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금강 종주(5.19~5.20)
- 행복한 글쓰기/여행기
- 2018. 5. 21.
2017 작년 여름 3박 4일, 중학생 아들과 함께 낙동강 종주를 마치면서 4대강을 종주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미 종주 경험이 있는 영산강은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이므로, 중간 지역인 금강부터 떠나기로 했다.
자전거 일정, 교통편 등은 작년 낙동강 종주를 준비하며 참고하였던 산구루(http://sanguru.me) 사이트가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교통편이다. 또 터미널에서 기점이 되는 인증센터까지 이동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다행히 요즘은 버스 탑승자들이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 수화물칸에 자전거를 싣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작년 낙동강을 종주할 때, 대구복합버스터미널에서 안동행 버스 플랫폼이 3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또 대전터미널에서 대청댐인증센터까지는 시내를 20km 정도 관통해야 하므로 콜밴을 이용했다. 아직 아이와 이동하기에는 하루에 100km 정도가 상한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5월 19일(토) 아침 7시에 광주에서 출발해 대청댐 물문화관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었다.
대청댐 물문화관 건너편은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청남대' 근처다. 호수의 물빛과 하늘빛이 잘 구분되지 않아 청량감을 주었다. 인증부스 옆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 자판기가 인상적이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채워 놓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을 동서양이 비슷한 것 같다. 3년 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 앞다리 난간에도 남산 타워 못지않게 주렁주렁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왜 절경마다 사랑의 자물쇠가 걸려 있을까, 오랜 시간에 걸쳐 아름다움을 빚어낸 자연에 인간의 사랑을 투영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절경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자물쇠로 상대방의 마음을 채워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집을 나섰을 때에는 이슬비가 내려 노면이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대전의 하늘은 맑았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다행히 맞바람은 아니어서 자전거 타기에 좋았다. 자전거 도로도 잘 닦여 있었고, 대청댐에서 7km 지점에서 5km 정도는 일반도로를 이용하는 구간이지만 통행하는 차가 많지 않아 큰 불편함은 없었다. 세종시까지, 그리고 금강하굿둑까지 큰 어려움 없이 자전거를 탔다. 아직 많은 자전것길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동거리, 피로도, 편의시설 접근성 등에서 금강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자전거를 즐기다, 세종시 초입 '햇무리전망대'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강의 우안으로 옮겨 세종시에 진입했다.
세종보인증센터 뒤편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인지 세종보 인근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증부스 왼편 주차장 아래쪽에는 800년이나 되었다는 '참샘 약수터'가 있었다.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원한 맛은 덜했지만 생수와는 다른 물맛이 느껴졌다. 섬진강 자전것길에도 두 군데 약수가 있다. 순창 향가유원지의 향가터널 바로 앞과 사성암 인증센터 가기 전. 그런데 35도를 넘겼던 8월에 자전거를 탔을 때여서인지 향가유원지 약수터의 시원한 물맛은 오래까지 남아 있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 점심 먹을 곳이 많아 보였지만,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좀 더 가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세종보 물막이보가 열린 채로 있었다. 학나래교는 상층에는 자동차가 다니고, 아래층은 약간 터널 같은 느낌으로 강을 건너도록 돼 있었다. 자전거를 타며 난간 사이로 보이는 흙탕빛의 금강이 더 거대해 보였다. 꽤 긴 다리를 지나 신택지지구로 들어갔다. 세종시터미널까지 있었는데 아직 개발 중이라 식당이 많지 않았다. 3km 정도 들어와서야 식당을 발견하고 늦은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세종시에서 공주시로 가는 길에 움집이 여러 채 눈에 띈다. 박물관을 돌아 오르막길을 지나고 나면 역사 책에서 많이 들었던 구석기 시대 유적지, '공주 석장리 유적지'가 눈에 띤다. 산책 겸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에 섞여 우리도 전시관을 살펴보았다. 마침 독일 신베를린박물관과 교류 행사로 '네안데르탈인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의 아버지"라는 책에는 인류의 조상으로 덩치 큰 '네안데르탈인'과 비록 호리호리하지만 뇌용량이 큰 '호모 사피엔스'의 대립이 있었고, 환경에 적응을 잘했던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호모 사피엔스에도 남아 있어 결국 진화는 돌연변이의 결과가 아닐까, 인류도 시간의 산물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기도 한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의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공주가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친근한 공주 시내와 다리, 공산성 앞의 번화가를 지나 한옥마을과 무령왕릉을 지나면 공주보가 나타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면서도 '보' 위주로 자전거 여행을 정리하는 고민스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공부보에서 백제보로 가는 길은 잔잔하지만 넓고 파란 금강을 흠뻑 느끼는 공간이기도 하다. 잘 닦인 자전거길을 25km 타다 보면 약간의 오르막길 위로 백제보가 나타난다. 비교적 높은 곳에 전망대까지 있어 백제보는 그동안 타고 왔던 길을 돌아보는 데 안성맞춤이다. 6시를 넘겨 승강기를 이용해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계단으로 올라갈 힘도 없어 2층에서 바라본 전망으로 만족했다.
백제보를 나오는 길에 보마다 자주 볼 수 있는 방류와 개방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연'에 동조한다. '자연'이라는 한자말처럼 자연을 잘 드러낸 말이 없기 때문이다.
금강 자전것길은 이후 부여읍 우완으로 진행하다 익산 강경보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부여 시내에서 1박할 예정이라 부여관광호텔, 부여여고 방향으로 주행해 시내로 진입했다. 숙소 사장님의 소개를 받아 들른 "유사장 직화구이"는 초벌구이로 육즙이 잘 담겨 돼지고기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라면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에 편의점을 찾아 부여 시내를 돌다 '금성시네마'라는 특별한 공간을 발견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영화를 보았다. 단 둘이서. 영화관 사장님(처럼 보이는)은 "그날, 바다"도 개봉했으나 관람객이 많지 않아 준비해 둔 노란 리본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관람객이 많지 않겠지만 지역민들과 보고 싶어 올렸다고 했다.
1989년 의문사를 당한 이철규 열사의 이야기와 폭력 정권에 대항한 5.18 정신,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연결해, 5.18로 정신줄을 놓은 어머니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현재화된 5.18의 아픔과 그날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아이는 어려워했다.
노래방이 있는 숙소여서 밤늦게까지 '그들'의 여행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전까지 보지도 않았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마지막 편에 꽂혀 12시가 넘도록 새삼스럽게 사랑의 어려움에 공감하다 늦게서야 잠을 이루었다.
터미널 옆 "고봉민 김밥"에서 아침밥을 먹은 뒤 곧장 내달라기 시작했다. 부여 시내를 벗어나자 지루할 정도로 긴 둔치길이 시작됐다. 자전거길에서 지천이 합류하는 지점은 멀리 돌아가기 마련인데, 금강은 규모가 작거나 습지가 개발돼 우회하지 않고 연결돼 있는 곳이 많았다. 작년 낙동강 종주에서는 삼랑진을 앞두고 지천을 돌아 10km가 넘게 돌아온 적도 있어 반가웠다.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자 충남 논산 강경에 도착했다. 멀리 배를 가져다 놓은 건물이 보였지만 우리는 시내로 진입했다. 찻집을 찾을수록 젓갈집만 보였고 간신히 터미널 근처에서 찻집을 발견해 쉴 수 있었다. 강경 다음에는 익산 성당포구에 인증센터가 있다. 강경읍을 벗어나며 힘들어하는 아들을 생각해 강의 흐름을 고려하며 직선거리를 찾다 국도를 10여 km 주행한 끝에 익산 성당포구에 도착했다. '성당'이라는 지명에서 영산성지와 같은 종교적인 특성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명이 '성당'이었다. 하지만 성당포구로 들어서는 자전것길 양편엔 활짝 핀 해당화와 바람개비를 우리를 맞이했다. 내비게이션을 보며 찾아온 곳이라 반가움이 더하기도 했다.
성당포구에서 군산으로 가는 길은 임도이기에 가파른 오르막이 두 군데 있지만 곧, 자전거로만 여행할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이 길을 벗어나면 어느덧 강물이 넓어지고 강물의 색깔은 탁해진다. 부도난 리조트의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목소리를 지나 좀 더 나아가다 보면 웅포 유원지가 등장한다. 웅포 유원지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물결에서도 탁함에 차이가 느껴진다. 강의 하류, 느리 유속과 만나기 때문일까. '하중도'도 여러 개 나타난다. 강갓길에는 대나무로 얽어놓은 철새탐방지들이 드문드문 나타나고, 둑도 넓어지며 자전거 타기는 훨씬 수월해진다.
산구루 님의 사이트를 보면, 금강 하굿둑에서는 세 군데의 인증센터가 있다. 서천 쪽과 군산 쪽 2곳. 그런데 군산 쪽 2곳은 인증부스만 운영되고 금강 종주를 인증받을 수 있는 인증센터는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우편함에 인증수첩을 넣으면 확인 후 보내주겠다는 안내문이 있지만, 우편함이 잠겨 있지 않아, 그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곧 군산터미널을 향해 자전거를 탔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것길과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었다. 시내도로도 자전것길이 잘 정비돼 있었다. "탁류"의 '채만식문학관'에서 바라본 금강 유역은 썰물과 함께 금강의 속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개항지로서 혼탁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본성과 수탈의 아픔, 그리고 저항.
금강하굿둑에서 군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약 5km 정도 거리다. 어플을 이용해 시외버스를 예약한 뒤, 근처 맛집으로 추천된 "일품횟집"을 찾았다. 브레이킹타임 시간인데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음식을 차려주었다. 담양에서 와서, 대청댐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아들을 격려해 주신다. 정갈하며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금강 종주'에 일정을 나누었다.
아내가 아들과의 '금강 종주'를 격려하며 요청한 것은 중2 아들과 소통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는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사고 우려 때문에 일정한 거리와 간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적지까지의 여행은 자신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으므로 거기에 충실해야 도착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이겨내면 나름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끼리의 자신감 같은 것이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연결을 도와주기도 해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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