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이희영)

청소년 소설인데, 부모가 읽어야 할 청소년 소설이다.

 

청소년들의 성인으로의 성장이 유예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덜트 소설'이란 이름으로 성장소설이 청소년+청년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거기서 더 나아가 부모로서의 성장도 강조하고 있다. 또 그런 부모와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제누, 아키, 노아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를 나타내는 전형적 인물이다.

제누는 서술자이면서, 부모로서의 노력과 자식으로서의 노력을 다 이해하는 인물이다. 아키는 부모의 사랑을 더 원하는 인물, 노아는 자식으로서의 독립을 더 원하는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부모를 기다리는 아키도, 독립을 원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노아도 부모를 찾는다. 반면 제누처럼 그런 기존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하려는 인물도 있다. 그래서 제누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입양하려는 부모를, 보호자 겸 선생님인 가디언들이 꼼꼼히 살펴보고,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선택하며, 입양을 중도 포기할 수 있는 등,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면서 부모의 역할을 고민해 본다는 생각이 인상적이지만 가족이라면 어느 한쪽의 역할보다는 서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면에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청소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 것과 부모와 자식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아키의 말도 그런 맥락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야기 전반적으로 고민되는 것은 부모로서의 '나'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몇 점짜리 부모일까. 커가는 아이의 모습 속에 닮은 외모 못지않게 성격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나의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어린 시절 불편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재생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더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가족이 있어 살아가게도 된다.

 

소설의 배경이 출산율이 매우 낮은 미래 우리나라인데, 영어식 표현 때문에 시공간이 일반화된 느낌이 든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같아 거리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페인트: NC(nation's children)센터 아이들이 부모를 면접하는 과정의 은어.

*제누301; 주인공

*아키505: 제누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

*가디: NC센터의 보호자 가디언. 성을 가지고 있어 박 가디/ 이렇게 부름.

 

(32) “나는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는 게, 꼭 결혼 같아.”

결혼? 나는 아키를 의아하게 보았다.

“결혼이라는 게 그런 거 아냐? 남남이던 두 사람이 계약을 맺고 한집에서 사는 거. 서로 맞춰 가느라 처음에는 싸우기도 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아니면 헤어지면 되고. 부모 자식 관계도 그런 거 아닌가.”

조곤조곤 제 생각을 이야기할 때면 아키는 꽤나 어른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글쎄, 부모 선택과 결혼이 과연 비슷할까.

 

✎ 부부 관계와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사랑’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결이 다르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처럼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만나고 탐색하고 노력하며 관계를 맺어간다는 점에서 보면 부부와 부모 자식 간의 사이도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는, 무엇보다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수직적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생각해 볼 게 많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109) “우리는 사실 예행연습도 없이 나왔어. 많이 두서없었지?”

남자가 사과했다.

“......대부분 예행연습 없이 부모가 되잖아요.”

나의 말에 남자가 놀란 눈으로 최를 곁눈질했다.

"반가웠어. 너는 되게 어른스럽다. 어른인 우리보다 훨씬."

"어른이라고 다 어른스러울 필요 있나요."

이것 역시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모든 어른의 가슴속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했다. 여자의 가슴속에 발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열 살 아이가 살고 있는 것처럼.

 

(112) 우리는 양 떼가 아니기에, 양치기 개가 몰아가는 대로 우르르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진짜 어른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이곳의 센터장인 박 같은 사람.

 

✎ 부모 역시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서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159) 어쩌면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 꿈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이 대리인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문득 일전에 하나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건, 그게 누구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이루는 요소라고 믿는 것들이 정작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167) 이걸 그리기 위해 해오름은 꽤 시간을 들였겠지.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 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재능도, 아니 전생에서의 특별한 인연으로 묶였다는 가족도 당연히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특별한 인연, 운명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특별한 연결도 있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194) 시간이 지날수록 NC 출신들이 늘어 가는데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NC 출신은 드물었다. 신분이 바뀌었으니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를 비난할 수도 없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놔두고 좁고 험한 길을 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찾는 사람이 늘면 언젠가는 좁고 험한 길도 평평해질 것이다. 시작은 돌멩이 하나를 치우는 일일 것이다. 벌써 누군가는 돌멩이를 멀리 풀숲으로 던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뒤에 오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 편한 길이 있어도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을 거의 매주 보고 있다. 그들의 연대의 힘이 우리 세상을 더 밝고 긍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페인트
국내도서
저자 : 이희영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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