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지혜진)

 

5월 말 책폴출판사 사장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청소년 책을 출간해 보내주신다고. "함께여는 국어교육"에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새로 출간한 책을 보내 주신다. 매번 바로 읽고 소감을 남겨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하다 보면 시기를 놓치거나, 읽었어도 소감을 정리할 여유를 갖지 못해 마냥 미룰 때가 많아 매번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번엔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외조부모님 기일이 주말에 있어 어머니를 모시고 북한강공원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형제분들 대부분이 서울에 계시는데 혼자서는 집안 행사에 참여를 안 하신다. 그래서 주말에 행사가 생기면 모시고 올라간다. 어머니는 아끼자고 고속버스를 타자고 하시지만 내 체력이 버스를 버티지 못해 기차를 고집한다. 어머니란 이름의 시공간과 아들이란 이름의 시공간은 이웃한 항성계일 때가 많다. 여하튼 상경하는 길의 행신역까지, 돌아오는 길의 광주송정까지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책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엑스트라"라는 제목에서 큰 흐림이 짐작이 된다. 책을 읽고 나니 표지가 책 내용을 잘 드러내고 있다. 대체로 책폴 출판사의 책을 읽고 나면 표지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중학교 담임으로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학생들 사이의 관계이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또래 집단은 가장 큰 문제이다. 또래에 들어가는 것도, 그 안에서의 갈등도, 잘 맞지 않아 다른 또래에 결합되면서 기존 또래와의 갈등이 심화돼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담임의 힘으로 조율, 조정하는 데에 한계가 많았다. 특히 남자 담임으로서 여학생들의 관계는 풀기 참 어려웠다. 갈등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욕구가 특별히 더. 결국 본인이 극복해야할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런 학교와 교사의 모습을 문제 삼는 부분이 많다.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나를 돌아보려 노력한다.

 

소설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언급되는 시공간 좌표계를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아니 비유하고 있다가 적절하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관계를 잘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우주와 비슷하다. 질량이 큰 사람을 중심으로 시공간 좌표계가 형성되고, 그 주변부는 빨려가거나 그 주변을 돈다.

학교 구성원 모두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지만, 즉 각자의 시공간 좌표계를 형성하고 싶으나 학교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은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블랙홀과 같은 더 큰 힘들이 작은 시공간 좌표계를 흔들어 버릴 때가 많다. 예전엔 그게 성적이었다면 지금은 더 다양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차이로.

그래서 주인공 신혜가 이 시공간 좌표계를 벗어나는 일이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내 위치를 파악하고 내 영역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바로 서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서인하'에게 공감이 많이 되었다. 세상은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면이 있다. 배우의 꿈을 성실히 키워가던 인하가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시 자신을 찾고 신혜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인하가 서술자로 등장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사회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인간의 특성 상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흐름에 끌려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시공간 좌표계를 매번 튼튼하게 구축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아내가 소중하다. 적어도 나는 아내가 있어 쌍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어떤 한 기준으로 시공간 좌표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학생이든 교사든. 우주처럼 다양한 항성들이 존재하길 바란다. 우주가 그렇다면 그게 맞다. 우주를 우리에 맞출 것이 아니라 좀 더 우주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창백하고 푸른 점에 살고 있다는 것부터.

 

<밑줄 긋기>

(39)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웃다가 곧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게 정말 웃을 일인가?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다라 아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학교라는 공간은 모두를 위한 곳임을 강조했지만, 오로지 주인공의 자표로만 움직이는 공간이었다. 그 주인공들과 발맞추지 못하면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절박함이 늘 공존했다.

(125) 우리는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서로 비슷한 좌표계를 가진 친구처럼. 그러니까 친구가 된다는 건 서명하고 단순한 일이었다.

(157)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애들인 줄 알면서도 곁을 내주려 안감힘을 쓰는 나에게 화가 났었다. 그런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그 애들과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내 이야기였다. 그 애들을 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바로 나였다.

(162) 어떤 이유로 함께가 되고 또 어떤 이유로 서로 욕을 하며 멀어진다. 모든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에는 유독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그건 우리가 모두 같은 대본을 받기 때문이다. 작년에 담임은 우리에게는 저마다 다른 시공간 좌표계가 있다고 했지만 학교에서만은 예외다. 모두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니까. 나도 그랬고, 저 애들도 그럴 뿐이다

(188) 서인하를 알고 나서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ㅇ르 자주 하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생각이 결국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서인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몸과 마음이 뾰족한 채로 어느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었을 거다. 내가 이 시간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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