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분회 참교육실천 발표대회 원고

1. S중학교
우리 학교를 1지망으로 쓰고 나서 뜻하는 않은 전화를 받았다. 나 때문에 국어과 인사에 어려움이 있으니, 문화중이나 각화중으로 가는 것은 어떻냐는 질문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몇 가지 이유로 1지망을 쓰긴 했지만, 막상 여러 차례 전화를 받으면서 이 학교로 꼭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우리 학교와의 만남은 참 어려웠다.
학교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교장·교감 선생님의 강권에 못 이겨 학생부장을 맡게 되었다. 강단지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상의 문제도 있지만, 전입한 처지에 선택할 여지가 뭐 있을까 싶은, 그러니까 전의도 상실했다. 이후로 몸에 맞지 않는 학생부장을 하느라 1년이 빨리 흘러가길, 이렇게 기다린 적도 없었다.
올해처럼 학교가 나에게 많은 선택과 짐을 준 해는 없었다. 일이 끝나가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학생부장 생활과 평생 내 인생의 과제인 “국어 수업”과 관련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2. 생활지도부, 학생자치부, 학생복지부
사실 학생부는 정말 피하고 싶은 업무였다. 교사, 학생, 학부모를 좋은 일도 아닌 문제로 만나야 하는 것이 싫었고, 나 스스로는 그렇게 교육적이라 생각하지 않은 용의나 두발 단속으로 아이들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어야 하고, 그 정점에 서 있어야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맡기로 했으니 하긴 해야하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참 고민스러웠다. 가. 학생부 역할을 돌아보며
일단 아이들 얼굴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교문에 섰다. 지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서 있다 보면 눈에 거슬리고, 출근하시는 선생님들이 한 마디씩 하시면 무안하기도 해서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하고, 그러다 어느 정도 얼굴이 익혔지만 그동안 했던 것 때문에 중간에 그만 두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사실 주변에 원칙적이고 강성(强性)인 선생님이 많아 부담스러웠다. 아직 역할 모델이나 학생부 활동의 목표를 그리지 못했지만 여하튼 하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3월 말 금품갈취와 흡연이 적발되었다. 폭력 없는 학교, 그것이 학생부가 할 일차적인 업무라고 생각했다. 일단 학교폭력이 접수되면 조사하고, 회의를 열고, 결과에 따라 징계하는 과정을 통해 공론화하여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이런 일을 처음 해 보는 내 처지에, 학교폭력법이라는 것은 나에게 판단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11번이 넘는 학교폭력위원회에 5번에 걸친 생활선도협의회를 열었다.
출근하면서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말이 거짓이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어떤 벌을 주는 것이 좋을지,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녹취한 내용을 다시듣기 하면서 교사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내가 뭐 하러 학교에 오는지,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인지.
애쓴 만큼 학교 폭력은 줄었는지, 학생부에서 이렇게 전담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결국 학생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징계 수위를 높혀 전학 보낼 구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적일 때가 많았다.
학교 내 우리 부서의 공식 명칭은 ‘학생자치부’이다. 그러나 학생 자치 활동에 있어서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학생회를 통해 최소한의 어떤 사업도 진행하지 못했다. 물론 그 이면에서 학급자치활동을 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 등 학급 중심의 자치 조직이 활동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그걸 이끌고 교육하는 것이 학생부의 역할이라 할 때 부족한 게 사실이다.
결국 소수의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비슷하다. 학생회 간부와 학급 임원들을 상대로 자치활동에 힘을 쏟거나, 문제 아이들을 상대로 씨름하여 일벌백계하거나, 결과적으로 네가티브 전략에 휘말려 교사로서의 삶이 각박해졌다.
나. 학생부 역할 찾기
먼저 학생부 인원을 충분히 늘려야 한다. 기피하는 부서에, 특별한 인센티브도 없는데, 사람까지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다. 돌아가면서 하거나, 교사의 업무를 관리자가 덜어주는 방법이다. 난 절대로 올해와 같은 인력 구조에서는 학생부장을 못한다. 다음에 누가 학생부장을 하건 학생부의 역할을 문제제기한다는 측면에서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최소한 일주일을 오롯이 학교에서 보낼 수 있는 두 명의 교사를 학생부로 배치할 경우에도, 일상적인 학생 관련 업무(공문 처리 등)와 학교 폭력 등 생활지도, 학생 자치활동 외의 업무는 처리하기 힘들다고 본다.

먼저 교문 지도는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학생부 교사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지도’와 관련이 있고, 아침부터 교문에 서 있는다는 것은 아침부터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교사 대신 자율선도단을 동원하여 학생이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 지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인데, 구조상 그렇게 안 된다.
용의 지도 역시 학생부에서 지도하기 어렵다. 경험적으로 용의 지도는 팀워크이다. 학년협의회를 통해 같은 기준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아이들에게 규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 다른 학생의 특별한 경우가 문제일 뿐이다. 지도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학년부장이 주도해서 할 일이다. 학생부에서 무리하게 끌고 나가다 보면 무리수를 쓸 수밖에 없다. 징계 역시 쉽지 않다.
학교폭력이나 생활선도협의회 결과에 따라 징계로 실시하는 교내 봉사 역시, 학년부나 관리자 선에서 지도하는 것이 좋겠다. 학생부가 아이들 징계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고, 회의 내용 정리하고 회의 결과에 따라 지도까지 하는 상황에서 징계가 징계의 목적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징계는 최대한 교사와의 접촉을 늘려, 그 과정에서 상담하고 아이를 감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어야지, 해치우듯 하는 징계는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해도 학생부를 맡겠다는 선생님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학생부 업무 모든 것이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님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업무이고, 업무가 가르치는 일보다 더 많으면 교육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학생부가 교육을 한다면 그것은 ‘규정’을 지키는 준법 정신보다, 학생자치부의 특성에 맞는 학생자치 활동을 내실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국어 수업: 1500쪽 읽기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교과서를 통합하거나 활동을 통합하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과서를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1000쪽 읽기와 생각공책 쓰기를 수행평가로 보완하면 최소한의 활동과 내용의 통합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웠다.

가. 1500쪽 읽기에 다걸기(올인)
책 읽기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사교육과정 속에서 책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때 ‘말’은 아이들이고 ‘물을 마시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독서를 정신 작용으로 보면, ‘말’은 아이들이고 ‘물을 마시는 것’은 독서 행위보다는 책과의 정신적인 교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교는 이른바 ‘물가’까지는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물가로 이끌어 가면서 물가의 풍경도 보고,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 신해철은 교육희망에 4·15학교자율화조치를 비판하며 학교는 아이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며, 교사는 아이에게 어떤 계기가 생겼을 때 그것을 인지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강조 했다. 맞는 말이다. 정해진 교과서 진도 안에서의 이미 효용을 잃어버린 지식만을 유의미하게 평가하는 현재와 같은 공교육 분위기에서 그 계기를 자극하는 것은 책이 채워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1500쪽 읽기 수행평가는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1500쪽 읽기
모든 교육활동이 그렇듯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3월 초, 수행평가 계획을 제시하며 독서량이 많으면 부족한 수행평가 점수도 메울 수 있다고 아이들을 꼬드겼다. 생각공책을 만들고, KBS 스페셜 “그들은 책을 읽었다”를 보여주며 유명인사의 입으로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들려주었고, 한비야 씨의 글과 독서 관련 명언, 추천도서 목록 제시, 감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 “내 마음의 책키 이렇게 자랐어요”라는 점검표를 만들어 약간의 경쟁심도 유도했다.
이 활동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한 활동이었는지는 수업 평가를 통해 들어봐야할 일이지만, 결과로 보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개입된 활동이므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1500쪽을 읽지 못한 결과로 보면 실패지만, 수업시간 외에 이루어진 활동이고, 1학기 때보다 전체적으로 독서량이 많아졌고, 덕분에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아이들을 이야기로 보면 소기의 성과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다. 내년에도 독서활동에 다걸기
내년이라고 독서 활동의 중요성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내년에도 독서활동은 계속 할 거다. 다만 몇 가지 보안할 점,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의미 있게 활동할 수 있겠다 싶어 몇 가지 방책을 생각해 보았다.
본래의 취지에 맞게 물 마시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겠다. 생각해 보면 1.5리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물맛을 보게 하는 데 교육활동의 취지가 있겠다. 물은 종류도 많고, 물맛도 다 다르다. 그 중에 자신에게 맞는 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5리터라는 양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물을 먹도록 제시 방식을 바꿔야겠다. 독후 활동이나 책 점검도 책의 내용과 자신의 경험이 맞닿는 지점을 확인하는 정도로.
수업 외적인 활동으로는 도서실이 좀더 다양한 책들을 구비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야할 것이고, 다른 교과의 도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추천도서 목록을 좀더 다양하게 꾸밀 수 있을 것이고, 학급 담임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학급별로 “도전 10000쪽 읽기”나 “도전 10종 세트 읽기” 등으로 책 읽기의 부담을 줄이면서 독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겠다.
학교 차원에서는 독후감 발표대회, 독서 주제 발표대회, 독서 퀴즈대회나 독서 골든벨, 학급 대항 독서 대회, 학부모 독서회와 연합하여 문학기행 주최 등 아이들의 계기를 자극할 많은 행사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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