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천선란)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25. 1. 14.
모임에서 천선란 작가의 “이끼숲”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천 개의 파랑”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마침 10월 경남 사천 문학기행 답사하는 동안 윌라 오디오북으로 소설을 들었다.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무등도서관에서 ‘큰 활자본’ 책을 빌렸다.
비록 운전하면서 들었지만 줄거리는 파악이 되었다. 오디오북으로 들을 때 ‘지수’와 ‘콜리’의 목소리가 개성적인데 책을 읽을 때에도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운전하면서 들어서인지 책으로 다시 읽으니 내용이 훨씬 섬세하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배경은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자리 일부를 대체하고 있어 휴머노이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 있는 시대다. 그렇다고 차이 나게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고 한 10년 뒤 정도의 세상일 것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학생들은 수능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야자를 한다. 하반신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스마트 의족을 만들 수 있지만 의료보험 적용이 안돼 서민이 사용하기 어려우며 여전히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경마 열광하고, 여전히 지구의 동물은 인간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빠져 있다. 같은 일자리를 휴머노이드가 대체하고 있어 인간의 일자리가 줄고 있으며, 편의점이 여전히 운영되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교외로, 가족과 함께 맛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지금의 이야기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여러 등장인물에 초점화 돼 있어 작가의 의도가 잘 읽힌다.
먼저 눈에 띄는 캐릭터는 ‘콜리’다. 콜리는 기수 휴머노이드이다. 그런데 인간의 실수가 겹쳐 천 개의 단어와 학습 기능이 탑재되었다. 이 능력으로 생명의 반응을 파악하고 이를 감정과 연결 지어 저장한다. 즉 기억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콜리’는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생명을 가진 누구보다 질문이 많고 답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관찰을 통해 상태나 감정의 변화를 파악한다. 또한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오디오북에서 들은 콜리의 목소리가 저장돼 있지 않았다면 책을 읽으며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콜리를 보며 인간과 인공지능(휴머노이드)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 책에서 둘의 관계는 길항적이기보다 상보적으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설정돼 있으며 인간을 돕고 있으므로. 그러나 등장인물 누구보다 콜리는 인간적이다.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엄마 ‘보경’은 잘 풀릴만한 순간에 사고로 꿈을 포기하게 된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지만 더 큰 사고로 절망에 빠진다. 홀로 가정과 가계를 꾸려 나가지만 큰딸 은혜, 작은딸 은재와의 정서적 거리는 멀어지고 벽이 생긴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보경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큰 병을 앓고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은혜’는 집안 형편으로 의족을 구입하지 못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장애인을 위한 각종 대책이 역설적으로 장애의 벽을 느끼게 해 준다는 비판에 설득력이 있다. 자기 삶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로봇공학자가 꿈인 ‘연재’는 현재 상태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빈부의 차이를 겪으며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본인도 기대하지 않는 고립된 존재가 된다. 버려진 콜리를 전 재산을 들여 사들이며 콜리를 수리하기 위해, 지수와 일종의 거래를 한다. 집안 형편으로 유학 등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주위 사람을 통해 가장 필요한 기술을 개발한다.
복희는 생명을 살리고자 수의사가 되었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혹사당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동물들의 안락사를 맡고 있다. 기자인 서진은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특종을 포기하며 모종의 거래를 한다.
이렇게 주 인물들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시공간 좌표계를 가지며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을 연결하는, 또는 엮는 '존재'가 콜리다. 그래서 공감이 되고 의미를 되새길 만한 부분이 많다.
제목 "천 개의 파랑"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하늘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그 하늘이 곧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콜리'처럼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며 감정과 개념의 의미를 정리해야 한다. 또 삶과 세상에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타인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멸종해 가고 있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존 의식도 필요하다.
밑줄 긋고 생각해 볼 구절이 많았다. 책을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괄호 안의 쪽수는 '큰글자도서' 기준임.
(113)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중략)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 ‘성장’을 세상의 불합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열일곱 살 연재의 생각이 안타깝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영역에서 차이가 차별로 굳어지고 있다.
(205)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233)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 학교의 역할이 행복을 경험하고 쌓아 가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221)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은혜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지하로 가라앉은 은혜를 모르는 척 외면하더니 어느 순간 휠체어에 앉혀놓고 측은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 기술이 너를 구원했다는 듯이 굴었다.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 사람들 모두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각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다.
(251)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예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복희자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 코끼리 상아의 밀렵으로 상아가 없거나 상아가 작은 코끼리 개체만 태어나고 있다는 바탕글이 생각난다. 인간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가 공멸임을 경고하고 있다.
(271) 콜리는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도리어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322)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있나요?"
✍ 대화의 힘이 느껴진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접촉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했는데 딱 그 이야기다. 이 부분에서는 관찰의 힘도 느껴진다. 관심 있는 대상의 대한 오랜 관찰 속에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343)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중략)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천 개의 파랑”이란 제목처럼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게 세상에 너무 많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이 소우주이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것이 퀴즈라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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