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아이(이희영)

 
독서 모임에서 이희영 작가님의 “테스터”와 “소금 아이”를 읽기로 했을 때 추천한 동료 샘이 “테스터”를 먼저 읽고 “소금 아이”를 읽어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듣지 못했는데, 읽어보니 서로 관련이 있기보다는 두 작품의 반전이 주는 충격과 여운을 고려해 “테스터”, “소금 아이” 순으로 읽어보라고 한 것 같다. 반전은 “테스터”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사실을 알고 나서 마지막 장면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반전의 여운은 “소금 아이”가 더 진했다. SF와 현실의 차이가 공감의 차이를 낳았던 것 같다. 여하튼 두 작품 모두 재밌다.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생각해 볼 것도 많고.
 
“소금 아이”는 지난달 토론했던 문경민 작가님의 “훌훌”을 떠올리게도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가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또한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어른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책을 읽고 난 여운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해 보았다.
 
#친구
이 책을 읽을 때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시골, 마치 섬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홀로된 외로움은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좁은 섬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이수는 할머니를 보내고 섬 집에 홀로 남는다. 그런 이수에게 섬(솔도)에 살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가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도 신기했는지 친구 세아에게 이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해 준다. 친구를 위로가 되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존재다.
 
#작명
소설을 읽으며 인물의 작명에 눈이 간다. 이수는 출생신고를 한 날이 수요일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수’하면 물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수(二水)’라는 이름은 삶의 두 흐름, 선택의 순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수’는 ‘세아’를 만나 좀 더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세아(洗我)’는 ‘이수’가 긍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씻어낸다는 의미로 읽으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런 면에서 ‘기윤(棄倫)’은 윤리나 도덕을 저버리는 인간을? 그래서 이수의 약점을 잡고 괴롭히는 등 일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물론 억측이다^^
 
#소금
소금은 음식의 맛을 두드러지게 하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사물의 색을 바래게도 한다. 그래서 소금은 이중적이다. 삶의 양면성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소금은 삶 속 아픔의 응결체이기도 하지만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한다. 이수의 할머니의 치매는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온 힘으로 버텨왔던 삶의 응결체가 치매로 흩어지면서 할머니의 속마음이 나타나는. 또한 이 소설에서 소금은 세월이 흘러도 아픔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소금’은 겨울 ‘눈’으로도 대비된다. 눈 역시 이중적이다.
 
#어른
이수와 세아의 부모는 제대로 된 어른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세아가 마음에 두었던 ‘지유’의 알바 가게 사장은 더더욱 어른스럽지 못하다. 청소년소설에서 이미지가 고착된 직군인 이수와 세아의 담임 역시 어른스럽지 못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주를 챙기는 할머니와 할머니에게 받은 도움을 잊지 않는 정우 아줌마의 태도에서 어른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수 할머니와 정우 아줌마 모두 이수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수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돕고 지원한다.
 
*인상적인 구절

(10) 할머니는 해풍을 늘 소금 바람이라 불렀다. 소금기가 묻은 건 쉬 변하고 상한다고. 이수의 시선이 고춧가루에 무친 빨간 조개젓에 닿았다. 소금기가 묻은 건 빛이 쉬 바랠 수도, 반대로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도 있었다. 소금 바람이 할머니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앗아간 것은...

 

(146) 세아가 멋쩍은 얼굴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과연 이 아이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넝쿨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사는 게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섬에서 사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배를 타거나, 헤엄쳐서 가보지 않으면 결코 그 속을 알 수 없는 섬들....

 
✍ 얽히고 설키며 힘들게 사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이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섬에 살아서 오히려 덜 외로웠다고 한다. 사람들 저마당게 ‘섬’이 필요하다.
 

(203) 일주일 사이 할머니는 급격히 변해 갔다. 젓갈 없이는 수저를 들지 않던 할머니였다.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 간 소금을 홍수처럼 밀려온 시간이 흔적 없이 녹여 버렸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아줌마는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214) 아줌마와 할머니, 그리고 이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가족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이수는 생각했다. 
“유전자 따위 별거 아니더라.”
이수의 마음을 읽은 듯 세아가 말했다. 꼰대라 부르는 아빠를, 먼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엄마를, 어쩌면 세상에서 세아를 가장 잘 알고 있던 한 분을 떠올리고 있을 터였다. 
(218) “가해자 한 명에 너무 많은 피해자가 나온다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거야.”
“......”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잖아.” 
언젠가 세아가 말했다. 온 세상이 나 하나 잘못되기를 바라는 날이 있었다고. 그런데 하루가 아닌, 평생을 그런 기분으로 살아간 사람도 있었다. 너무 많은 불행과 아픔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삶. 이수가 조심스레 주머니 속 편지를 만져 보았다. (중략) 
할머니는 결국 하나의 섬이 되었다. 그렇게 진실을 가슴에 묻었다.

 

(221) 섬은 가장 밝고 화창할 때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오래 머무는 이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만났다가도 머지않아 등을 보인다. 상대가 눈 덮인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더더욱 빨리.
역시 그렇구나. 관광객들 몰려들면 시끄럽겠다. 나는 행운이네. 사람들 찾지 않는 이런 때 오게 되어서
하지만 때로는, 무채색인 겨울의 섬을 찾듯, 헐벗은 사람 곁에 머무는 이도 있었다.

✍ 무채색인 겨울의 섬에서 헐벗은 사람 곁에 머무는 이가 진짜 ‘가족’이다.
 

(227) 그 눈송이가 바다에 떨어져 소금이 되었다. 세상에 소금이 내렸다. 차갑게 언 마음을 녹이려.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도록 그렇게 짭조름한 눈을 퍼부었다.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인지도 몰랐다. 무르지 않도록, 상하지 않도록, 꼭꼭 감싸서 지켜 주고 싶은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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