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파트릭 코뱅)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사랑과 성으로 고민할 때
- 2012. 2. 17.
한마디로 재밌다. ‘코믹판타지모험로맨스성장소설’이랄까?
상캐 모임이 찾아온 상황소설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재미있는 책’을 찾는 아이들에게 재미와 의미까지 선물할 수 있는 책이다. 77세의 노작가가 들여다본 10대 아이들 세계는 참 예쁘고, 긍정적이다. 어리숙한 피랭이 미술관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그림 속 소녀를 찾아나서는 일련의 과정이 <시바의 눈물>에서 주인공이 목걸이를 찾는 과정과 흡사하다. 마지막에 사랑에 빠지는 것까지도.
성적도 얼굴도 평균 이하에 들어가는 피랭의 모험과 로맨스는 10대가 한참 꿈을 꾸고 사랑해야 하는 나이임을 일깨워준다. 노작가는 윤회설, 인연설 등을 버무려 시공을 초월한 진하면서도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버무려냈다. 그리고 10대 소년의 마음까지도.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라니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13)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고?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대문이다. 첫째, 난 잘 나가다가 곁길로 잘 빠진다. 글짓기 숙제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지적받는 얘기가 있다. ‘곁길로 빠지지 말 것’ ‘또 곁길로 샜어.’ 혹은 아주 간단하게 ‘곁길’고 여백에 빨간색 글씨가 적혀 있다. 나는 자꾸 주제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일기를 쓰면서도 곁길로 빠지는 건 당연하다. 식료품 가게의 아랍 상인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얘기하게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고질병이라 고치기도 힘들다. 어떤 생각이 나면 금세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만다. 봐라, 또 곁길로 빠지려고 한다.
⇒ 피랭이라는 인물 참 순진하고 재밌는 친구다. 별 다른 이야기가 아닌 본인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친근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어서 옮겨 적어 봤다.
(36) “나비칼도 안 썼어? 다른 어떤 칼도?”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텔레비전에서 그것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다. 나도 봤는데,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일부러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자해. 욕실에서 자기 몸을 베고, 칼자국을 내는 게 좋다고 말하는 여자애의 인터뷰를 봤다. 화면에 여자애의 팔뚝이 나왔는데, 마치 성난 고양이 떼가 할퀴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 여자애는 면도날로 그랬고, 다른 애들은 부엌칼이나 아무 칼이나 쓴다고 했다. 나는 너무 끔찍해서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의 온갖 미치광이만 찾아다니는 같았다. 방송 기자는 이런 일이 십대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 양 말했다. 우리가 휴대전화 문자질이나 하고, 정신 나간 애처럼 이상하게 옷을 입고, 마약을 하고, 대학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팔뚝에 문신을 하고, 온종일 인터넷 채팅에 빠져 사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취급했다. 정말이지 새로울 게 없는 빤한 결론이었다.
⇒ 피랭이 미술관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심리상담가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심리상담가든 기자든 어른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정해놓은 편한 결론만 내리려 한다. 피랭의 사고를 단순한 자작극으로 몰고 가려 말이다. 우리나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1월 내내 학교폭력에 대해 떠들었지만 그들이 쓰는 글은 비슷하다. 선정적인 기사에 편한 결론. 결국 아이들과 학교가 문제라는 편하고 뻔한 결론.
(100-101) 계단을 반쯤 올라왔을 때, 나는 멈칫 걸음을 멈췄다. 웬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살짝.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몇 초 동안 꼼짝도 안 해다. 무슨 소리인지 알기 위해서 침도 삼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착각한 모양이다. 공포영활르 너무 많이 봐서 그래. 사실 나는 질과 허구한 날 공포영화만 보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공포영화 마니아였다. 특히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대사는 달달 외울 정도였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 남자배우와 여자배우의 대사는 돌아가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이따금 같이 지르는 게 다니까.
여자 : 아아아아악!
남자 : 으아아아악!
여자와 남자 :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 피랭이 자신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나선 빈집을 살펴보는 장면이다. 집안에 들어서는 장면부터 긴장이 됐는데, 피랭이 그 긴장을 한 방에 날려 주었다. ‘곁길’로 새면서 말이다. 공포영화의 명대사, 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115) 나는 모의고사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보통 시험도 싫지만, 모의고사는 더 싫다. 모의고사를 망친다면, 진짜 시험도 못 볼 확률이 크다는 뜻이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모의고사는 학생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모함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난 불에 기름을 붓는 것 같은 위험천만한 내 성적을 일일이 감시하는 엄마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두 배다. 나는 학교에도 선생님이 있고, 집에도 나만을 위한 특별한 선생님이 있다. 이게 교사 자녀의 불행이다. 혼이 나도 갑절로 혼나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배우지 못한다면 더 한심한 애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의고사를 봤다.
⇒ 모의고사에 대한 솔직하면서도 귀여운 피랭의 고백이다. 그리고 교사 부모를 둔 푸념도 무척 귀엽다. 우리 산하도 앞으로 그렇게 생각할까?
(148) 엄마랑 둘만 산지는 12년. 아빠가 세 살 때 집을 나간 뒤로 줄곧 엄마랑 단 둘이 살았다. 그 동안 엄마가 참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엄마는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늘 유쾌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이 장난치고, 많이 웃었다. 그래서 난 어렸을 적에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은 엄마한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해서 한동안 씩씩댔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엄마는 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건 모조리 처단하는 사형집행인 같고 꼬치꼬치 캐묻는 편집증이 있지만, 그래도 난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
⇒ 피랭의 순진하고 밝은 성격은 한부모 가정이긴 하지만 언제나 씩씩한 엄마가 있기에 가능하다. 답안지 채점에 묻혀살지만 피랭을 긍정적인 소년으로 성장시킨 엄마가 참 대단해 보인다.
(159) 이튿날, 내 눈으로 소문을 확인했다. 2미터 3과 말리카 말이다. 둘은 지하철 출구에서 뜨겁게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어찌나 꼭 달라붙어 있는지, 영원히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뒤엉킨 팔은 적어도 삼십여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보면서 부러웠다. 나와 로랑스한테도 똑같은 상황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역시 10대다. ^^
(196-197) 글쎄, 아무래도 둠바르의 모든 공식이 다 해독된 건 아니라서 우리가 아는 건 미미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가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과 마주쳐 지나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해. 그만한 이유가 있어. 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우리는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든. 하지만 반대로 두 번째 만남이 강렬했다면, 너희의 경우처럼 말이야. 그건 과가의 삶에서 뭔가 실패한 게 있기 때문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거야.
⇒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피랭과 로랑스의 과거 이루지 못한 사랑과 그리고 현재의 만남까지. 하지만 죽음을 앞둔 노작가는 불교의 인연설, 윤회설,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모두 믿는 것 같다. 허무맹랑하고 촌스럽지만, 왠지 따뜻하고 매력적이다.
(221) “보스턴? 안 가.”
이렇게 로랑스가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또 다른 삶이 있다. 첫 번째 기회는 놓쳤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 왜 책 제목이 <두 번째 기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척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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