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인 서울(한정영)

 

제목을 보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작가 역시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보며 두 작품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라는 말이 함축한 관계 속 존재에 대한 고민이 연결되어 있어서.

 

변신의 그레고르, "변신 인 서울"반희둘 다 짠하다.

먼저 그레고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쉴새 없이 노력했던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가족을 보면 뿌듯하다. 조금 더 노력하면 여동생도 음악학교에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레로 변신한다. 그러나 작가는 변신한 이유보다 벌레가 된 후의 관계에 주목한다. 결국 변신 전후를 보며 존재의 본질에 주목한다. 그레고르의 가장으로서 존재감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궁극적으로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 불통하고 존재를 부정당한 채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심지어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앓던 이가 빠진 듯 바람까지 쐰다. 작가는 변신을 통해 대체되고 소외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변신 인 서울"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만 하도록 키워진 반희가 어느 날 갑자기 토끼로 변신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런데 카프카의 변신과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반희가 왜 토끼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개연성을 짐작하게 한다. 또 토끼가 된 자신을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심지어 토끼로 변한 자신의 존재를 눈치챈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욕망의 대상을 누나로 바꾸는 과정을 보며 카프카의 변신속 가족들보다 더 대체되고 단절된 가족 관계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작가들은 변신한 주체의 문제보다 외부 상황, 즉 세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특히 가정의 문제를.

 

부모의 판단(욕망)으로 자식이 지워 버릴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게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람으로서 우리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이유는 다른 존재로 대체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대체라는 단어는 수단의 다른 말일 뿐이다. 심지어 지금은 전 지구적인 생명권을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변신 인 서울”, 카프카의 변신의 서울 버전이라 확실이 동시성이 느껴진다.

다른 무엇보다 가정 교육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반희'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은 결국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읽어야할 책인데 청소년 소설에 관심이나 가질까.

 

반희같은 상황의 아이들도 이 책을 읽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아니 다른 생명도 소중하다는. 그런데 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고전으로 가는 징검다리작품만으로는 너무 아쉽다.

 

청소년 소설 중에변신을 소재로한 작품으로는 이경혜의 그 녀석 덕분에라는 중편 소설이 있다성적만 강요하고 특기를 억압 받는 대한민국의 고생활이 너무 힘들어인간 세상에서 살기를 꿈꾸는 바퀴벌레와 몸을 바꿈그런데 본인의 의지로 사람이 아닌 영원히 바퀴벌레가 되기로 결심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공부가 오히려 인간적이지 못하는 현실을 잘 드러내 준다같이 읽어볼만하다.

 

끝으로 작가가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부려 쓴 노력이 눈에 든다.

매욱하다(22), 더미씌우다, 찌무룩하다(23), 실큼하다(24), 덜퍽부리다(38), 빙충이(44), 덩덕새머리(45), 해끔하다, 실뚱머룩하다(46), 여짓거리다(95), 주억거리다(107), 곱송그리다(133), 총냥이(162), 어리대다(181), 우줅거리다(182)

문맥으로 짐작이 가지만 검색하며 단어의 뜻을 되새겨보는 재미도 있다.

 

*밑줄 긋기  

(61) “걱정된다고? 퍽이나 그러겠다. 반희가 학교에 안 왔다니까, 눈치 보느라 전화한 거 모를 줄 알고? 지 딸년이 한 등수라도 오를 테니 좋아서 전화했겠지. 내가 질질 짜고 있는 모습이라도 기대한 모양이지? 한때는 반희 발끝도 못 따라 오르던 것들이... 반희가 학교 안 가니까 신나서 죽겠니? 좋아 죽겠어? 재수 없는 년!”
그러고는 소리를 꽥 지르고 전화기를 소파에 지어 던졌다. 그런 다음엔 반희의 방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반희, 이 나쁜 새끼! 나를 이런 식으로 모욕해?”

 

✎ 엄마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 말 자체가 충격적이다.

 

(84) 그년은 그냥 싫었어. 너무 어이가 없었던 건, 화장실 표시 그림에 왜 여자만 치마를 입었냐는 거야. 그리고 뭐라더라? 데이트할 때는 무조건 남자가 여자를 데려다줘야 한다나? 물론 나한테 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냥 그게 싫었어. 아, 그년 손봐 달라고 할 때도 5만 원이나 줬지. 어쨌든 일진 새끼들이란 다 그렇다고. 그런데 뭐? 민규가 나를? 나, 참 어이가 없네. 야! 난 톱클래스야. 성적으로나 아버지 직업으로나! 어쩌다 교육제도가 이 모양이라 내가 너랑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너 같은 놈들은 어른이 돼서도 내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해. 내 얼굴 보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 이 새끼야!

 

✎ 옮겨 적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공적 영역으로서 교육이 어떤 세상을 그리고 어떻게 가야할지를 새삼 환기시켜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신 등급 나누고, 명문대 합격했다고, 고시 합격했다고 플래카드 걸어주는 문화도 반희의 정신 세계와 대동소이하지 않나 해서.

 

(91) 무슨 소리야? 나도 어릴 때 맞으면서 공부했어. 한 번 실수가 습관이 된단 말이야. 따끔하게 혼내야 정신을 바싹 차릴 거 아니야? 그냥 두면 느슨해져서 안 된다고! 아빠는 그런 소리를 늘어놓으며 씩씩댔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때랑 지금이랑 달라요. 아빠는, 다르긴 뭘 달라? 1등만 대접받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다 똑같은 거야. 세상은 안 바뀌어! 하더니 못 이기는 체하며, 만약 다음에 1등 못하면 그때는 당신이 책임지는 거야, 알았어? 하며 다짐을 받았다. 엄마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고, 그제야 아빠는 물러났다.

 

✎ 요새 유행어 중에 나 때는 말이야~”가 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자기 기준으로 어린 사람들을 끌어가려는 꼰대 짓에 대한 풍자가 담긴 말이다. 유행어는 유머라도 있지,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참고할 만한 기사 링크

 

(122) 1등을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실력이야. 그게 무엇이든 말이야. 잘 기억해. 한번 빼앗기면 다시는 못 찾아. 아빠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뭐랬지? 네가 1등 하는 게 너만의 문제인 줄 알아? 아빠의 명예고 엄마의 체면이고 우리 가족의 자존심 같은 거야!라고 했던가?

 

✎ 반희의 아빠는 시의원으로 나온다. 딱 선거 시국에 맞춰 반희 아빠의 정당도 알 것 같다.

 

변신 인 서울
국내도서
저자 : 한정영
출판 : 사계절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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