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손원평)

코로나의 영향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화상으로 만나는 모임도 조금씩 익숙해 지고 있다. 독서 모임도 1학기 내내 만나지 못했다가 9월부터 ‘줌’을 활용해 모이고 있다. 비대면 상황이라 상황 맥락을 공유하지 못해 자유롭게 마음껏 이야기 나누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의 말에 오롯이 경청하는 태도도 생긴다. 그래도 아직은 만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소설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의 최근 작품이다. 비교적 여유 있게 책을 구했지만 코로나가 진정(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되면서 모임과 출장이 몰리면서 이 책을 읽지 못하고 모임에 참가했다.

모임 샘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사랑하고 헤어질 때, 서로 상처 받지 않으려고 방어적이거나 일정한 거리 유지에 신경 쓰는 모습들이 요즘 사람들의 정서와 비슷해 공감이 돼 식상한 연애 이야기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는 반응도 있지만, 사랑은 열정적이고 논쟁적인 것인데 이야기 속 사랑은 너무 차분하고, 4명의 밀당도 지나쳐 잘 공감되지 않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래서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자세한 것에 대한 반응도 달랐고. 공통적인 반응도 있었다. 4명 모두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샘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말 동안 책을 읽었다.

정말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내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고 살아왔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주인공 4명의 면면이 모두 쉽지 않고, 그래서 계속 엇갈리는 사랑이 안타까웠다.

한편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는 내 모습도 여러 번 보였다. 한계가 많은 나와, 때론 다투고, 때론 서로 의지하며 연애 기간을 포함해 25년을 함께 하고 있는 아내에게 새삼 고마웠다. 지금 세상과 연결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아내의 역할도 크다.

'프리즘'은 하나의 빛을 다양한 빛깔로 구분해 보여주는 매개물이다. 그 자체로 익숙한 현실에서 더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사랑’ 그렇다.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며 ‘호계’는 단색의 세상을 다양한 빛깔로 채울 수 있게 된다.

 

(210) 나는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내내 그 질문을 안은 채 호계의 연필과 붓은 점점 세심하게 낯선 사람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전에는 연애나 사랑이 의미 없이 흔해 빠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화폭을 채운 사람의 수가 많아져도 호계가 바라는 답은, 그가 연결되고 싶은 단 사람의 이름은 결코 바뀌지 않은 채 또렷해지기만 한다.

(261) 누가 내게 다가온다면 난 이렇게 반짝일 수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찬란한 빛을 뿜어내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깊은 내면에서 예진은 기다린다. 기대하고 고대한다. 갈망하고 염원한다. 아름다워도 상처받아도, 아파서 후회해도 사랑이란 건 멈춰지지가 않는다. 사랑의 속성이 있다면 시작한다는 것, 끝난다는 것. 불타오르고 희미해져 꺼진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다른 얼굴로 시작된다는 것. 그 끊임없는 사이클을 살아 있는 내내 오간다는 것.

 

모임 샘들은 이 책을 청소년에게 추천하기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주인공들의 나이도 그렇고, 지나치게 방어적인 사랑의 태도도 그렇고, '어른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젊은이의 사랑을 불 같아야...

아참, 작가 후기에 시대 상황에 맞게 '마스크'를 어떻게든 반영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는 소설 속 캐릭터들의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코로나를 배경으로 둔다면, ‘재인’이 운영하는 빵집에 알바로 ‘호계’를 고용하지 못했을 것이고, 음악 공연에서 재회한 ‘재인’과 ‘도원’도 다시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그립다.

 

프리즘
국내도서
저자 : 손원평
출판 : 은행나무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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