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독서 프로그램 발표한 광주국어교사모임 '나라말향기'
- 행복한 글쓰기/가르치고 배우며
- 2007. 10. 11.
전남 광주 효광중 국어교사 정수희(28)씨의 책장을 학생들은 보물창고라고 부른다. 천편일률적 학급문고와 달리 그의 '책장 속 이야기'가 재밌다고 입소문이 난 덕이다. 게다가 정씨가 추천한 책들은 신기하게도 학생 자신의 고민을 빼닮았다. 책 속에서 공감의 여지를 발견한 학생들은 수시로 정씨에게 달려가 책을 받아갔다.
정씨의 책 고르는 안목은 광주지역 중학교 국어교사 모임인 나라말향기 상황분과 활동을 자양분으로 해서 자라났다. 지난 5년여동안 나라말향기 회원들이 읽은 책은 청소년 성장소설만 300여권. "출간된 국내외 성장소설치고 안 읽은 게 없다"는 강현(33·신가중 교사)씨의 말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회원 범혜영(27·문화중 교사)씨는 "제목과 표지만 봐도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책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고, 김지선(33·신창중 교사)씨는 "선생님은 어떻게 안 읽은 책이 없냐고 아이들이 놀랄 때마다 흐뭇하다"고도 했다. 모두 매 수업 후 쉬는 시간 10분을 아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얻어낸 성과다.
물론 다독(多讀)이 전부는 아니었다. 책을 고르는 눈은 아이들과의 토론과 상담을 통해 얻었다. 때론 어렵게 고른 책이 학생들에게 홀대받고, 엉뚱한 책에 폭발적 반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예측불허의 독후 반응을 관찰·분석한 교사들은 '상황 독서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최근 출판 준비에 들어갔다. 현장 경험을 일선 교사, 학부모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고민 맞춤형' 독서 지도를 할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6일 나라말향기 상황분과 회원 4명을 만났다.
◇고민을 들으면 독서 지도의 길이 보인다=몸과 마음이 커가는 중학생의 독서 지도는 고민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나라말향기 회원들은 믿는다. "책을 추천할 때 주인공에게 닥친 상황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만한지 먼저 따져봅니다."(범혜영)
개인 차가 크긴 하지만 통상 중학교 1학년은 친구, 2학년은 이성, 3학년은 미래나 장래 문제 등을 놓고 고민한다. 책 속 어휘나 문장 난이도보다 이런 고민의 수준이 책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책 전체를 읽는 게 불가능해 회원 교사들은 7∼8쪽 발췌문을 만들어 수업시간에 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을 다룬 '니키의 여름방학' 수업안은 '발췌문 읽기-내용 파악(7∼8개 문항을 통해 이해력 확인)-모둠 활동1(등장인물과 자신을 비교해보기)-모둠 활동2(이성교제 왜 필요할까, 이성 교제 잘하는 법 등 주제 토론)-글쓰기(이야기 이어쓰기, 주변 인물 입장에서 새로 쓰기 등 글감 제시)'로 이뤄진다.
김지선씨는 "수업시간에 충실히 묵독을 하게 한 뒤엔 7∼8문제를 내서 내용 파악 여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책이 불티나게 대출된다. "수업에 사용한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면 서로 대출하려고 아이들이 경쟁해요. 발췌문 수업의 한계가 독서로 보충되는데, 3분의 2 정도 학생들은 해당 책을 완독합니다."(정수희)
토론 수업의 장점은 '익명성'이라고 했다. 강현씨는 "아이들이 토론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남의 이야기인양 털어놓는다"며 "객관화를 통해 부모나 친구 입장에 서는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범혜영씨도 "고민은 함께 풀어갈 수 있다는 걸 토론을 통해 배운다"고 설명했다.
◇상황별 독서 프로그램=이들 교사가 만든 상황별 독서 프로그램은 중학생이 가진 고민의 유형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책을 뽑아내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광주 시내 14개 중학교 남녀 학생 686명을 대상으로 고민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 결과, 고민 1위는 남녀 학생 모두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커서 힘들다'였다.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여학생), '형제들과 사소한 일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남학생) 등이 두번째 고민. 여학생 가운데 29%는 '이성친구가 없어 고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나라말향기는 이를 토대로 친구 갈등, 이성 교제, 외모 등 8가지 고민 유형별로 추천 도서를 가려냈다.<표 참조>
◇부모 상담도 책을 통해서=성장소설은 부모 상담에도 활용했다. 강현씨는 "많은 부모가 중학교 2, 3학년 아이들의 충동적 행동을 믿지 못한다"며 "당황하는 부모들에겐 '유진과 유진'이나 '소년, 세상을 만나다' 같은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아이 문제를 직접 얘기해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대신 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였다. 광주=글·사진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2007.10.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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