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휴먼스 랜드(김정)

 
‘노 휴먼스 랜스’란 제목과 ‘잠수교’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 그림에서 우리나라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임을 예상하게 한다. 머지않은 미래, 적어도 대한민국을 ‘노 휴먼스 랜드’로 만들만한 사건은 북한의 위협이 아닌 ‘기후 위기’다.
아마 가까운 미래, 그래서 기성세대도 생존해 있을 미래에, 우리 후손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과 실천에 대해 맹비난을 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말의 ‘바보’의 어원을 ‘밥보’에서 찾기도 한다. 자기 생각만 한다는 점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이 소설은 ‘용산 공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용산 공원은 미군 부대가 철수한 뒤 토양 오염이 심해 계획보다 더 늦게 개방되는 것으로 나온다. 한 번 망가진 환경을 복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현재인들에게 실감 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노 휴먼스 랜드 조사단’의 이동 경로인 용산공원에서 서울대까지의 상황도 인상적이다. 일상적인 삶이 갑자기 뚝 끊어진, 현대 서울이 마치 전쟁을 치른 도시처럼 그려진다. 우리나라가 ‘노 휴먼스 랜드’가 되는데 중요한 사건인 ‘1차 세계 재난’, ‘2차 세계 재난’이란 단어는 ‘기후 위기’가 외부의 문제가 아닌 내부 총질이라는 상징으로 읽힌다. 인구 천만 명 가까운 도시가 ‘노 휴먼스 랜드’가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역설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 위기’ 속에서도 인간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도시인’, ‘그레이 시티’, ‘불법거주민’ 등 태어난 조건에 따라 인간의 등급이 나뉘고 그에 따른 차별도 당연하게 인정된다. 그런 차별을 고착하는 곳이 ‘유엔기후재난기구’고,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플래그리스’ 역시 호응하기에 무리가 있다.
 
또다시 문제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이때에도 똑똑한 ‘개인’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히틀러처럼. 소외된 ‘다수’의 힘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재미있다. 세부적인 개연성까지 따지면 토론 거리가 많아지겠지만 주제 의식은 명확하다. 기후 변동이 가장 크다는 동아시아의 끄트머리 우리나라가 ‘노 휴먼스 랜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절박함이 필요하다. 날씨는 중국이, 지진은 일본이 막아 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
 
*인상적인 구절

(33) 2차 세계 재난 이후, 한나는 자신이 미워하던 옛날 사람들처럼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화가 사라지고 마법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변 사람들과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몰라보게 서글서글해진 한나를 반겨 주었다.

 
✍ 사람을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기후 위기가 지속되고 삶을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예민한 사람들도 결국 적응하게 된다. 우리 모두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돼 가고 있다.
 

(76) “플래그리스는 기후 재난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야. 그들은 인류 문명이 실패했기 때문에 기후 재난이 발생했다고 믿어. 그래서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문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 기존 인류 문명이 실패했으므로 새로운 문명을 시작해야 한다. 국가, 국제기구, 종교 등 모든 체제를 부정해야 한다. 플래그리스는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들이지만 그 이상향을 보여준 적은 없다. 문제 해결로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인가.
 

(197) “플론으로 단순히 노 휴먼스 랜드 해제로 인한 분쟁만 마겠다는 건 아니야. 사람이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플론은 전쟁과 기근, 폭력과 차별, 불평등과 기후 재난 걱정 없이 천년만년 인류가 계속 지구에 존재할 수 있게 할 유일한 방법이거든. (중략)"
"하지만...... 자아가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잖아요.근데 그러면 자이가 없어진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  이 부분에서는 '플론'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그려진다. 주관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행동만을 반복한다. 주체적인 자아가 없다면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라도 생존해야 할 이유가 뭘까.
 

(254)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죽을 듯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 노력이 가상해서, 불쌍해서, 혹은 간절히 기도를 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십여 년 살아 보니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도해야 한다. 어떤 일이 되게 하려면, 결국 다시 해 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계획을 떠올린다.

 
✍ 나와 세상을 변화하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진실은 계속 도전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뉴 휴먼스 랜드'가 되는 걸 막을 유일한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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