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루리)

 

국어교사모임 계간지 <함께 여는 국어교육> 중 '소설교육' 관련해서 두 번이나 추천을 받은 책이기에 기대가 컸다. 막상 받아보니 얇고, 동화책에 가까운 책이라 놀라웠다. 그리고 막상 읽어보니 글보다는 그림이, 이야기보다는 생각이 더 많거나 많아지는 책이었다.

왜 제목이 '긴긴밤'인지는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에서 시작한 선택에서부터 그 이유를 따라가야 한다. 비록 같은 종은 아니지만 가족같고 따뜻하고 안전한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는 선택,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잔인하게 잃고 인간에게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다 앙가부를 만나 어렵게 속내를 드러내는 선택, 화마에 휩싸인 동물원을 탈출해 한쪽 눈이 먼 치쿠와 동행하는 선택...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로 가는 여정과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어린 펭귄을 바다로 보내기 위해 헤어지기로 한 선택까지... 그렇게 만만치 않은 흰바위코뿔소로서의 삶과, 행복한 기억보다는 고통스러운 어두움으로 가득했던 긴긴밤 동안 별처럼 함께 했던 영혼의 친구들...

글을 읽다가 후반부에는 많은 그림들을 만난다. 초원, 사막, 그리고 별들, 노든의 큰 눈망울, 바다까지... 가슴 먹먹해지는 흰바위코뿔소의 마지막 여정을 참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는, 바다를 찾은 어린 펭귄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지금은 책을 덮었지만,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15)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18)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107) 멀리서 보면 사막은 황량해 보이고, 그 위를 걷는 나와 노든은 가망이 없는 두 개의 점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모래알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개미들과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빗물 고인 웅덩이 위에 걸터앉은 작은 벌레들 소리,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115) "나는 여기에 남을게."
"뭐라고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잖아요."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124)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125)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