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천선란)

 

인류 종말 이후의 이야기다. 지상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인류는 지하 생활을 하게 된다. 무려 지하 120여 층, 45천 헥타르라는 환산이 잘 안 되는 크기의 지하 세계를 만들고 인간을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세상이 되었다. 주인공은 열다섯 살 아이들 6(+1)으로 지하 생활의 답답함, 부조리와의 갈등, 미래, 짙은 절망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스포일러가 있음).

1바다눈부분에서는, 환경파괴로 인해 미래의 인류는 지하 생활을 하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출산, 주거 등을 통제받으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정신재활원 같은 곳으로 격리가 되는데 결국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서술자는 3인칭이지만 마르코를 초점화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직장 동료 커커스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하지만 결국 피폐한 몸으로 사라진다. 마르크가 관심을 갖는 직장 동료 은희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기 위해 돈을 벌지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결국 자신의 재능을 소비한다. 가상 세계, 인간 복제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남들과 다른 고유한 특징(개성)은 또 다른 환금 가치가 된다. ‘바다눈은 이 소설에서 음료의 이름이다. 바다를 떠다니는 눈. 지하에서 지상을 꿈꾸는 것과 같은 이미지다.

 

2우주늪은 마르코의 친구인 의주의 감추어진 쌍둥이 ’의조‘가 서술자다. 지하 세계란 한정된 공간에서 계획되지 않은 인간의 탄생은 철저히 봉쇄된다. 그러나 결단력이 약한 부모 때문에 살아남은 의조는 지하 생활 속 더(?) 깊은 지하 생활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기에 분노에 차 있다. 지하 세계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환풍구를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처지가 부모가 아닌 시스템에 있다는 걸 알고 세계 전복을 꿈꾼다. 물론 상징이겠지만 모든 게 철저히 감시되고 있는 지하 세계에서 환풍구가 해방구일 수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주늪은 동요 정글숲을 지나서 가자~’에서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으로 거기에서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3이끼숲은 이 책의 제목이자 마무리 부분이다.

친구들 중, 지상,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유오는 혹시나 뿌리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건축일을 진로로 선택한다. 그런데 그 일은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어 사후 처리를 위해 복제 인간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이야기는 유오를 사랑하는 소마의 시각에서 서술된다. 사고로 유오는 죽고 그 충격에서 절망하고 있을 즈음, 유오의 복제 인간이 곧 폐기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친구들은 유오의 복제 인간을 구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소마는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복제인간 유오를 구해 지하1층 온실에서 책임자를 만나고 지상까지 데려온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와 이끼를 만난다. 그리고 유오의 복제 인간은 정신이 돌아오며 유오가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사실일까, 아니면 소마의 환상일까. 지상 이끼나 나무,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상태라면 굳이 지하도시를 유지할 필요가 없고 온실을 만들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지하 세계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영화 아바타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바타에서 인간과 연결된 복제된 나비족 제임스에서 진짜 나비족이 되는 장면. 그때도 큰 나무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신령스러운 나무가 있었다. 지하 1층 온실에서 지하세계의 책임자를 만나는 장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설계자를 만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매트릭스를 벗어나야 세상이 보인다는 것일까. 이야기가 색달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다.

 

다음 주면 중추절한가위다. 가을의 가운데가 추석인데, 이곳 담양은 폭염 경보가 계속되고 있다. 날이 더위서인지 물고기 어항에도 이끼가 가득해 2주밖에 안 됐는데도 누렇게 보인다. 어항이 이끼숲이 되었다. 지구사적 관점에서 지구는 여러 번 리셋을 했다. 리셋 과정에서 주류는 매번 바뀌지만, 이끼나 바퀴벌레와 같은 생물들은 항상 지구를 지켜 왔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88) 닫힌 세계라서 이길 수 없었다는 커커스의 말을 달리하자면, 이곳이 지상이었다면 가능했을 거란 말이었을까. 이곳에 하늘이 없고, 건너갈 바다가 없고, 숨을 동굴이 없어서 백기를 들어야 했다는 말이었을까? 저 위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을 하면 되는 세상이었나.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옮겨가고, 위험하다 싶으면 멈추고, 잘못됐다 싶으면 돌아갈 수 있는. 역시나 살아보지 못해 알 수 없었다.

지상에 살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게 많지만, 지하 생활은 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제한적인 공간과 시스템 속에서 삶도 힘들도 특히 청소년에게는 꿈꿀 여백도 없다. 기후 위기는 인간의 삶을 대부분 어렵게 하겠지만 그 영향은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클 것이다. 경비업체는 급여를 올려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하고선 부도를 냈다. 새로운 사장과 이전 사장이 아는 사이일 거란 소문이 돌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자주 듣는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1년짜리 계약을 맺어야 했다.

 

(108) 내 자유는 보장받지 못했단다. 너는 네 자유를 당연하게 느끼겠지만, 아니야. 누군가가, 아마도 이곳의 통제와 정책이 너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을 뿐이야.

우리의 자유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환경, 기후 측면에서는.

 

(160) 너의 안전을 미리 신경써주는 것보다 클론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이제 더 쉽고 싸서 그런 것뿐이라고. 그렇게 화를 냈지만 정작 나는 그보다 더 큰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무전을 들으며 불안해했으면서도 나는 내심, 그게 너는 아닐 거라고 믿었던 거다. 철썩같이.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마지막 문장에 찌르르한다.

 

(165) 진화나 생태계 법칙으로 보면, 땅에 붙어 자라는 이끼는 높게 자란 다른 식물들에 비해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동물들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더 커. 심지어 수분도 많이 필요로 해. (중략) 그럼 더 빠르게 멸종되어야 했는데 이끼는 터를 잡은 이후, 단 한 번도 물러난 적 없어. 환경에 적응해 어떤 개체보다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중략)
달콤한 꿀은 말할 것도 없고,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끼를 먹고 싶어할 생명체는 이 행성에 별로 없을 것이다. 이끼의 생존은 신비로운 강인함이라기보다 생태의 흐름에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치사하게 빌붙어 사는 느낌이 든다.

이끼에 대한 자연적인 시각과 인간적인 시각이 대비된다. 인간 중심의 시각이 지구를 흔들어 놓았으니 자연 중심의 시각으로 지구를 봐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망친 지하 세계에서 우리 아이들이 치열하게 싸울 권리를 잃고 태어난 우리는 식물의 열매나 꽃처럼 활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을 테니까.”(173)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203)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강해, 그 어느 것보다.”
숲우듬지 사이로 퍼지는 빛의 파장을 먹고 자라는 이끼가 그렇듯이.

이끼는 거의 의 이미지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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