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이정모)
- 행복한 책읽기/자연기술
- 2025. 4. 28.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팟캐스트가 유행할 때 한동안 “과학하고 앉아 있네”를 재미있게 들었다. 지금 그나마 가지고 있는 손톱만큼의 과학 지식은 ‘K박사’님과 ‘이정모’ 관장님 덕택이다. 당시 이정모 관장님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낯선 용어로 자신을 소개하며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셨다. 최근 “과학을 보다”라는 유튜브 방송에서 이정모 관장님이 책을 출간하셨다며 재미있게 ‘찬란한 멸종’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책 제목이기도 한 “찬란한 멸종‘은 모순어법을 사용해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멸종’은 종의 운명이 끝났다는 점에서 슬픈 일이다. 하지만 지구의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종이 출발할 수 있는 틈을 주기에 ‘찬란’할 수 있겠다.
이정모 관장님이 원체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 분인데 책에도 그런 어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 지질시대 주류종이나 독자들에게 익숙한 생명체를 서술자(화자에 가까운)로 내세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살았으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다섯 번의 대멸종이 화산 폭발이나 대륙이동, 소행성이나 운석의 충돌이 계기가 되어 생명의 상당수가 멸종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생태계는 회복되었으며 이전 시대 주류종의 빈자리를 새로운 생명체가 번성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인간에게 경고도 하며. 대멸종은 최고 포식자에게 가장 먼저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전 지구적 생물의 진화를 다루고 있어 문과생이 보기에는 정보량이 많았다. 하지만 ‘임의 침묵’ 모방시, 과거의 생활을 들려주는 상황극,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달과 바다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대본 등 다양한 시도와 함께 사진 자료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구의 역사에서 불과 12,000년 전에 시작된 홀로세의 최고 포식자 인류가 ‘찬란한 멸종’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읽으면서 메모한 부분.
(57) 결국 지구인들은 화성을 식민지로 개척하지 못했다. 지금 지구인의 삶은 처참하다. 사막화와 온난화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 화성을 개척하라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만약에 화성을 테라포밍하려는 노력의 1만분의 1이라도 지구에 쏟았다면 인류 종의 운명은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 이 부분은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2150년 인류가 멸종하고 아직 작동하고 있던 인공지능이 기후 위기 징후를 무시한 인간의 최후를 들려주는 부분이다. 인류는 지구를 아낌없이 다 쓰고 금성과 화성을 테라포밍하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 그만큼 지구가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알 수 있다. 지구를 지키자. 그게 최선이자 차선책이다. 읽다 보면 칼 세이건의 화성 테라포밍 제안이 참 무지하다는 느낌이 든다.
(74) 자연도 그렇다. 야생 생태계도 공평하지 않다. 충격을 더 많이 받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같이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들이 그렇다. 펭귄보다는 바다표범이 더 큰 충격을 받고 바다표범보다는 우리 범고래가 받는 충격이 더 크다. 더 먼저 멸종하게 된다. (중략)
그런데 인간은 조금은 별난 존재다.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명. 자연사에서 유일한 존재다. 아마 당신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버틸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도 영원할 수는 없다.
✍ 역시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범고래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펭귄, 바다표범, 범고래 사이의 먹이사슬을 통해 지구는 ‘골드버그'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서로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94) 산호에게 하등한 동물이라고 표현한 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한다.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다. 당시 나를 비롯한 인간들이 그랬다.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살았다. 이제는 깨달았다. 세상에 하등한 생물도, 고등한 생물도 없다. 모든 생물은 생태계의 틈새 하나를 맡아 자기 삶을 산다. 산호들이여, 앞으로도 쭉 건승하시라. 지구 생명체를 위해!
✍ 역시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환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발견한 다윈을 서술자로 한 가상의 목소리이다. 글을 읽어보면 그렇다. 지금의 멸종위기는 인간에 의한 기후 위기 때문이므로 인간만 변하면 된다고.
(106)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은 모두 지구적 또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대륙이 합쳐진다든지, 화산이 터진다든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생명체가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공룡들이 날뛴다고 해서 지진이 나고 화산이 터진 게 아니지 않은가? 공룡들이 운석 충돌을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또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역시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다섯 번의 대멸종은 생명에게 책임이 없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오로지 인류의 책임이다. 주거지와 농사를 위해 서식지 파괴,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의 문제, 남획, 외래종 유입, 지구 온난화(지구 가열화) 등은 오롯이 인류의 소행이기 때문이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났을 때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그런데 지금 평균기온이 16.5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213)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줄기 불덩어리가 스치고 지나간 작은 길을 따라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내가 님을 보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다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화자는 공룡이다. 6,600만 년 전 거대한 화산 폭발에 지름 10km짜리 거대한 운석의 충돌로 지구는 한동안 암흑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고양이 크기 이상의 동물은 다 죽었다고 한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생태계는 회복되었다. 공룡은 ’새‘만 남았고 포유류의 시대가 왔다.
(231) 고백한다. 나는 공룡의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질투가 질투에 머물렀다는 게 우리가 몰락하는 원인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 되어야 했다. 그들과 나는 같은 환경에 살지 않았던가. 이젠 공룡의 시대다. 그들이라면 절대로 멸종하지 않고 이 지구를 영원히 통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역사라는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돌려야 할 것이다. 혁신이 생활화된 공룡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룡들이여, 영원하라!
✍ 네 번째 대멸종에 대한 부분이다. 고생대 페름기에 형성된 초대륙 판게아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기에 쪼개지기 시작했다. 화산활동으로 온갖 종류의 산성 기체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혁명기보다 7배 높아졌고 기온은 상승했다. 저산소 환경에서 뼛속을 비우고 독특한 호흡기를 가진 동물(기낭을 가진)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공룡이다. 윗글에서 ‘나’는 아르코사우루스로 네 번째 대멸종 시기 주류종이였던 파충류 그룹을 말한다.
(249) 나는 세 번째 대멸종의 목격자로서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남긴다.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 또 최고 포식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물량이 가장 많았던 생물은 반드시 멸종한다. 보통 두 가지를 겸하는 일은 없다.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위를 담당하는 최고 포식자는 생물량이 적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은 먹이 피라미드의 아래쪽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최고 포식자이면서 생물량도 가장 많은 별난 생명이 등장할지. 만약 그렇다면 그 생물 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명일 것이다. 가장 성공적이지만 대멸종의 시기에는 가장 파멸적인….
✍ 고생대 페름기의 주류종은 ’디메트로돈‘으로 단궁류 파충류다. 이 시기에 양치식물, 겉씨식물이 활발하게 자랐으며 습지와 강에서 반수생 생활을 하는 양서류가 많았다고 한다. 고생대 페름기 말기 초대륙이 형성되면서 해안선이 줄어들고 사막이 늘었다.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 폭발로 심각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생명체의 95%가 사라졌다고 한다.
(267) 석탄기가 남긴 유산은 역시 석탄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간이 제일 잘 안다. 오죽하면 우리 시대의 이름을 석탄기라고 지었겠는가? 하지만 인간들이 애써 모른 척하려는 게 있다. 석탄이란 우리가 누려야 할 열이 땅속에 갇힌 결과다. 이 열을 3억 년 후에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등장했을 때는 대기에 없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는 더운 세상이 좋았지만, 인간들에게도 그럴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보통 자신이 출현한 그 환경이 유지되는 게 생존에 가장 좋다. 그 환경에 적합해서 선택되었을 테니 말이다.
✍ 고생대 석탄기는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농도가 높아 생명에게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고 한다. 거대 양치식물, 메가네우라 같은 고대 잠자리가 주류종이였다고 한다. 3억 년 전에 갇힌 열(=석탄)을 사용해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보통 자신이 출현한 그 환경이 유지되는 게 생존에 가장 좋다. 그 환경에 적합해서 선택되었을 테니 말이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310) 눈이 없던 시절 바다의 동물들도 빛의 세기가 변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빛의 세기에 반응하는 눈은 있었던 것이다. 이 세포가 수백만 년에 걸쳐 더욱 전문화되고 복잡해졌다. 그러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물 하나가 눈을 떴는데, 그게 바로 나다.
이 변화에 무려 100만 년이나 걸렸다. 혹자는 따지고 싶은 것이다. 눈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장치가 발생하는 데 100만 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자연사에서 100만 년은 짧은 시간이다. 그게 바로 진화의 묘미다. 단순한 산수 계산을 해보자. 한 세대당 0.005퍼센트의 변이만 있으면 빛을 구분하는 눈이 물고기의 눈이 될 때까지 40만 세대면 충분하다. 각 세대가 1년이라고 해도 40만 년이면 효율적인 상을 맺는 눈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100만 년이나 걸렸다. 아마 누군가가 생명에게 눈을 부여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보니 이렇게 오래 걸렸다.
✍ 고생대 캄브리아기 주류 종은 삼엽충이다. 삼엽충부터 눈이 등장했다. 아직 곤충이 탄생하기 전이었으며 신비하고 재미있는 부분이라 길게 발췌했다. '눈'의 탄생이 진화로 가능할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창조일까. 진화론과 창조론의 상당한 대결이 있었겠다. 지금도? 여하튼 눈의 탄생은 가장 큰 선택압력으로 작용해 캄브리아기 생명의 대폭발을 이끌었다는 이야기와 이어진다.
(324) 세포 안의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자연사에서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최초로 성공적 공생을 이뤄냄으로써 지구에 에너지 효율을 높인 생명체를 등장시켰으며, 세포들이 협력해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다세포 생명을 발명했고, 개체가 조직과 기관을 갖추게 했으며, 섹스를 발명해 생명의 회복탄력성과 진화의 기회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 38억 년 전 지구의 바다 어디에서 '루카(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가 등장했다. 이후 루카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생겼다. 이 둘은 단세포생물이며 원핵생물로 핵막이 없고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 소기관이 없었다고 한다.(학교 다닐 때 미토콘드리아는 들어 보았지만 루카, 원핵생물 이런 단어는 들어보지 못했다) 원핵생물은 혐기성 세균만 있다가 호기성 세균이 생기고 그 중 혐기성 세균 하나가 호기성 세균을 잡아 먹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아 한 몸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둘의 공생을 시작으로 미토콘드리아(호기성 세균)는 인간을 포함한 진핵생물의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손에 전달되고 있어 호주제 폐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는 스스로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세포의 자멸을 이끌고 개체의 노화를 유도해 개체의 죽음을 이끌고 건강성을 지킨다고 한다. 대단한 역할이다. 아참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의 힘인 '포스'가 '미디클로리안'이라는 물질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이게 미토콘드리아를 의미한다고. 진화과정도 놀랍고 이런 걸 알아내는 것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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