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김영하)

 

'이유'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책은 여행의 의미에 대해 작가의 경험과 그것이 작품으로 이어지는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같다. 물론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알쓸신잡'에서 보았던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입담을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있다. 여행에 대해 공감하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재미 있는 시간이었다.

 

 

*추방과 멀미

(51)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발췌해 놓고 보니 의미심장하다. 여행기들은 대체로 '추구의 플롯' 따른다고 한다. 추구의  플롯은 주인공이 추구하는 외면적인 목표가 있지만 결국 내면적인 목표를 찾게 된다는 구조인데, 여행을 통해 주인공은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고 독자 역시 깨달음에 공감하는 익숙한 플롯이다.  사실 예상치 못한 깨달음이 있기에 글을 쓰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을 아닐까. 어쩌다 가는 해외여행이다 보니 견문을 넓히는 목적이 때가 많다. 번에 세밀화를 그리지 않고, 크로키를 그린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낯섦을 받아들이고 싶다. 어쩌면 여행은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새로운 경험 추구 사이의 길항 작용의 관계인 같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63) 소설 쓰기는 나에게 여행이고, (비록 창조했지만) 낯선 세계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 '프로그램'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 또는 인물 자신도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 같은 것을 말한다고 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작가가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도 자신에게 내재된 프로그램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나에게는 어떤 식의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을까. 학교와 교사라는 일정한 속에서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 같다. 그래서 실수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당황해도 괜찮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지만 생각해 보면 괜찮은 그런 순간을 즐기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오직 현재

(80) 심지어 여행기도 집으로 돌아와 썼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 작가는 하기 위해서(어떤 목적) 여행을 떠나는 아니라 익숙한 것을 떠나(과거, 현재와의 연관) 현재에 몰입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여행은 낯선 상황 속에서 그것에 집중해야 진행할 있으므로. 어떤 영감은 익숙한 것에서 떠났을 떠오른다. 문학성이 '낯설게 하기' 있다면 작가 역시 낯선 상황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상상을 언어화하는 것은 익숙한 현재의 맥락일 것이다.

 

부분을 읽으면서 '자전거 여행' 떠올랐다. 자전거 여행만큼 현재에 충실한 여행이 있을까. 특히 여정이 길어질수록 환경과 자신에 낯설어 가끔은 소리도 돋기도 했던 계획과 다짐, 생각들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자전것길에 그대로 두고 안타깝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 과학기술이 발달해 여행과 비슷한 경험을 하더라도 인간은 직접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진화과정에 비춰볼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은 탈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여행하도록 진화했는 아직 충분치 않다. 아니다. 작가가 기준에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117)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앞장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직접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여행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여행담 역시 계속 나올 수밖에 없겠다. 같은 곳을 여러 가는 이유도, 패키지 여행을 가는 이유도 비슷하고.

 

우리가 여행기를 쓰는 욕구도 그런 가다. 직접 체험했던 것을 '현재' 다시 몰입하며 총체적으로 느끼고 싶어서.

 

 

*그림자를 사나이

 

✍ 여행자는 여행지의 정치적 상황에 무관심 또는 방관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현실로 복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여행이 삶이 되는 것이다. 치열함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실제 떠나는 여행만이 아닌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여행이라고 , 나의 파견교사 생활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결국 나는 생활이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148)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현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이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우리 지구를 이르는 말을 떠올렸다. 관찰 가능한 우주에서 아직까지 생명체는 우리 지구밖에 없다. 우주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을 확률이 지구의 모래알보다 많다고 해도 지금은 우리밖에 없다. 아참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지구 자체도 엄청난 속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고, 은하 역시 빠른 속도록 다른 은하에서 멀어지고 있으니 우리는 본질이 여행자이다.

 

 

*노바디의 여행

(185)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여행자는 여행지에서 해방감도 느끼지만 자기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있다는 점에서somebody 성향을 보인다. 오히로 스스로를 somebody 생각하면 현지인들에게 불편함을 있다. 결국 여행은 자신이 nobody임을 확인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함을 알게한다. 아폴로 8호에서 지구의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여행으로 돌아가다

(206)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면,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 여행 가기 위해 준비하고 산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의 의미를 통해 충전되고 현실을 살아간다.

 

여행의 이유 - 바캉스 에디션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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