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 무 많이(김소연)

 
"반반 무 많이"란 제목을 떠올리면서 ‘치킨’을 떠올렸는데 맞았다. 이 책은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과 그때마다 민중을 살아가게 만든 음식을 소재로 당시 현실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결론은 삶이 힘들더라도 먹고 힘 내자는 이야기!(이야기가 재미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음식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생각해 보는 글이라 세대 공감을 위해서라도 중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모임 샘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 모임 샘들과 나이 차이가 5년 이상 있기는 했지만 광주와 순천 출신이 샘들과 강진 병영 시골의 내 경험이 달랐다. 이를테면 80년대 ‘떡볶이’가 나에게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렇지만 학창 시절을 이야기 나누며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님과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구마 보퉁이'는 1950년 한국전쟁 피란민의 고통을 담고 있었다. 대구로 피란 가는 길에 우연히 고구마밭에서 얻은 고구마로 배고픔을 해결하며 그것으로 금이나 차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어려운 할머니와 아이를 도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친절이 자신의 삶에도 희망이 되는 이야기이다. 따라오려는 전쟁고아를 매몰차게 떨쳐내는 장면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소설을 쓰다만 느낌이 있다.
 

(32) 반나절 만에 고구마 한 개가 아쉬운 신세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대통령 할아버지도 아무 말 없이 부산으로 가 버렸을까? 오촌 아저씨가 우리를 기다리기는커녕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가 버렸듯이 말이다.

 
'준코 고모와 유엔탕'은 한국전쟁 이후 1956년 미군 부대가 있었던 의정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였던 고모가 결국 군부대 물품을 밀매하다 교도소 생활을 하고 유엔탕 집에서 일을 배워 '부대찌개' 가게를 열었다는 이야기다. 어감으로만 보면 부대찌개보다는 유엔탕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62) 왜정 때 목숨 부지하겠다고 조상이 내린 이름을 성까지 왜놈 걸로 바꾸고, 그걸 또 무슨 자랑이라고 해방이 되고 10년이 넘었는데도 고집을 부리면서 입에 올리다니. 순자 고모뿐이었겠니. 미군정이 들어서고 나서 다들 미국말로 된 이름 하나씩 있어야 출세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는데 뭘. 이놈의 나라는 어찌 된 게 배운 놈이면 배운 놈일수록, 사는 놈이면 사는 놈일수록 골수에 사대주의가 박혀서 중국 다음에 일본, 일본 다음에 미국, 여하튼 사대할 나라는 귀신같이 찾아내 알아서 기니, 참 그 요지경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  꺼삐딴 리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요즘 수업을 하다보면 꺼삐딴 리가 현명하다는 아이들의 반응이 조금씩 나온다.
 
'떡라면'은 1971년 광주대단지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살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청계천 판자촌에 살며 옷 만드는 일을 하지만 청계고가 공사로 곧 철거될 위기체 처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경기도 성남시에 새로운 주거단지를 만들어 준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대규모 항쟁이 일어난다. 항쟁은 성공하지만 주인공의 집은 주동자로 몰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서울에서 삶을 이어간다. 연대의 끝이 아쉽다. 서울 생활에서 ‘라면’은 특식이었다. 거기에 팔다 남긴 떡을 넣어 더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은 먹거리가 곧 생활임을 나타낸다. ‘광주대단지사건’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민주네 떡볶이'는 1985년 서울 이야기이다.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진문화를 조성한다며 포장마차들을 철거한다. 한편 광주항쟁의 진실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는 철저히 봉쇄된다. 가진자들의 위선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연대, 그 속에서 빨갱이라며 비난받던 막삼촌은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음식 이야기와 다르게 ‘떡볶이’는 대중적인 느낌보다 서술자에게 방과 후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준 음식의 느낌이다.
 

(166)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가 어둠을 벗고 민주 사회로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그 희생이 깨어 있는 학생이나 시민들의 몫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천구백팔십 년 광주사태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이게 나랍니까? 군인이 비무장한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총검을 휘두른 일이 어떻게 쉬쉬하며 소문으로만 떠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 희생을 왜 자네 피붙이가 감당해야 하느냐고!”

✍ 연좌제라 횡횡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산의 초개와 같이 버리신 분들의 은공을 잊을 수 없다.
 
'반반 무 많이'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1997년 IMF로 대규모 부도, 실직자 발생. 살아가려는 씩씩한 아이들, 그 에너지가 삶을 포기하려면 아버지들까지 다시 일으켜 세운다. 치킨은 서민 음식이기도 하면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다만 수능을 신성하게 만드는 오버스러운 조치들, 입시의 도구일 뿐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는 학교교육의 문제 같은 것이 직업상 더 눈에 들어온다.
 

(227) 수능이 있는 날은 온 나라가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대학이 뭘하고, 대학 안 가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건만 왜 수능 날이 무슨 국경일이라도 되는 듯 호들갑을 떠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 100% 공감한다. ‘공정’, ‘평등’을 강조하기 위한 쇼라고 생각한다. 교육적 목적이라면 프랑스처럼 수학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험으로 하거나 미국처럼 여러 번 기회를 주어 수험생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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