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세종(조 메노스키)

 

이럴 때 독서 모임은 참 좋다.

모임의 강제는 낯선 책을 접할 때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을 상당 부분 상쇄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일반적인 소설 구성과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소설의 에피소드를 구분하는 구름 모양의 이미지를 ‘S#’이라는 기호로만 바꾸면 시나리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답게, 뭔가 큰 일이 일어나기 전 전조로 주변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중심 줄기를 이끌어 가고, 몇 가지 조짐들과 위기, 그럼에도 감동적인 장면들과 긍정적인 결말이라는 헐리우드의 영상 문법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그래도 괜찮았다. 집필 의도가 선()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문자 창제 이야기에 작가에게는 스타트렉의 흐름과 비슷하게 느껴졌나 보다. “스타트렉은 다양한 외계인들이 갈등하면서도 공존하며 결국 서로를 신뢰하며 소통하는 전 우주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역시 전 지구적 스토리로 느껴진다.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세상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세종은 대왕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과 우리나라의 경계를 넘어선 세계의 비주류 시민들과도 소통하고 싶어했다. 심지어 자연과도.

그런 넓은 소통의 범위가 이 이야기를 조선으로만 가둬두지 않고, 명나라와 몽골, 왜구, 종교마저도 낯선 서양의 기독교와의 소통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무리한 상상이 아니라 훈민정음혜례본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걸로 증명이 되니 세종대왕의 꿈이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이 소설은 재미로만 보면, 이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보다는 몰입감이 떨어진다. 어찌 보면 문자 창제에 대한 반대 세력과 이를 지켜려는 세력들 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은 비슷한데, 이 책 "킹 세종"에서는, 적어도 외국과의 갈등 속에 새로운 문자는 중심 갈등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자를 통해 개안(開眼)’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공기처럼 흔하고 당연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새삼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우리 교사에게는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스승의 날이 세종대왕의 탄신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릇 학교는 학교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안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거칠게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이전과 이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질적인 내면의 변화 이전과 이후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리하다 보니 한글 창체의 정신이 곧 교육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려고 외국말을 좇아가는 따라쟁이가 아닌, 소통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정신으로!

 

*인상 깊은 구절

(138) 문득 세종의 눈길이 음악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여덟 개 돌판이 두 줄로 나란히 매달린 편경이 내는 소리였다. 돌판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울림은 다른 어떤 악기로도 대체할 수 없기에, 무거운 돌판들을 이곳까지 날라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편경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사실 조선의 유교적 의례에는 편경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의식이 치러질 때마다 등장하는 악기인 탓에 연주를 감상하는 것 말고는 딱히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세종은 편경에 매달린 돌판들의 형태가 숫자 ‘7’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악공이 편경의 돌판 하나를 두드렸다. 그 순간 세종의 시간은 뿌옇게 흐려졌다. 편경 소리가 공중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7’이라는 숫자가 자기 나름의 특별한 색과 소리를 발하는 것 같았다. ‘7’이라는 형태 자체가 색과 소리의 원천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아가 세상의 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닮았다. 즉 소리가 모양이 되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인데, 작가는 편경을 통해 세종이 그런 원리를 터특했으리라 생각했다. 즉 우리 인간이 표현하는 다양한 소리들을 나타내는 글자를 편경의 소리와 모양 간의 상징으로 파악한 것 같다.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차원을 달리하는 영감이 인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199) 빗줄기가 거세졌다. 스물여덟 개의 자음과 모음을 이루고 있던 먹물이 빗물에 번지기 시작했다. 박팽년은 마치 서양인들이 성자의 피를 만지려고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빗물에 씻겨 흐려지는 문자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각 문자에 담긴 소리를 크게 외쳤다. 왕이 그들에게 들려주었던 바로 그 소리를. (중략)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
박팽년은 왕이 했던 말을 따라 하며 짜릿한 전율에 휩싸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유교를 배운 사람이었고, 약간의 도교적인 성향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세종이 창제한 스물여덟 개의 문자가 그의 종교가 될 것이었다. 비록 돌바닥 위에 쓰인 문자는 빗물에 씻겨 나가고 없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 문자는 무엇으로도 씻어 낼 수 없을 터였다.

✎ 훈민정음 창제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표현한 부분이다. 훈민정음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과 같고 그것은 의심할 것이 없는 신념과도 같은 것이다.

 

(227) 황씨 부인은 자신의 조그만 심장이 벅찬 희열로 뛰노는 것을 느꼈다. 조선에서 이제껏 통용되어 온 한자는 여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다. 그녀들은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고, 궁궐 안에 사는 후궁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남자, 그중에서도 양반에게만 허락된 한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단지 새롭고 특이하기만 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황씨 부인은 자신의 앞을, 여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허물어지는 환상을 보았다. 마치 마법에 걸린 기분이었다.

✎ 세종에게 아내이자 친구였던, 또 한글창제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었던 소헌왕후와의 사별은 큰 충격이었다. 그런 세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공감했던 막내 후궁 황씨부인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쪽지를 보내며 세종을 위로한다. 이 장면이 영상으로 그려지면 참 아름다울 것 같다. 그리고 이 장면은 단순히 글자를 알게 되었다는 수준을 넘어, 한자가 갑과 을을 구별짓는 정치적인 수단이었으며 비로소 한글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해졌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293) 아내와 벚꽃과 눈.
엄마와 분홍색과 눈.
당시 코이누는 겨우 두 살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코이누는 두 살이 아니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 그런가?
사메가 말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감정을 절제하는 것은 사무라이의 오랜 덕목이었고, 사메는 뼛속까지 사무라이였다. 하지만 다음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사메는 그 덕목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 내 아들아." (중략)
사메는 조선인 학자 앞에 떨어져 있는 천을 주워 들었다. 그에게는 그 위에 적힌 기호들을 읽을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기호들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사메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 일본 해적 최고의 뱃사공인 사메에게는 말을 할 수 없는 아들 코이누가 있다. 세종이 왕위를 물려준다는 말에 대마도 정벌로 내쫓긴 복수를 위해 부산으로 향하던 중, 포로로 잡힌 신숙주가 사메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사메가 엄마와 사별한 벚꽃 피던 날을 떠올리자 한글의 진가를 알게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예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헬렌 켈러가 설리번 선생님에게 글자를 배우는 장면과도 비슷한데, 이 장면 역시 영상으로 정말 아름답게 그려질 부분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글을 고대 신들이 사용하는 문자(신대문자)라며 오히려 한글이 자신들의 문자를 베꼈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이 책에서처럼 세종대왕이 전파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일본인들이야말로 한글을 진가를 신들의 글자라고 생각할 만큼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킹세종 더그레이트 (한글판)
국내도서
저자 : 조 메노스키(Joe Menosky) / 정윤희,정다솜,Stella Cho 외역
출판 : 핏북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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