양식이다. ‘고딕’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트족’ 그러니까 게르만족의 괴상한 건축물이라는 의미에서 알프스 이남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이다. 고딕 양식은 중세시대 ‘유명론(唯名論)’을 바탕으로, 신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신비의 영역이므로 인간이 신을 인식하도록 애쓴 양식이다. 높은 첨탑,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몽환적인 빛으로 신앙심을 표현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뾰쪽 첨탑, 공중 부벽이 그 특징이다.
‘르네상스 양식’은 문예부흥운동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상으로 삼으며 신보다는 사람을 중심에 둔다. 따라서 성당보다는 궁전, 공공건물, 주택 등에 균형과 비례를 적용했다. ‘바로크 양식’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말로, 화려한 내부 장식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로코코 양식’은 귀족들의 섬세하고 세련된 표현 방식으로 17~18세기에 유행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덩굴식물, 화려한 꽃무늬, 여신처럼 묘사된 여인들을 이미지로 활용했으며, 19~20세기에 유행했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틴 성당은 고딕 양식, 천문시계 왼쪽의 ‘작은 집’은 르네상스 양식, 공사 중이었지만 천문시계 뒤쪽의 성 니콜라스 성당은 바로크 양식, 얀 휴스 동상 뒤편의 체코국토개발부 건물은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건축을 통해 동유럽 3국인들의 사고를 보여주는 건물에는 12세기에 지어진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성당’과 그 옆 미러 글라스의 ‘하스 하우스’와 같은 현대적인 건축물의 조화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라이프치히 대학’에도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이들 건물은 갈등과 긴장에서 자유로움과 창의력이 생겨남을 눈으로 보여주어, 오스트리아가 음악과 미술의 도시일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추측하게 한다.
랜드마크라는 이름으로 주변 환경을 무시한 채 건축되고 있는 고층 빌딩,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동네의 삶을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모습들, 새마을운동의 결과 초가집을 양철지붕으로 한꺼번에 바꿔버린 것처럼 이제 한옥으로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우리 내면의 가벼움에 대해서 돌아본다. 반대로 ‘로텐부르크’의 중세시대 모습이나, ‘하이델베르크 성’의 고풍스러움은 그것 자체가 전설과 이야기를 담아,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배경이 될 것이다.
스토리는 역사를 전제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자존감 없는 사람들은 새 것으로 쉽게 바꾸고 쉽게 싫증을 낸다. 여러 번 되새김질에 약하고, 섬세함이 부족하다. 문화적 감수성이 떨어지고 공감적 상상력이 떨어진다. 타인에 대한 상상력도 떨어져 그 사회는 척박한 곳이 된다.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된 이름, 돈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우리네 아파트 문화의 문제점을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삶의 스토리는 곧잘 상상력과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잘츠캄머구트’로 가며 ‘잘츠캄머구트’와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사운드 오브 뮤직’을 관람했다. 도레미송이라는 음계의 기본을 가지고 다양한 노랫말을 만들어 귀를 즐겁게 했다. 가정교사와 일곱 아이들이 친해져 가는 과정, 독일에게 합병 당한 오스트리아 군인의 상황, 돌싱남과 가정교사로 온 수녀와의 사랑이야기, 독일군의 눈을 합창대회로 따돌려 피란하는 장면까지 감동적인 부분이 여러 곳 있었다. 특히 대령과 마리아와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논쟁하는 부분에서는 우리 교육을 빗대고 있어 가슴 찔리기도 했다. 수신호로 진행되는 엄격한 규율보다는, 노래와 같은 자연의 흐름에 맞는 자율이 대립각인데, 우리는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지는 않은가. 마찬가지로 역사를 품은 스토리를 과감하게 밀어버리며 유행에 쉽게 흔들리는 가벼운 사람들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한편,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이름처럼 터키의 페르가몬 유적지의 문화재를 박물관에 그대로 옮겨 왔다. 터키 정부의 허가를 얻어 옮겨온 곳이라고 하지만, 이슬람 문화, 바빌론 문화까지 영국이나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있어야 더 아름다웠을 문화재들을 테마를 정해 옮겨놓았다. 영어 설명도 부족해, 관람 후 인터넷을 검색해 감상한 문화재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되새김하였다. 옛날 유적지를 옮겨온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이름의 폭력성에 감탄만 할 수도 없으니 ‘현실’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이른바 ‘게르만족들’의 고대와 중세에 대한 문화적 빈곤함을 감추기 위해 근세와 현대에 이르러 외국의 화려한 문명을 통째로 가져오는 무리수를 썼다는 비판을 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클래식을 애써 즐기려고 하거나 교양 있는 모습으로 인식하며, 심지어 우리 고유의 것 이외의 것에 대한 발 빠른 적응을 문화적 자산처럼, 또는 학문적 우위로 여기며, 겉은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빈곤한 문화를 낳은 것은 아닌가 성찰하게 되었다.
8.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
헝가리의 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소설의 서사구조를 길과 여행에 빗대어 ‘아이러니’ 방식으로 설명했다. 소설이 제기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은 개인이 치열한 고민으로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 마찬가지로 독일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보낸 11일의 여정 역시 여행은 끝났으나 우리는 더 많은 세상의 문제 속으로 던져졌다. 결코 몇 자의 성찰로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은. 이번 해외 연수는 그래서 교직을 마무리하고 세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걸어가야할 새로운 출발이 될 것 같다.
나를 찾아 떠난 가벼운 여행의 결과가 너무 크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11시간의 비행 내내 마주한 저녁 해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주한 오랜 시간의 해돋이의 경험, 머리로 유럽 연수가 정리될 즈음까지도 몸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몽롱한 기분까지도, 주마등처럼 지나간 10여 일의 유럽 경험도 모두 담고 싶다.
홈볼트 법대에는 2층 노벨수상자들의 사진 전시로 가기 위한 계단 중간에, 마르크스 묘비명의 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철학은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지금 철학은 세상을 변화해야한다” 철학을 학문으로 바꾸어도 명제는 통할 것 같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분편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나, 지금의 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수단이자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10박 11일 일정>
월 | 시간 | 일정 | 비고 |
9.23 | 오전
| *괴테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파울(바울) 교회+유대인 희생탑(1848 독일 국민회의 개최 장소) *괴테하우스, 괴테박물관 *자일(Zeil)거리: 소용돌이 모양의 쇼핑몰이 있는 곳-현대식 *상설 재래시장(크라인 막트 할레) *뢰머 광장(구시청사, 정의의 여신(유스티아)상, 성니콜라이교회) *프랑크푸르트 대성당(바톨로메 대성당: 황제들의 대관식 거행됐던 곳) |
프랑크 푸르트
|
오후 | *발도르프학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 ||
밤 | *아우어바흐스 켈러(괴테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식당) | 라이프치히 | |
9.24 | 오전 | *전승기념탑~티어가르텐~브란덴부르크문 지나침 *베를린 장벽/ 점심 | 베를린 |
오후 | *훔볼트 대학교 *박물관 섬(베를린 돔, 페르가몬 박물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브란덴부르크 문 *윤이상 묘역 | ||
9.25 | 오전 | *라이프치히 대학~게반트하우스 *구시청사, 괴테 동상(니콜라이 교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 월요모임을 통해 통독의 기반을 마련함) *성토마스 성당+바흐 동상 | 라이프치히 |
오후 | *엘베강 옆 브뤼울 테라스 산책 *테아트르 광장-젬퍼 오페라하우스, 츠빙거 궁전, 대성당, 레지덴츠 궁 *슈탈호플의 벽화 ‘군주의 행렬’ *프라우엔(성모) 교회, 루터 동상+광장 찻집 *프라가 거리 : 쇼핑가 | 드레 스덴 | |
9.26 | 오전 | <프라하 이동> |
|
오후 | *카를교+성 네포묵 상+자유시간 *구시가지 광장(천문시계, 얀 후스 동상 등) *에스타테 극장(모차르트가 ‘돈 지오반니’ 공연한 극장) *바츨라프 광장~성 바츨라프 동상, 위령비 | 프라하 | |
밤 | *카를교 야경 | ||
9.27 | 오전 | *프라하성~성비트교회 / 면세점 *화약탑 / 중국식당 점심 | |
오후 | *비셰그라드 -로툰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성 베드로-바울 성당, 예술인 묘지 *브루노 이동 | ||
9.28 | 오전 | *Akademisches Gymnasium Wien+베토벤 동상 *시립공원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2세 동상, 쿠어살롱 꽃시계 | 빈 |
오후 | *쇤부른 궁전(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등 시내 투어 *성 슈테판 성당/ 면세점 | ||
9.29 | 오전 | <오스트리아 잘츠 카머구트> 이동 | 잘츠 부르크 |
오후 | *잘츠 카머구트 중 ‘길겐’ 이동하며 ‘Sound of music’ 감상, 모차르트 어머니 고향 *호헨 잘츠부르크성 답사 *레지던츠 광장, 대성당 등 구시가 관광 *간판거리=게트라이데 거리, 모차르트 생가 *미라벨 정원 궁전-모차르트 연주, 영화 배경 | ||
9.30 | 오전 | *막스 요제프 광장: 레지덴츠 궁전 광장 *쌍둥이탑 프라우엔 교회+분수 *마리엔 광장: 움직이는 인형 시계가 있는 신시청사 *호프브로이 하우스: 옥토버 페스트 분위기 느낄 수 있는 호프집 | 뮌헨 |
오후 | *시청사, 마르크트(시장) 광장 시계에 담긴 사연 *성벽 *크리스마스 박물관 | 로텐 부르크 | |
10.1 | 오전 | *하이델베르크 성 *시청사~교회~카르테오도어 다리 | 하이델베르크 |
오후 | <프랑크푸르트 이동> |
|
- 파커 J.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2008 이 책에서 저자는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이 교육과 관련된 공포에서 벗어나 교육을 바꿀 수 있는 힘이며, 주제 중심의 배움을 통해 교사와 학생 모두 진정한 학습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사로서 더 이상 고립되고 분열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커밍아웃과 함께 진리의 커뮤니티(전문적 학습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수업의 혁신을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본문으로]
- 독일 교육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는 이 책을 통해서 가능했다. 이 책의 내용을 EBS 지식채널e에서 ‘공부 못하는 나라’로 편집했다. 저자는 교육의 목적을 모든 사람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경쟁 없는 독일 교육이 실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체험, 자신만의 생각과 방법을 먼저 터득하도록 배려하는 수업, 토의·토론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는 마음을 길러 사회성을 갖춘 전인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평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독일 교육의 모습도 신선하지만, 학국식 교육열을 갖춘 저자가 독일 교육을 통해 행복하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 교육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는 내용들이 인상적이다. [본문으로]
- 이 책에는 슈타이너 교육의 특징으로, 리듬을 고려한 학습,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고려한 학습, 8년 담임제를 통한 교사와 학생들과의 일체감, 예술교육을 통한 감성개발과 창의성 기르기, 노작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노래하는 나무”에서 ‘노래’는 자연과 인간, 교육의 ‘흐름’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고 어울림이나 일치를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나무’는 에머슨 학교의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교육과정을 나무로 제시한 것도 그렇고, 나무가 곧 대자연이고, 흐름이고 나무의 날숨을 통해 인간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노래하는 나무’는 ‘자연, 인간 리듬이 일치한 교육과정’이라는 슈타이너 교육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본문으로]
- 독일의 학제는 기초영역으로서 유치원이 있고, 그 다음으로 제 1영역에 해당되는 4년제 초등학교가 있다. 중등교육에 해당되는 제 2영역은 두 단계로 구분되는데, 제 1단계에서는 하웊트슐레(5년제), 레알슐레(6년제), 김나지움(9년제)이 모두 속하며, 하웊트슐레와 레알슐레의 경우는 이 단계에서 학업이 종료된다. 중등교육 제 2단계에서는 김나지움 상급반과 하웊트슐레와 레알슐레 졸업생들이 다니는 직업학교가 포함된다. 고등교육기관에 해당되는 대학에는 일반적으로 김나지움 상급반 졸업생들이 입학하게 되고, 직업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계속해서 전문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거나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 이 책은, 교육 문제를 사회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교육이 변하지 않는 건, 교육을 통해 기득권을 획득한 부모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 법칙(입시 제도)을 만들어 입시와 사교육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때문에 기득권을 갖지 못하게 된 부모 역시 기득권을 얻기 위해 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장치들, 예를 들면 일제고사와 개량화된 성적과 입시, 경쟁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설정된 학습량, 영어와 같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영어 실력을 나아지지 않는 '내부 경쟁용' 장치들의 문제들을 인터뷰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한다. 교육은 문화병이다. 진보교육감 시기 제도개혁과 함께 사회문화 개혁 역시 중요한 문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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