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율 격리를 하게 됐다. 이틀이지만 가족, 세상과 분리된 채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아래층에선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필요하면 마스크를 쓰고 내려 갈 수도 있었지만, 여하튼 섞일 수는 없는 다소 묘한 처지에서 이 책을 읽어, 읽는 내내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다.

외롭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특히, 죽음의 순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듯 죽음에 사용한 도구까지 분리 배출하는 사람, 희망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유품으로 남긴 사람, 살아가는 수단이 되어 주었던 도구들을 끝을 맺는 순간에도 사용한 사람,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방안 가득 모아놓은 사람들. 대체로 죽은 사람들의 집엔 많은 것이 결핍돼 있으나 각종 고지서만큼은 일반 사람들처럼 넉넉했다는 아이러니가 기억에 남는다.
또 사람이 죽고 나면 매트리스나 방안에 여러 가지 흔적을 남기고, 그것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이 흔적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람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살아가며 마무리해야할지, 존엄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보장 장치는 어떤 게 필요한지 책장의 여러 부분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살의 순간을 두려워하며 글쓴이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과 그를 살리기 위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하는 불편함에도 위치를 추적해 살리는 이야기에서는, 죽은 사람들도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미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이력 중 출판업에 종사한 적도 있으시던데, 글에도 그런 영향이 나타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차분히 잘 전달된다. 모임에서는 베스트셀러고 소재도 특이해 읽어보자고 했단다. 이 책이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46) 대한민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자동차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주차된 지역, 주거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이 동네에도 경제적인 결핍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가난은 차별도 경계도 없다. 모든 생명체에 들이닥치는 죽음처럼…
이 죽음을 순순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가난한 자의 죽음 중에서.

 

✎ 자살도, 고독사도 어떤 면에서는 '고립사'일 수밖에 없겠다.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사회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 속에서 살다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싶다.

(88) 책은 그것을 사서 읽는 사람의 문신(文臣)같다. 문신들은 언뜻 주군을 섬기는 것 같지만 저마다 그럴듯한 주장을 펼치며 등을 민다. "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시길 통촉하옵나이다." 그 주장이 그럴듯할수록 독서가는 더 많이 밀린다. 이 많은 책등을 보자니 주인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숱하게 등 떠밀리는 삶을 살았을까. 서로 받대되는 주장이 있을 땐 어떻게 화해하면서 밀리는 방향을 조정했을까.
-서가 중에서.

 

✎ 죽은 자의 서가를 보며 글쓴이의 생각이 나타난 부분인데, 독서에 대한 생각에 공감이 된다. 독서는 작가와 독서의 대화일 수도 있고 열린 토론일 수도 있겠다. 또 책과의 대화를 좋아해서 서가를 가득 채울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세상과의 치열한 토론의 장으로 떠밀리 수밖에 없는 삶의 피곤함도 느껴진다. 잠시 내 방의 서가를 훑어본다. 국어수업 관련, 교육학 관련, 청소년 소설, 인문 고전들이 많다. 궁금함의 면적일 수도 있지만 교사로서 등떠밀린 흔적일수도 있겠다.

(139)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성적을 비관하며 아래만 바라보며 걷는 학생도, 수레를 끌며 엘리베이터 문에서 나서는 택배 배달원도, 커피 위에 우유 거품으로 무늬를 새기는 바리스타도, 승용차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는 거주민을 향해 일일이 거수경례로 배웅하는 경비원도..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고귀하다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도 너무나 소중한 직업이라고..
-특별한 직업 중에서

 

✎ 직업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큰 원천이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직업과 그 현장인 직장을 기준으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중요하다. 굳이 우선순위를 가린다면 사람들이 선호하거나 선망하는 일의 역순으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165)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누그든,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난치병 앓는 외로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면 좋겠다. 햇빛이 닿으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그 만남의 자리는 눈부시도록 환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귀신도, 흉가도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못하리라.
-흉가의 탄생 중에서

 

✎ 집에서 옆동네로 산책하는 길에 대나무 숲에 파묻혀 있는 흉가가 한 채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면 대나무가 둘러 싸지도 집 가까이까지 자라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골이 그런 집이 많다. 제법 여러 가구가 있는 마을 한 가운데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집이 드문드문 있다. 그냥 버리두지 말고 누구에게든 필요한 사람들의 온기로 채웠으면 좋겠다. 외로움이 전염될까 걱정된다. 

(236) 지성을 가진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가 그 지성으로 자살 도구를 고른다. 참으로 잔혹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인간의 생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세라비! / 동전은 이미 던져졌다.
-호모 파베르 중에서

 

✎ '죽음'은 떠올리기 저어되는 단어이다.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죽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살아 가는 동안 더 열심히 살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국내도서
저자 : 김완
출판 : 김영사 2020.05.30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