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홍길주의 수여방필 4부작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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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구경>에 소개된 홍길주라는 작가의 <수여방필><수여연필> 등을 읽고 싶어 검색해 보니, 굉장히 방대한 이 문집을 번역해 놓은 것이 바로 이 <19세기 지식인의 생각 창고>였다. 그 동안 만난 조선의 작가 증 다산과 동시대 혹은 조금 뒤 세대를 살다간 작가여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내용은 <서포만필>을 다시 체험한 듯 힘들기만 했다. 9/10는 그냥 글자만 읽고 간간이 만난 좋은 구절들만 아주 급하게 옮겨 보았다.
-인상 깊은 구절-
<수여방필>
22 나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과 시내, 구름과 새나 짐승, 풀과 나무 등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 독서가 있다.”
*가장 울림이 컸던 말
36 나는 청나라 사람의 시 중에 정림 고염무의 시를 가장 좋아한다. ~ 만약 우리나라의 연암 박지원을 중국에 태어나게 했더라면 마땅히 깃발과 북채를 잡고 나란히 섰을 것이니 온 천하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수여난필 속>에도 나오지만 박지원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41 대화의 예의
한 번은 벽 위에다가 ‘객좌담계’ 즉, 손님들이 이야기할 때 주의할 점을 써 놓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내 방에 들어와 내 손님의 자리에 앉는 사람은 조정의 득실이나 경대부의 선악을 말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말해야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해서도 안 된다. ~ 다만 충효와 신의 자상과 근검의 가르침이나 주인의 과실을 바로잡는 이야기는 비록 중언부언 하더라도 금하지 않는다. 비록 천 명 만 명이 자리에 있더라도 꺼리지 않는다.”
*손님이 해야 할 말을 벽에 써 놓을 정도라니! 홍길주의 자존감이 엄청나거나, 정말 엄격한 사람이거나, 너무 원칙적이거나... 어쨌든 손님들이 참 대화하기 힘들었겠다.
50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음!
50 『논어』를 제대로 읽은 사람
한두 장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지만, 화나는 일이 생기면 바로 깊이 반성하여 『논어』 중에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화가 날 때 제멋대로 행동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식의 말이었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참고 분을 가라앉혔다.
53 밥그릇에는 젓갈을 담을 수 없고 구유에는 구슬을 보관할 수 없다. 사람의 재주와 그릇은 제각기 합당한 바가 있다.
63 악은 나의 스승
옛날에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고 했는데, 악의 스승 됨이 이따금 도리어 선보다 절실한 점이 있다. 사람이 선을 보고도 능히 좇지 못하고, 어진 스승이 가르쳐주어도 능히 깨우치지 못하다가,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 일 처리하는 것을 보고는 도리어 나의 지혜를 격발케 된다. 그래서 몹시 어리석은 사람도 조금쯤은 없어서는 안 된다.
91 곤궁한 선비가 따져볼 일
내가 아는 게 없는데도 남들이 허가하기도 하고 내가 글을 잘 짓지 못함에도 사람들이 칭찬하기도 한다. 내가 저 사람과 사귐이 깊지 않은데 저 사람이 나를 몹시 사랑하기도 하고, 내가 저 사람에게 구하는 바가 있을 때 저 사람이 아주 흔쾌히 허락하기도 한다. 다만 근래의 풍속이 너무 유연해서 박절함을 싫어할 뿐 아니라, 근래의 풍속이 약삭빨라져서 남을 골리는 것이 습관이 될까 염려된다. 젊어서는 간혹 생각도 없이 받기만 하면 기뻐했는데, 준 사람의 경박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끝내 자신은 어떤 신세가 되겠는가? 곤궁한 선비는 더더욱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
<수여연필>
107 선군께서는 “긴요한 일로 남에게 편지를 써서 부탁할 때는 그 사람이 글에 능하다 해도 편지 속에 절대로 어렵거나 모호한 말을 써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곳에 이르러서는 곧장 한글로 써도 괜찮다.”
112 길 나서는 날이 쉬는 날
연천 선생은 늘 ‘길 떠나는 때가 바로 사람이 쉬는 날’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 하지만 나는 또 일찍이 ‘길에 오르면 온통 공부하는 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독서가 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외에 가장 멋지다고 생각되는 구절!
123 말이란 몸의 꾸밈
말이란 몸의 꾸밈이다. 말을 했는데 능히 행해지지 못한다면 어디다 쓰겠는가?
123 병문안의 바른 태도
남이 아픈 것을 문안하는 사람은 마땅히 대략 어떠시냐고만 묻고, 곧이어 한가한 이야기나 재미있는 말로 아픈 사람으로 하여금 이 말에 힘입어 답답함을 풀게 해야 한다. 딱히 할 말이 없으면 바로 물러 나오는 것이 옳다. 만약 그 여러 증세가 어떠한지를 알고 싶으면 물러 나와 자제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다. ~ 내가 의학을 안다면 내가 묻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상대방이 먼저 말할 터이고, 내가 의학에 대해 모른다면 병세에 대해 상세히 안다 해도 또한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인간관계에 대한 디테일한 배려! 감동적이다!
129 답습을 싫어한 다산
다산이 책을 저술하여 집에 정돈해둔 뒤에 중국 사람이 지은 책을 보다가 자신의 주장과 같은 것이 있으면 곧장 지은 것을 꺼내어 표시해두곤 했다. 남이 한 말을 답습하기를 부끄러워함이 이와 같았다.
*연암에 대해서는 상당히 흠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산에 대해서는 칭찬과 비판 중 비판이 주로 나온다. 다산은 약간 라이벌 의식이?? 동시대를 살아간 문인으로서?
142 『논어』가 가장 으뜸 가는 글
한 글자도 뽐내지 않았으되 당위에서 타일러 일깨우는 엄격함이 있다.
<수여난필>
214 문담이 마려워서
글 하는 선비가 남과 이야기할 때는 마땅히 문장 이야기를 지극히 경계해야 한다.
215
밥을 먹은 효과는 정채가 빛나고 피부가 윤기가 나는 데서 드러난다. ~ 밥알이 변화해도 오히려 지게미와 비슷한 것이 있으니 바로 대변이다. 체해서 소화되지 않고 곧장 내려가면 먹은 것이 그 형상 그대로이다. 만약 반드시 잘 모방하는 것을 잘 읽은 보람으로 여긴다면, 대변과 소화되지 않고 곧장 내려간 음식물을 잘 먹은 효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215 시와 문의 차이
뜻을 곡식에 비유하면 문은 밥에 견줄 수 있고 시는 술에 비유할 수 있다.
252 사람의 근심은 언제나 나중에 힘들고 미리 편안한 데 있다.
*역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
253 어찌하여 스스로 베푸는 관대함을 가지고 남에게 관대하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304 건질 것이 없는 『성호사설』
수집하여 펼쳐놓은 것이 진실로 풍부했지만 실제 쓸모 있는 곳이 있는 줄은 모르겠고, 의논이 참으로 높긴 해도 꼭 맞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문사가 실로 풍부하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수여난필속>
사서오경의 글은 천언만어가 높고 낮고 멀고 가깝고 얕고 깊고 감춰지고 드러남이 진실로 그 뜻이 한결같지는 않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바를 살펴보면 대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의 피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지?
440 며느리의 지혜
을의 아들이 새벽에 갑자기 죽은지라 을이 갑의 달이 과부가 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이렇게 해서 혼인 약속을 끊은 것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갑의 딸이 을의 아들을 살려낸 것보다 신기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정말 배려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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