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문학을 접할 때마다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작가들이 많이 있었나 하고 놀란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가시적인 분량은 매우 짧지만, 우울하고 불길하고 침울한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댈 줄 알았는데, 읽는 내내 한탸의 수다에 쏙 빠져 버렸다.매 장마다 반복되는 구절인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안나 카레니나>, 두 도시 이야기> 이후로 가장 인상적인 서문이었다. 어쩌면 반복의 주술이랄까? 혹은 이십오 년째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오로지 술과 책으로만 채워진 한탸의 삼십오 년의 삶은 비루하고 비참하지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도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18쪽)’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릴 만큼 시궁창 속에서도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그동안 이 작가를 왜 몰랐을까?이토록 냉철하면서 따뜻하고, 유머와 냉소를 적절히 섞어서 표현하되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작가를 말이다! ‘로봇(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짧은 희곡이지만, 행간에서 펼쳐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통찰과 고민, 노동의 가치 혹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져올 미래(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면 과연 인간이 자아실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공상,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인식과 태도, 무조건적인 진보에 대한 비판 등 독자를 쉼 없이 상상하고 고민하게 하는 진짜 두툼한 책이다.1900년대 초 격동의 시대를 동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깊고 넓은 통찰력과 상상력으로 독자를 매료시킨 작가가 있었다니!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두툼한 도롱뇽과의 전쟁>을 다시 읽게 되..
솔직히 카프카의 장편 한 편을 읽어냈다는 것이 ‘유일’하게 ‘뿌듯’한 책읽기였다.무엇 때문에 소송을 당했는지 모르면서(심지어 ‘소송’이 아닌 ‘체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더 헷갈리고 정신없었던 것 같다), 3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요제프 K의 대응, 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한 노력에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누군가 도움이 될만한 주변 인물들을 만나겠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어가는데, 마지막 챕터 ‘종말’에서의 허무한 죽음(살해?)은 도대체 뭐지? 이 허무함, 배신감!! 게다가 미완성이라니!!! 주제를 알 수 없는 전개임에도 매 챕터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꽤 인상적이지만 주인공에게 대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다. 첫 장부터 충..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소송>을 선택하면서, 체코 프라하를 알 수 있는 프라하>라는 단편 소설을 엮어 읽기로 했다. 솔직히 소송>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아무리 단편 모음이지만 이 책도 만만치 않았다. 낯선 작가들과 낯선 지명, 낯선 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특히 프롤로그가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프라하라는 같은 공간에서의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각각 나름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 매력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너무 힘들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니 프라하를 가게 된다면 책에 예쁘게 정리되어 있는 지도를 짚어가며 단편들을 재미있게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미로 속 다양한 미술품처럼 어떤 작품들은 ‘뭔 말인지 이해가 안 ..
공부 못하는 나라, 하지만 꼴찌도 행복한 나라 ‘독일’을 가다 1.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가르친다 교육학 고전인 “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커 J. 파머, 한문화)”에서는 교사는 자신의 자아를 가르치며, 훌륭한 가르침은 테크닉이 아닌,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교사의 자아는 무엇일까.청춘을 교직에 바치려 했을 때의 신념, 아이들과 만나는 주요한 통로가 되는 교과에 대한 즐거움, 학창시절을 통해 겪었고 현장에서 존경의 사표가 되어주는 위대한 스승과 나의 가르침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뜰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한데 얽혀 정체성을 이루고, 이를 끊임없이 유지하며 실천하려는 성실성이 교사의 자아라고 한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교사의 자아는 매번 다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