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던 어느 밤에(이꽃님)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26. 2. 18.

이 소설은 인물들이 서로에게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상처가 켜켜이 쌓여가는 상황을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역시 소중한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를 쌓고, 결국 마음의 거리를 두게 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보편적인 아픔을 잘 포착해 낸 이야기였다.
다만 구성 면에서는 서술자의 개입이 잦아 아쉬움이 남았다. 인물들의 대화나 사건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주어야 할 대목을 서술자가 직접 설명하다 보니,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려 할 때마다 제동이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동 학대'라는 무겁고 예민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작가로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을지도 모르겠으나,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던 전작 《행복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과 비교해 봐도 이번 작품의 서술 방식은 다소 과잉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즉 어른들의 욕심과 무관심에 대한 성찰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밤중 '판타지아'로 향하는 과정에서 상인들의 동의를 얻거나 불이 켜지는 장면 등은 지나치게 영화적인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연출이 현실적인 소재와 부딪히며 오히려 리얼리티를 떨어뜨린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가정 폭력'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관심이 무엇인지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는 점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59) “진짜 괜찮지?”
“응. 그런 것 같아.”
유경은 괜찮냐는 물음에 가을이 아니라도 대답하기를 바랐다. 그러면 유경은 가을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너무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비밀들을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끄덕임이 유경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둘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
우리의 삶 중 얼마나 많은 순간이 그러했을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렇게 놓치게 될지 둘은 알 수 없었다.
가을아. 나는 괜찮지가 않아. 나는 여자애가 보여. 아니, 내가 그 애를 불러내. 그 애가 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자꾸만 말을 걸어.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할 수가 없어. 왜냐면... 나는 그 애가 누군지 알고 있거든. 생각해서도, 자꾸만 불러내서도 안 되는 애라는 걸.
✍ 유년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가을과 유경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성격 차이와 주변 관계로 인해 서서히 멀어진다. 여전히 서로를 가장 가까운 친구라 여기면서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에 머뭇거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나 역시 소원해진 옛 친구를 떠올리며 후회에 잠기기도 했다. 가을과 유경이 과연 어떻게 다시 가까워질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의 여백을 두지 않고 직접 상황을 풀이하는 서술자의 개입이 몰입을 방해해 아쉬움이 남았다.
(110) “애가 없어졌다잖아요!”
“지금이 열두 시야, 새벽이야? 애 하나 안 들어왔다고 온 동네를 헤집고 경찰 부르고. 이게 제정신이야? 조용히 좀 살자, 제발!”
“아줌마 딸이라도 그래요?”
“이게 무슨 개매너야. 그래 내 딸이래도 그런다! 그리고 나는 딸 없어!”
아악! 악에 받친 하원이 상가 앞에 놓인 풍선 간판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 지르자 놀란 아주머니가 삿대질을 했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딜 차? 너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너 이거 물어내. 물어내라고.”
지긋지긋하게 이기적이고 끔찍하게 계산적인 사람들.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와 그놈의 돈 돈 돈. 아무도 굶지 않는데 곧 굶어 죽을 것처럼 아득바득 이를 갈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평생을 보고 지낸 이웃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 정말이지 하원은 진절머리가 났다.
✍ 10년 전의 사건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가을의 흔적을 발견하고 가족들이 애타게 가을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불평을 쏟아낼 뿐이다. 소설의 제목인 《내가 없던 어느 밤에》는 이처럼 이기적인 삶의 태도와 잘못된 방식으로 자녀를 대하는 어른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을 의미하는 듯하다.
(167) 엄마는 가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고가 났을 때 누군가 자기를 불렀다고, 그게 꼭 봄인 것 같았다던 말이.
"그날 눈이 많이 내렸잖아요. 근데 가을이 몸에 눈이 하나도 안 쌓여 있었어요. 꼭 누가 안아 준 것 같았아요. 가을이 춥지 말라고."
딸이 춥지 않게 안아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말에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흐흡, 울음이 터져 나와 고개를 돌리고 서둘러 눈물을 닦아야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고맙고 미안했다. 그게 설령 산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임을 알면서도, 내 아이를 지켜준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는 엄마의 마음이 가슴 미어지게 다가온다.
(183) “근데 나는 나를 위해서, 오롯이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1년을 보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뭘 해야 하니까 하는 거 말고.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거 말고. 정말로 내가 좋은 거. 내가 싫은 거. 그걸 알아야 앞으로의 내가 불행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생에 1년 정도는, 완전히 나를 위해 써도 되지 않을까.”
“어른이 되는 건 어때요? 뭐가 많이 다른가.” (중략)
“별 볼 일 없지.”
“별 볼 일 없는 거라면 왜 어른이 돼야 하는 건데요?”
“글쎄, 되고 싶지 않아도 어른은 되어야 하니까?”
✍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나이만 먹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을 짚어보게 된다. 남들이 하니까, 혹은 당연히 해야 하니까 하는 선택들 속에서 정작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218)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게 문제지, 애가 애처럼 구는 게 뭐가 그리 문제라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다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고 태어날 때부터 잘났지? 세상에 어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왜 자꾸 그걸 잊나 몰라."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사로서 이 구절을 마주하니 복잡한 마음이 앞선다. 얼마 전 심각한 교권 침해로 교권보호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을 때, 위 구절과 비슷한 논리로 교사의 책임만을 지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적 기관에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계'와 교사가 가져야 할 마땅한 '권한' 사이에서, '어른답지 못한 어른'의 깊은 고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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