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기념 평화순례를 마치고

나 혼자서는 시도하지 않았을 50리 길을 걷고 돌아왔다.
그것도 폭염 특보가 내린 뙤약볕 아래에서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들 140여 명과 함께 5.18국립묘지까지.
지열이 얼굴을 뜨겁게 달구던 용전에서 노인 한 분이 하신 말씀인데 묘한 웃음을 주었다.

작년엔 성줏일로 광복기념 평화순례를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망월동까지 꼭 걸어가  보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5.18 국립 묘지까지 걸어가 볼 수 있을까, 또 50리를 걸을 일도 내 인생에서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학교 행사이지만 우리반 모두가 참가하는 행사가 아니라 인솔 부담도 적고, 방학 동안 특별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지 못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되고, 또 힘들게 걷다 보면 내 삶에 대해서도 떠올려 보는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걸을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걸었던 길에 비해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내 머리 속도 복잡했다. 개학날 근방의 심란함도 어느정도 작용했지만 지나온 8개월을 돌아 보면서 시간을 속절없이 보냈다는 생각으로 답답했다. 머리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아이들과 공통 화제를 만들지 못했고, 또 1학기 동안 아이들과 삶을 나누거나 공유하려는 나의 노력도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광복을 기념하는데 왜 5.18국립묘지를 가는지, 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방학 숙제는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는지 주로 행사에 대한 의미를 나누는 정도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수곡부터는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아스팔트 마저 충분히 달궈져 대열은 길게 늘어서고, 나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었고, 한 발 한 발 신발끝을 보며 나를 보게 되었다.
벌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지 10년. 교직 생활 3분의 1을 걸어 왔는데, 전공 교사로서 담임 교사로서 빈틈이 너무 많다. 교직이 쉽게 만족할 수 있는 길은 아니라고 위안해 보지만, 초임 시기의 설렘이나 열정보다는 굳어지고 고정된 틀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주제 중심, 활동 중심의 수업을 강조하며 전략보다는 글을 자주 쓰게 하는 것에만 열심인 것은 아닌지, 남자반 아이들을 주로 맡으면서 마초적인 아이들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과서 집필 작업에 빠져 책을 편협하게 읽거나 적게 읽는 것은 아닌지, 느낌을 잘 정리하고 있는지. 2학기 수업을 하기 전에 1학기 수업에 대한 반성, 1학기 논술 수업에 대한 평가, 교사들의 공유의 장으로 만드려고한 분회 참실발표대회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는지...

그러다보니 5.18 국립 묘지에 도착했다.
먼저 정리부터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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