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고 한 달을 보냈다. 1학기를 마치며 서운하고 답답했던, 그래서 2학기 땐 방법을 바꿔보리라 마음 먹었던 일들이 얼마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돌아본다. 최근 몇 년 '겁없이' 수행평가로 "1000쪽 읽기"를 하고 있다. '겁없이'라는 말은 가르치는 학생과 학부모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평가'를, 도서실 장서만 '수 천 권'이 될 책을 검사하겠다는 수행평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특별한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다. 동료 국어교사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었던 좋은 책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고, 그렇게 하기 위해 좀더 강제하고, 아이들과 면담하면서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리라 장점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면서 아이들과 많은 책을 이야기하고 많은 생각을 나누었..
학생부장은 계속 할 일이 아니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외에, 사람을 만날 수록 상처와 화가 나를 잡아 먹기 때문이다. 교사는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 같은 아이라도 발달 과정에서 새롭게 만나는 아이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긴장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행복하고 선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올해, 학생부장을 연속하기 부담스러운 이유는 새로운 것보다 고정된 관계의 지속에 있었다. 아이를 지도하는 과정의 다양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역할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올해는 학년이 시작하기도 전에 학교생활규정과 그린마일리지 등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진행할 일이 많았다. 요새 같은 상황에 이런 일들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을지 참으로 고민되었다. 3월 24일 학교생활규정 개정..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보여주는 동영상에는 우리나라 경제의 위기가 선진국과 지식 격차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보의 양도 적지만, 그나마도 잘 활용하지 않는다는.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톡톡 튀는 상상력을 끌어낼 수도 있고, 새로운 정보를 유창하게 가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최소한 1000쪽이라도 읽어 보자는 제안을 한다. 동영상이 만들어진 것은 2001년, 2004년부터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수업 상황은 교과서 지식에 더 얽매이고 통제되고 있다. "독재정권 전두환도 이전 시대에 비해 교복과 두발 자유화를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제 교복과 두발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풀어주고 대신 수업권을 침해하는 일에 대해서 엄정하게 대응하자." 지난 2월, 3월 교육청에서 교..
'장학 업무 통계 및 현황 사용자 연수(학교 폭력, 안전 사고, 전문 상담)'라는 제목의 전달 연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공문이 학생부로 와서 연수에 간 것이 어제(2008.12.2)의 일이다. 연수는 '학교 폭력',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NEIS 시스템에 이를 등록하고, 처리하며, 사건이 마무리 되면 마감처리를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 작업의 취지가 학교폭력의 발생 현황 및 처리에 관한 사항도 정보 공시 대상에 포함돼 정확한 통계 자료 산출을 위한 것이며, 생활지도 관련 각종 자료 제출에 따른 일선 학교의 업무 부담 경감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모여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NEIS의 장학 시스템에' 학교 폭력, 안전 사고, 전문 상담' 메뉴를 추가했다는 전달 연..
"안녕하세요. 개학이 정말 내일모레입니다. 방학과제, 용의단정 살펴주시고요 건강하세요. 1-3강현올림." 개학을 며칠 앞두고 우리반 학부모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개학 후 첫 주는 방학과제 점검과 용의규정 준수 확인이 가장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부각될 예정입니다. 특히 용의 규정 준수는 이전부터 특히 방학식과 방학 중 가정통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담임교사이며, 학생부 담당 교사이기에 학생 여러분과 가장 많이 부딪칠 것 같아 예전에 블로그에 써 놓았던 글을 조금 수정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생활 지도를 하려고 교문에 서는 제 마음입니다. *이 글은 2007년 4월 10일경에 학교 홈페이지에 류○○ 학생이 올린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에 대한 답글임..
나 혼자서는 시도하지 않았을 50리 길을 걷고 돌아왔다. 그것도 폭염 특보가 내린 뙤약볕 아래에서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들 140여 명과 함께 5.18국립묘지까지. 지열이 얼굴을 뜨겁게 달구던 용전에서 노인 한 분이 하신 말씀인데 묘한 웃음을 주었다. 작년엔 성줏일로 광복기념 평화순례를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망월동까지 꼭 걸어가 보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5.18 국립 묘지까지 걸어가 볼 수 있을까, 또 50리를 걸을 일도 내 인생에서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학교 행사이지만 우리반 모두가 참가하는 행사가 아니라 인솔 부담도 적고, 방학 동안 특별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지 못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되고, 또 힘들게 걷다 보면 내 삶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는 그런 시간..
이번 학부모 상담은 의욕이 너무 앞섰다. 학부모 총회가 끝나길 기다리며 부모님이 오신다고 말한 아이들의 설문지와 학부모 설문지를 다시 살펴보고 머리 속으로 아이들의 특성을 떠올리며 아이들에 대한 내 느낌을 정리하는 것까지 좋았다. 이 지역에서 마지막 근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업무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막상 학부모와의 상담에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 말이 너무 많았다. 핑계를 대자면 학부모님이 너무 많이 오셨다. 아이들에게 들었을 때는 열 분 정도 오실 줄 알았는데 막상 스무 분이 넘자 조금 긴장했다. 학급 운영의 목표라든가, 학급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이미 문서로 안내를 했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학부모님이 너무 많았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정방문 기간에..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했던 대입학력고사가 끝나자 내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기타와 컴퓨터였다. 기타는 낭만을, 컴퓨터는 진보를 뜻하는 듯 느껴졌다. 둘 다 손가락으로 하는 것이지만 자판을 외우고 도스 명령어를 외워야했던 컴퓨터 보다 기타 치는 재미가 더 쏠쏠했는데 Dm, Am 등 코드 몇 개만 배우면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노래가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닥불", "꿈을 먹고 사는 젊은이" 제목마저 다분히 옛스럽고 낭만적인 이 노래들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겐 내가 아이들보다 부모님 세대에 더 가깝다는 기억만 줄 그런 노래들이지만 반복되는 음률 속에 젊음과 추억, 동질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외우지 못한 코드 때문에 연주를 멈추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기타를 뒤집어 타악기로 쓰기도 했지만 힘겨..
광주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것 외에 ‘광주’와 ‘국어’의 정신을 새롭게 잇는 교육활동을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18민중항쟁’의 정신을 새롭게 잇는 수업, 우리말글을 통해 올바른 우리 얼을 세우는 수업이 그것인데, 그래서 우리들-지금 선생님일기를 돌아가며 쓰고 있는-은 훈민정음 창제 558돌을 맞아 나름대로 수업의 체계를 세웠다. ①우리말을 자유스럽게 쓰지만 한글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한 수업, ②한글의 과학성과 체계성, 창제 배경을 이야기하는 수업, 우리말의 특징을 공부하는 수업, ③우리말글의 파괴 현상과 그것을 올바르게 고치는 수업, ④언어의 바탕에 있는 우리 민족의 삶과 철학에 대한 공부, 영어공용화론과 한자병기론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는 수업이 ..
여름이니까 더운 날씨가 당연하지만, 낮에는 뜨거운 햇빛으로 밤에는 후텁지근한 열기로 사람을 구워삶고 있구나. 날씨에 몸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거라. 2주에 한 번은 연락하자는 약속 잊지 않았지? 너희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도 하고 너희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내가 보낸 방학 생활을 이야기한단다. 그래야 개학 후 낯설음도 많이 사라지겠지. 방학 첫 날은 우리반 남학생들이 봉사활동하는 날이었단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방학 때 만나니까 반갑고 새롭더라. 14명이 모여 성적표 발송 준비도 하고 학교 창틀과 복도를 구석구석 청소했지. 사람이 온 흔적을 남겨보겠다고 부지런히 덤벼들었지만 학교가 너무 넓었단다. 청소 후에는 얼음과자를 먹으며 1학기에 힘들었던 일, 고쳤으면 하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남학생들하고만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