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경전(이상구 옮김)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5. 4. 29.
<이형경전>은 <방한림전>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남장을 하여 과거 급제하고, 황제는 물론 모든 백성과 귀족들에게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고 칭송받는 영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큰 줄기는 같다. 하지만 방한림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동성혼을 하며 우연히 얻은 자녀까지, 겉보기에는 당시 남성으로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는 모두 누리다 생을 마감한다. 이형경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성공하나, 유모의 지극한 방해(?)로 여성임이 탄로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고 거의 똑같은 지위를 누린다. 다만, 형경을 사모하고 아끼는 장연과 황제의 속임수에 의해 이성 결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잠시 모함을 겪고 다시 명예를 회복하며 장수를 누리다 죽는다. 방한림과 이형경이 걸어간 성공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여성들의 로망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끝끝내 남장으로 일생을 보낸 방한림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도 인정받는 삶을 살았던 형경의 삶 중에 어느 것이 더 끌렸을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부인 옆에 있지도 못하고 방바닥에서 자야 했던 장연의 모습에서 정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120쪽에 불쌍한 장연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장연이라는 캐릭터도 고전소설에서 독보적이다. 여성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매우 희귀한 모습의 남성인 장연의 모습도 참 낯설다. 그런데 지금도 참 보기 힘들지 않은가?
어쨌든 고전소설 중에서도 참 흥미로운 소재를 담은 텍스트였고, 그래서 즐거운 책읽기였다.
-인상 깊은 구절-
(16) 형경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니, 형경이 손수 노비들을 거느려 장례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어린 형경이 어른처럼 상례에 맞춰 장례를 잘 치르니, 부친의 친구와 벼슬아치들이 조문을 와서 어린 상주의 기특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형이 비록 열 살 된 어린 아들을 두었으나, 장례를 치르는 거동은 장성한 열 아들보다 낫다.”
✍ ‘어른스럽다, 더 이상 아이처럼 보지 않는다’는 판단은 무엇을 보고 하게 될까? 10살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돌보기 힘든 나이에 부모님의 장례를 무리 없이 잘 치른 것 자체가, 앞으로 펼칠 수많은 영웅담보다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니었나 판단해 본다.
(28) “국구의 관직을 삭탈하고 일 년 동안 월급도 지급하지 말라. 또한 칠 년 동안 자기 집안에 가둬 출입을 금하게 하라.” 또한 유안과 경씨에게는 천금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자, 조정에서는 벼슬아치들이 장난을 치지 못하고, 저잣거리에서는 남녀가 길을 나눠 다녔으며, 사람들이 길에 떨어진 것도 줍지 않았다. 이 모두가 도어사 형경의 위력과 교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 2025년처럼 온 국민이 사법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만큼 사법권의 위상도 땅에 떨어진 것 같다.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만나는 구절이지만, 현실에서도 이처럼 통쾌한 사법적 정의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너무 큰 꿈일까?
(30) “내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이미 변복한 남자가 되었으니, 어미가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근심할 바가 아니다. 하물며 나의 작품이 조정의 대신이거늘, 이제 어찌하겠는가? 그런데도 어미는 여러 번 이런 말을 해서 즐거운 흥을 깨는가? 내가 비록 여자이나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으리라. 세속 여자들이 지아비를 두려워하며 귀중하게 여기고, 시부모를 공경하여 밥상을 받들고 국을 맛보는 등 시중을 드는 일과 수시로 술을 빚어 손님 대접하기를 불평하며, 문을 닫고 담에 둘러싸인 깊은 규방에서 바느질이나 하는 것은 내가 차마 못할 일이니라. 차라리 붉은 도포를 입고 옥대를 찬 적거사마로 이름이 역사책에 오르고, 몸은 공후가 되어 임금을 섬기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옳으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 대개 여성이 주인공인 고전 소설은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은 기본적으로 훌륭하게 다 갖추고(박씨전 등) 남성들이 이뤄내는 업적을 남장하고 성취하는 것이 기본 줄거리였다. 하지만 이형경은 여성으로 갖춰야 할 당시 덕목들은 질색하고 입신양명하는 남성들의 길을 따라가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하고 실제로 성취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무척 새로웠다.
(39) ‘성상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주왕을 생포하면 반드시 죽이지 않으실 터이니, 이 자리에서 그를 죽임이 옳으리라’
✍ 이렇게 단호하고 신속한 결단력을 갖춘 것도 이형경의 매력 중의 하나다.
(54) “옛날에도 목란이 있었는데, 어찌 우리 아씨를 이상하게 여기십니까?”
✍ 이형경과 같은 여성 영웅전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목란’(뮬란)이 있었다. 역시 진심인 유모!
(59) 장연은 형경이 엄숙하고 정중하며 쌀쌀맞게 말함을 보고 다시 말을 붙이지 못했다. 또한 몸으로 압박해보려고 하나 형경의 기력이 매우 뛰어나고 용맹이 상당해 천군만마 속에서도 적장의 머리 베기를 주머니 속에 든 물건 꺼내듯 하니, 어찌 연약한 세속 여자에게 비기겠는가?
✍ 장연의 용렬함과 단호한 형경의 모습이 참 대조적으로 재밌다.
(65) 현재 누이의 난처함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누이가 나이를 많이 먹은 뒤에도 수염이 나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수상히 여길 것입니다. 둘째는, 누이가 혼인한 뒤에 제가 혼인해야 하는데, 형이 혼인하지 않고 제가 혼인하면 순서가 바뀝니다. 제가 먼저 혼인한다 해도 어떤 여자를 얻어와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는, 여자의 몸으로 십삼 년 동안 세상을 속였으나, 이제 유모가 실언하여 장연이 알고 태의도 의심하니 이 소문이 점점 널리 퍼지면 매우 좋지 않을 것입니다. 넷째는, 천자께 말이 들어가고 온 조정이 누이를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누이가 실제 남자일지라도 행세하기 괴로울 터인데, 더구나 여자로서는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이렇듯 난처하고 부끄러운 일이 네 가지나 있으니 청컨대 누이는 잘 생각해 보소서.
✍ 어린 남동생의 역할이 형경의 콤플렉스를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었다니! 어쨌든 일반 사람들 혹은 독자들이 품는 의혹을 잘 정리해 주었다. 그럼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 형경, 최고!!
(77) 이때 조정 백관 중에 형경의 근본을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재상 진손은 그 이야기를 듣고 책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나라에 주춧돌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는 신하가 없고, 조정에 직언하는 신하가 없으며, 온 천하에 인재가 없어졌으니, 이제부터 우리 명나라는 명분과 충효가 점점 줄고 국력도 약해지리라. 조정이 형경보다 더 불행하도다.”
✍ 진짜 엄청난 칭찬 아닌가? 여자임이 밝혀져서 삼족을 멸해도 모자랄 판에 ‘조정이 형경보다 더 불행하다’니!! 와 작가가 거침이 없다.
(81)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에 조회에 들어가 성상의 얼굴을 뵙고, 때때로 풍월을 읊으며 죽을 때까지 규중의 재상으로 즐기다가 죽은 후 비석에 ‘명나라 청주후 태학사 이형경의 비’라 새겨지길 바란다. 또한 성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명나라의 사직을 밝게 빛내 내 뜻을 시원하게 펼치려고 하는데, 어찌 아름다운 부인이 되기를 원하겠느냐?
✍ 진짜 이형경의 소망이다. 굳이 원하지 않는 결혼은 왜 시켜야 하는지?
(94) “내가 용렬하여 의논할 줄 모르니, 어떻게 여기겠소? 다만 그대가 진왕에게 부탁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나를 속였으니, 이는 장부의 행실이 아니오. 그래서 나는 항복할 수가 없소.~내가 만일 다시 지거든 그대와 함께 살고, 그대가 지거든 먹고 자는 것을 따로따로 해서 부부의 의리를 끊읍시다.”
✍ 결혼 첫날밤,, 형경의 말이다. 비록 일이 벌어졌으나, 통쾌하다.
(98) “그대가 혼자 자거나 둘이 자거나 내가 알 바 아니오. 단지 내 방안에만 있지 마시오. 내 방의 일은 내 뜻대로 하리라.”
✍ 장연은 상처를 받았을 것 같지만, 부부생활도 남편의 뜻대로 하지 않는 형경의 남다름이 돋보인다.
(104) “당나라 때 무측천은 위황후와 천자를 겸했어도 행실이 사나워 쫓겨났는데, 어찌 사나운 행실을 한 일개 명부와 제후를 참고 보겠느냐? 빨리 내쫓아라.”
✍ 만약 당시 입신양명해 성공한 여성이 있었다면 이런 질투 어린 시선이 일반적이지 않았을까?
(120-121) “내가 비록 무릎을 꿇고 빌지라도 어찌 나의 명망이 손상하고 벼슬이 무너지겠는가? 세상에는 용렬한 여자에게도 비는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형경 같은 부인에게 빌지 못하겠는가? 위징은 비록 아내에게 맞아 낯을 다친 일이 있었으나 사람이 위징을 용렬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소인종은 박후에게 목이 베였지만 사람들이 소인종을 어리석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이 두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으니, 아내와 지식에게 못 빌겠는가.”
그리하여 침상 머리에 나아가 슬피 애걸했으나, 형경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장연이 쇠와 돌도 녹일 듯한 말로 다섯 번이나 사죄하니, 형경이 비로소 잠깐 분노를 삭이고 말했다.
“침상 아래서 자라”
이에 장연은 옷을 입은 채 누워 밤을 지새우면서도 감히 형경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 <방한림전>에서는 방한림이 남장을 하고 평생 들키지 않고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도 얻어 겉으로 보기에 일반적인 성공한 삶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형경전>은 다르다. 여성으로 밝혀진 후에도, 모함을 당해도, 더욱 당당하다. 당시 여성들은 이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통쾌했을까? 또한 장연이라는 캐릭터도 독보적이다. 여성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매우 희귀한 모습의 남성인 장연의 모습도 참 낯설다. 그런데 지금도 참 보기 힘들다.
(132) 장연이 유서와 명정을 친히 쓴 후 이날 삼경에 죽으니, 자녀들의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부부가 한날에 돌아가니, 향기로운 구름이 집을 둘러쌌다.
✍ 82살까지 함께 살다 간 부부!! 동갑에 한시는 아니더라도 한날에 저 세상으로 떠난 부부의 모습.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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