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김정운, 21세기북스)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3. 1. 11.
금방 올 것 같지 않았던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기념하여 받은 건강 검진 결과도 그렇고, 살아온 시간을 돌아봐도 그렇고, 내 인생의 중간 점검 결과는 매우 의심스럽다. 허전하다.
삶의 전환점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해야할까. 좀더 치열하게 계획 했던 일에 매달리자 다짐하다,
작년 11월 새로운학교 특별위원회에서 학교 방문 선물로 주고 갔던 이 책이 눈에 들었다.
휴일이 늘었다. 창의력이 중요하다.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이런 내용들을 적절한 삽화, 작가의 경험, 이론적 근거들이 재미 있게 묶여 가볍게 읽지만 그 내용들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40대를 좀더 치열하게 살 것이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열심히 일하고 가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다고 한들 현실은 그대로 있으니, 소소한 일들에서 재미와 휴식을, 그리고 그것을 삶과 잘 결합해야한다. 또 수업이 그러해야 한다.
(57)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니라 나태가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주인은 놀 듯이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다. 일은 재미없고 여가나 놀이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놀기 위해 일한다.
(60)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의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라고 생각할 때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게 된다. 통제나 선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아이스크림과 같은 인센티브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자존심이 망가지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야하는 일인 경우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자발성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아이들이 수행 평가에 대해 선생님들과 학생이 함께 이야기하여 조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므로 교육적인 목적에 훼손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70) 오버씽킹이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 이미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지나가면서 던진 동료의 한마디에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추측 등.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경우와 불필요한 오버씽킹은 아주 간단히 구별된다. 오버씽킹의 대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은 시간으로 보낸다는 지적, 참으로 적확하다. 놀더라도 가방을 가지고 다녀야하고, 잠을 자더라도 사전을 베고 자야 마음이 편한 것, 이런 게 습관이 됐다.
(73)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 한다. 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
✎ 절대빈곤을 경험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은 ‘재미’를 중요시한다. 기성세대로서, 교사로서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재미와 잘 결합하여 아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프레네학교에선 학교 회계까지 아이들의 선택에 맡긴다고 하는데, 어중간한 지식이 몸과 마음까지 전달되지 못해 고민이다.
(101)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들은 근면 성실한 이들이 아니라 바로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들은 놀이를 통해 아주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새롭게 느낀다. 바로 이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런 ‘노는 놈’들이다.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이,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정보들의 맥락을 바꿔줌으로써 그 낡은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이. ‘노는 놈’의 힘은 바로 ‘재미’다 .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창의적인 ‘노는 놈’이 될 수 있다.
✎ 창의성에 대한 명쾌한 개념 정리다. 작가는 창의성을 후천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기존의 정보를 집적한 상태에서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비틀게, 또는 낯설게 보는 힘이 ‘재미’에 있다고 보고 있다.
(164) 인간의 본질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눈 맞추기’ ‘정서조율’ ‘공동주의집중’과 같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꿔가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이 되고 놀이를 통해 또 다른 인간들을 키워낸다.
✎ 놀이를 통해 의사소통력이 길어진다. 소통의 목적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하는 놀이(역할 놀이)나 유머 등을 통해 사회적 관점 획득 능력(마음 이론)이 길러진다. 이는 공감력을 의미한다. 또 정서공유는 모든 조직문화의 기본 원리이다. 정서공유의 리추얼은 이런 조직의 일체감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173)
(196) 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직장에서의 지위, 가족 안에서의 관계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위나 관계는 항상 변한다. 심지어는 가족 관계에서 주어지는 엄마, 아내로서의 존재마저 그 의미가 항상 상쾌하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지쳐 있을 때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재미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내가 즐기는 취미를 통해 확인된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이 다 떠난 후 ‘빈둥지증후군’을 느끼거나 다 늙어 ‘바다를 찾겠다’고 떠나는 한심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 평생 갈 수 있는 재미는 사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대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통쾌함을 주는 영화의 재미는 길어야 두 시간이고, 자극이 잦아질수록 재미는 떨어지니까.
(262)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이 세 가지 부정적 정서가 나타나는초기 증상이 있다. 우울은 슬픔으로부터, 불안은 걱정으로부터, 적개심은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슬픔, 걱정, 분노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정서다. 이 정서가 주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눈물을 억지로 참는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억눌린 슬픔은 무력감, 상실감으로 가슴 깊이 스며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살 충동으로 폭발한다.(중략)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죽음에 이르는 병인 우울, 불안, 적개심. 이 세 가지 부정적 정서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각각의 시작이 되는 슬픔, 걱정, 분노와 친해지는 것이다. 슬픔, 걱정, 분노와 친해진다는 것은 내 안의 나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중략)
내 안의 또 다른 나, 즉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고, 화가 나서 펄떡거리는 나를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 내 삶의 밸런스 경영이다. 이 밸런스 경영을 통해 슬픔, 걱정, 분노가 우울, 불안, 적개심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밸런스 경영에 익숙한 사람이 훌륭한 리더다. 이런 사람만이 내 삶의 건강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평화를 담보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83) 여가를 보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내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을 배경으로 보내고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들, 배경에만 흐릿하게 있어 왔던 것들(예를 들면, 아내, 아이들, 내 젊은 날의 꿈같은 것들)을 전경으로 끌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은 쉬어가는 여유가 없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름다운 시대는 지났다. 그런 사람은 남과 전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자폐증 환자 시대에 사는 것이다.(중략)
스스로 배경이 되고 관객이 되어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해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리더는 전경과 배경을 통합한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전경과 배경이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도 여유를 느끼며, 다른 사람의 삶에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혁신은 언제하나. 하긴 강제로 이끌어 간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함께 가야한다면 결국 어느 정도는 양보할 수밖에 없겠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라 생각한다.
(313) 우리의 삶에는 큰 돌과 같은 일들도 있고 모래 같은 일들도 있다. 문제는 모래 같은 일들 때문에 큰 돌을 도무지 넣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작은 돌들을 먼저 넣어도 큰 돌은 절대 넣을 수 없다.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내게 아내와 두 아들은 큰 돌인가, 작은 돌멩이인가, 아니면 모래인가? 내게 프로젝트 보고서는 큰 돌인가, 작은 돌멩이인가, 아니면 모래인가?
✎ 순서를 잘못 진행한 일이 여럿 떠오른다. 내 삶도, 수업도, 학교 일도. 몸이 먼저 알고 지금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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