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시에 교사의 잡무 처리 시간도 포함하라.

'장학 업무 통계 및 현황 사용자 연수(학교 폭력, 안전 사고, 전문 상담)'라는 제목의 전달 연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공문이 학생부로 와서 연수에 간 것이 어제(2008.12.2)의 일이다. 


연수는 '학교 폭력',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NEIS 시스템에 이를 등록하고, 처리하며, 사건이 마무리 되면 마감처리를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 작업의 취지가 학교폭력의 발생 현황 및 처리에 관한 사항도 정보 공시 대상에 포함돼 정확한 통계 자료 산출을 위한 것이며, 생활지도 관련 각종 자료 제출에 따른 일선 학교의 업무 부담 경감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모여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NEIS의 장학 시스템에' 학교 폭력, 안전 사고, 전문 상담' 메뉴를 추가했다는 전달 연수는 현장에 미칠 파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내년 3월부터 실시하겠다는 말 그대로 전달 연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 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겠다는 내부 공문을 만들고, 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써서 교육청에 보고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나면 회의록을 기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필요한 조치를 해왔다. 사건의 처음부터 마무리인 징계까지 학생부 교사들은 학생 상담, 사건 파악, 회의 자료 준비, 회의 기록, 징계 내용과 결과에 따른 관련 기관의 섭외, 교내봉사의 경우 자체 징계 프로그램과 실행까지 모두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6월말, 12월말 S-S추진계획에 따라 시교육청이 만들어준 서식에 따라 보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전달 연수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되면 'NEIS>장학>학교 폭력' 메뉴에 사건을 등록해야 한단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거듭할수록 그 과정을 입력하고, 해당 학생들에 대한 조치도 입력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 또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지 않아 어느정도 정보만을 집적한, 인권은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그렇지만 통계를 위해 세세하게 선택해야하는 항목을 보면, 학생부 교사의 잡무 처리시간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한숨만 나온다.


정리하면 결국 기존의 방식대로 할 것은 다 하고, 통계를 위해 새롭게 NEIS에 입력도 해야 한다. '학교 폭력'과 함께 연수가 진행된 '안전 사고'도 사고에 따라 인터넷으로 학교안전공제회에 접속해 내용을 입력하고 출력한 서류를 결재받아 왔던 지금 과정 외에, 학교안전공제회 신청과 상관없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기록하고 마감하도록 돼 있다. 심지어 '전문 상담' 메뉴는 매번 상담할 때마다 그 내용을 일일이 기록해야 한단다.(표본 화면이 그렇다)


연수 후 많은 교사들이 질문이 쏟아졌다.

먼저, 시교육청의 연수 자료에는 정보 공시를 위해 이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보 공시는 일년에 한두 번 통계 자료만 제시하는 것이므로, 지금처럼 일년에 두 번 제출하는 공문으로도 가능하다. 결국 교과부는 정보 공시를 이유로 불필요한 일을 만들고 있다.


연수 강사는 교과부에서 말하길 해마다 보고되는 학교 폭력 통계들이 들쑥날쑥해 자료로써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와  결과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학교 폭력에 대해 감추려고만 한다고 지적하고, 학교 폭력이 많다고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니, 교사 자신을 위해서도 혼자 감당하지 말고 드러내라고 했다.
교과부는 학교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늘어나는 이유를 정말 몰라서 전국에 있는 학생부 교사들 동원해서 통계를 내려고 하는 것인가.


교과부나 시교육청의 말대로 일어나는 사건마다 다 기록한다고 하자. 학교에서는 수없이 많은 다툼이 있다. 학교폭력법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 학교 폭력이다. 학생부에서는 피해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있을 때, 요구가 없더라도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고 있다. 모든 내용을 다 기록한다면 통계를 위해 기록한다는 이 업무 조차도, 가르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다. 교과부에서 학교폭력이나 안전 사고 입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해서 얼마나 원하는 신빙성 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기껏 시교육청에서 한다는 말이 내년 업무 분장에 NEIS 입력 업무를 넣으라고 하지만, 교사 인원은 한정돼 있으니, 결국 업무만 더 추가되는 것 아닌가.


프로그램을 만들 때 업무를 줄이려는 취지가 있었다면, 프로그램 개발부터 관련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마감이 모두 끝난 뒤 통계 확인에 파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통계 자료를 입맛대로 편집할 생각만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는가. 적어도 학교폭력이 처음 발생하여 사건을 등록할 때 그것을 출력해서 그것만으로 내부 결재를 맡게하거나 전자결재로 교육청의 사건 보고까지 끝나도록 만들어 주거나,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등록한 사고 내용이 바로 학교안전공제회와 연동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업무를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가능하지 않을까.


업무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통계를 문서로 보고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메뉴를 만들어 정보를 집적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NEIS를 학교 현장에 처음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려 했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 교과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갑자기 메뉴하나 개발하고, 관련 교사 불러 전달 연수 하고, 현장에서 연구하고 상담할 시간 빼앗아 잡무 처리하도록 하면 어떤 정보든 쉽게 집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 관련 사용자 설명서를 보면서 '생활 지도' 등의 메뉴도 보았다. 세부 메뉴에 흡연 등을 기록하는데, 육하원칙의 세부 항목을 일일히 선택해 통계 내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역시 학생부에서 지도하고, 시기별로 교육청에 통계 결과를 보고 하고 있다.


기왕 교육 서비스를 위해 정보 공시를 한다면,
교사의 잡무(중복되거나 가르치는 데 직접 관련되지 않은 업무들) 처리 시간을 "집적"해서 공개하는 것은 어떤가. 각 학교 교사가 아이들과 상담하고 수업을 준비해야하는 소중한 시간을, 얼마나 많이 잡무 처리로 보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학교나 관할 교육청, 교과부에서 업무를 줄이기 위해, 만들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불필요한 메뉴를 한꺼번에 닫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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