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레프 똘스또이)


드디어 8월 초, <안나 까레니나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이 좀 있었다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안나 까레니나 이야기를 굳이 읽어야 하나 하는 그런 매우 단순 무식한 생각하지만 거의 1,600쪽에 이르는 글을 다 읽고서야 왜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안나 까레니나를 중심으로 한 아주 작은 시냇물 같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당시 러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바다에 이르는 이야기는 촘촘하게 잘 엮여서 장면들이 모두 아름답고찡했고감동적이었으며소박한 공감이 있었다남성 작가이면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 볼 줄 아는 작가의 마음 씀씀이와 마치 세태소설을 보는 것처럼 러시아 상류층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배치한 점들 그리고 무엇보다 레빈과 키티안나와 브론스끼의 사랑을 큰 축으로 해서 미숙했던 사랑이 단단해지는 과정또 불같은 사랑이 허무하게 파국으로 깨지는 과정을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행복은 작고 소소한 일상에 있음을어떠한 대의도 개인의 도덕이 모여 하나가 되지 못하면 명분이 없다는 톨스토이의 신념도 엿볼 수 있었다.

역량이 미치지 못해이 작품의 위대함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이지만, 50대가 되면 다시 읽어 보고 싶다은퇴 후 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안나 까레니나 (상)
국내도서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 이명현역
출판 : 열린책들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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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을 레빈이 아닌 안나 까레니나로 정했을까?

-레빈은 작가의 다른 모습일까?

-당시 러시아 사회에 이 소설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 작가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의도하고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11)

정말 끔찍한 죽음이야!어떤 신사가 남매의 곁을 지나가며 말했다. 두 동강이 났다더군.」 「내 생각은 그 반대일세. 가장 손쉬운, 일순간의 죽음이지.」 (127) 

 

*러시아의 정치, 문화, 사교계 등을 총망라하여 종합적으로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들. 

부모가 자식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프랑스식 관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비난을 받았다. 처녀들에게 완전한 자율을 허용하는 영국식 풍습 역시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통례가 아니긴 마찬가지였으니, 그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중매를 통하는 러시아식 풍습은 왠지 꼴사납게 여겨져, 모두들, 심지어 공작 부인 자신도 그것을 비웃었다. 한데,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시집을 가고 출가를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 땅라이는 가깝게 어울려 지내다 보면 결혼을 원치 않는다든가 혹은 남편감으로서 적당하지 못한 남자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아이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오늘날 젊은이들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꾸려 가야 한다고 아무리 주입시켜도 그녀는 그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장난감은 장전한 권총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므로 공작 부인은 키티의 혼사가 손위의 두 딸 때보다 더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90~91)


대화는 한시도 그칠 줄 몰랐다. 화젯거리가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늘 여분의 주제를 준비해 두는 공작 부인에게는 비장의 무기 두 가지가 있었으니, 고전 및 실무교육, 그리고 병역의 의무가 그것이었다. (103)

 

**초반 어긋나 버린 사랑으로 성장하는 남녀, 레빈과 키티

 

<농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며 성장하는 레빈>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본인 그대로의 자신을 느꼈으며, 다른 존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단지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먼저 그는 오늘 이후로는 결혼이 가져다 줄 법한 특별한 행복을 더 이상 바라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현재를 경시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 마음먹었다. 둘째로, 그는 이제 절대로 추악한 욕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177)


꼰스딴진 레빈에게 민중은 그저 공동 노동의 주된 참여자일 뿐이었다. 농부들에 대한 존경과, 그 스스로 말하듯 촌부였던 유모의 젖에서 빨아들인 게 분명한 농부들을 향한 피붙이와도 같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또 공동의 일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그들의 힘과 온순함과 정의감에 매혹되다가도, 공동의 일에 있어 다른 자질들이 요구될 경우에는 그들의 무사태평과 방종, 음주벽과 거짓말에 아주 빈번하게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440)


그의 주된 관심사는 노동자들 각자가 최대한 성과를 내고, 키와 써레와 탈곡기를 망가뜨리지 않고,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을 꼼꼼히 살피도록 주의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최대한 쾌적하게, 쉬어 가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 근심 없이, 마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자 했다. (587)


(스비야시스끼) 농민들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발전 수준이 저급해서, 낯선 거라면 뭐든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네. 유럽에서 합리적인 경영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농민들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지. 요컨대, 우리 나라 농민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걸세. 그게 해답의 전부야.」 (614)


<네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일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네가 미성숙한 건지, 아니면 그 일을 하느라고 너 자신의 안온함이나 허영심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구나.> (450)


하지만 꼰스딴찐 레빈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자신의 결함, 공공선에 대한 무관심을 변호하고 싶었기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456)


젊은 아내를 대하는 이반 빠르메노프의 모습에 각별한 인상을 받은 그에게 처음으로, 이 괴롭고 무사안일하며 인위적인 개인적 삶을 청렴하고 멋진 공동 노동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506~507)


<바렌까를 따라하려다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키티>

조금이라도 당신을 닮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왜 누군가를 닮아야 하나요? 있는 그대로의 당신 모습이 얼마나 좋은데요.」 (409)


바렌까를 보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잊고 타인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이 바로 키티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은 지금 키티는 그 깨달음으로 그저 황홀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계시된 새로운 삶에 혼신을 다했다. (414)

 

**주요 인물들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에 입체적인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


<어정쩡한 용서로 결국 불행해진 돌리>

돌리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좋은 친구인 동생이 멀리 떠날 참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삶을 즐겁지 않은데 말이다. 화해한 이후로 스쩨빤 아르까지치와의 관계는 굴욕적으로 변해 버렸다. 안나가 해놓은 땜질도 견고하지 않아서, 가정의 평화는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금이 가고 말았다. 볼일이라곤 전혀 없으면서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도무지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고, 돈푼 역시 거덜났다. 남편의 배신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돌리를 괴롭히는데도 그녀는 재차 질투의 고통을 겪을까 두려워 의심들을 자기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229)


<진짜 삶에 맞닥뜨려 무기력하기만 한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평생을 삶의 그림자를 다루는 공무의 영역에서만 살면서 봉직해 왔다. 삶 자체와 맞닥뜨릴 때마다 그는 번번이 그로부터 물러서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낭떠러지 위의 다리를 태평스럽게 건너던 사람이 갑자기 다리가 끊겨 있고 거기에 심연이 드리워 있음을 목도했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 심연은 그의 삶 자체였으며, 다리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살아온 인위적인 삶이었다. 처음으로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의혹이 그에게 일었다. 그 사태 앞에서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268~269)


<호감형 세르바쯔끼 공작의 통찰력>

그러나 공작에게 6월 아침의 빛과 광휘, 최신 유행의 흥겨운 왈츠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 그리고 특히나 건장한 하녀들의 모습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산송장들이 음울하게 걸어다니는 모습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천박하고 흉측하게 여겨졌다. (420) 

 

*너무 아름답고 날카로우며, 대상에 대한 참신하고 살아있는 묘사가 빛났던 대목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렇듯이 세르바쯔끼 일가가 찾아간 독일의 작은 온천에서도 사회의 결정화(結晶化)라 할 만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거기 속하는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일정하고 변함없는 자리가 주어졌다. 물의 입자가 차가운 온도에서는 변함없이 일정하게 눈의 결정 형태를 취하는 것처럼, 온천에 오는 새로운 인물들도 그와 같이 곧바로 자신에게 고유한 위치에 정착하는 현상이었다. (395)


목장의 풀밭에서는 군데군데 아직 털갈이가 덜 끝난 가축들이 울부짖기 시작했고, 다리가 구부정한 새끼 양들이 양털을 잃고 울고 있는 어미 양들 주변에서 장난을 치는가 하면, 걸음이 잽싼 새끼들은 맨발 자국이 난 마른 오솔길을 따라 달음질쳤다. 연못가에서는 아마포를 빨러 나온 아낙네들이 흥겨운 목소리로 재잘거리기 시작했고, 마당마다 농부들이 쟁기와 써레를 수선하느라 도끼를 내리찍는 소리가 울렸다. 진짜 봄이 온 것이다. (286~287)


말은 다시 물고기처럼 온몸을 버둥거리고는 안장의 날개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앞다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둔부를 들어 올릴 힘이 없어 비틀대더니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좌절된 욕망으로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브론스끼는 아래턱을 부르르 떨며 장화의 뒤축으로 말의 배를 후려차고는 다시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말은 꿈쩍도 없이 콧마루를 땅에 파묻은 채 예의 말하는 듯한 시선으로 주인을 쳐다볼 뿐이었다. (370)


*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안나와 브론스끼의 사랑

브론스끼는 그토록 강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안나가 어떻게 이런 허위의 상태를 견뎌 내며 그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주된 이유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바로 그 말, 아들 때문임을 그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들 생각만 하면,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를 장차 어떻게 대할지를 생각하면 그녀로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그래서 제대로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여자로서 모든 것이 예전처럼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무서운 질문을 잊기 위해 거짓된 생각과 말로써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만 했던 것이다. (353)


당신을 사랑하게 된 그날부터 모든 게, 모든 게 변했다는 걸 알아줘요. 나에게 단 하나, 당신의 사랑밖에 없어요. 당신의 사랑이 나의 것이기만 하다면, 나는 나 자신을 아주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그 무엇도 나에게 굴욕감을 안겨 줄 수 없다고 확신하게 돼요. 심지어 내 처지에 자긍심마저 느끼게 되죠. 왜냐하면……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자긍심을 느끼는지 끝내 말하지 못했다. (579)


안나는 그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모습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몸매는 전체적으로 펑퍼짐해졌고, 여배우에 관해 얘기할 때면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곤 했다. 그는 자신이 꺾은 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으로 그녀늘 바라보곤 했다. (655)




안나 까레니나 (하)
국내도서
저자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 이명현역
출판 : 열린책들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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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사랑을 배워가는 두 사람, 키티와 레빈>

[키티] 아르바뜨 거리에 있는 저택의 홀에서 갈색 드레스 차림으로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몸과 마음을 모두 내맡겼던 그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지나간 모든 삶과의 완전한 결별이 이루어졌고, 완전히 다르고 전적으로 새로운 미지의 삶의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과거의 삶이 지속되고 있었으니, 그 여섯 주는 그녀에게 가장 행복하고도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 예전의 방식대로 생활하던 중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무관심을 전혀 극복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경악하였다. 그것은 물건들, 습관들, 그녀를 사랑해 줬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마음이 상한 어머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에는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했던 사랑스럽고 다정한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그러한 무관심에 그녀는 두려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그렇게 무심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38)

 이 책을 8월 초에 다 읽고 접어둔 부분을 다시 펼쳐드니, 이 부분이 하권의 처음 접힌 부분이었다. 앞뒤 맥락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서, 과연 이 감정이 누구의 것일까 추리하다 처음엔 안나의 것인 줄로 알았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마음을 이리도 섬세하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앞뒤를 살펴보니 키티의 것이었다. 어찌 보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모두 다 가지고 있던 사랑의 열정이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그리고 읽는 내내 놀라웠던 것은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심리를 잘 파악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톨스토이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드디어 알게 된 것 같다.

 

[레빈] 독신이었을 때는 남들의 부부 생활, 즉 자잘한 걱정거리나 언쟁과 질투 등을 보며 내심 경멸의 미소를 짓곤 했었다. 확신컨대 미래에 꾸려질 자신의 부부 생활에서 그런 것들은 있을 수 없으며 외적인 형태조차도 남들의 생활과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아내와의 생활은 특별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예전에는 그토록 경멸했던,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논박할 수 없는 대단한 중요성을 갖게 된 예의 자잘한 일들로 꾸려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전혀 쉬운 게 아님을 레빈은 깨달았다. 스스로 가정생활에 대해 아주 정확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간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죄다 그러듯이 무심결에 그것을 그저 사랑의 향유로만 그려 왔던 것이다. (85)

 레빈이 매력적인 캐릭터인 이유는 나름 자신만의 고집과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가지고 있는 흠결에 대해 항상 의식하고 있고, 또 자신이 생각하던 바와 다르면 왜 그런지 과정과 원인을 성찰하며 배우는 자세로 임하기 때문이다. 키티와의 신혼생활이 자신이 그리던 바와 전혀 다르게 펼쳐지지만 불편하면서도 그것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레빈] 밤이 되어 부부가 병자의 방에서 자신들이 묵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레빈은 뭘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떨군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한다거나 잠자리를 챙긴다거나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궁리한다거나 하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아내와 얘기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반면에 키티는 평소보다 더 활동적이었고, 심지어 더 생기 있기까지 했다. 저녁 식사를 내오도록 이르는가 하면 짐을 손수 정리했으며, 이부자리 까는 것을 돕고 거기 빈대 약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각성되어 있었고, 사리 분별이 빨랐다. 그것은 전투를 목전에 둔 남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징후로, 삶의 위급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가치와 그의 모든 과거가 헛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위한 준비였음을 단 한 번, 그리고 영원히 보여 주게 될 그러한 순간에 발현되는 것이었다. (115)

 사랑이 굳어지는 과정은 서로의 존재를 더욱 인정하고,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브론스끼와 안나와는 달리 위기에서 더욱 굳어지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가는 키티와 레빈의 모습 속에서 사랑과 행복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키티) 형에게 감탄하고 형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남편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 키티는 그러한 거짓이 형에 대한 사랑과 스스로의 커다란 행복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특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남편의 그런 점을 좋아했기에 그녀는 미소 지었던 것이다. (227)

 키티가 남편을 바라보고, 남편이 부끄럽게 여기는 것조차도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작은 점 하나하나를 알아가고 새롭게 느끼고, 다시 사랑으로 환원하는 모습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이 식어가는 안나와 브론스끼>

(브론스끼) 한편 브론스끼는,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온전히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행복하지가 않았다. 소망했던 바의 실현이 기대했던 행복 가운데 겨우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임을 그는 이내 절감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행복을 소망의 실현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영원한 과오를 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처음에 그녀와 생활을 함께하고 평복을 입었을 때는 전에는 몰랐던 자유와 또한 사랑의 자유가 지닌 매력을 만끽하며 만족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마음속에서 욕망에 대한 욕망이, 권태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58)

 분명 뜨거웠던 사랑이 서서히 식어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리 짧을 줄이야. 특히 행복을 소망의 실현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영원한 과오라는 부분이 쩡하게 다가온다. 이 책의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행복은 찰나가 아닌 과정 속에 쌓아 온 일상이며, 소망의 실현이 아닌 소망을 이뤄나가기 위한 꾸준한 발걸음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갈하는 것 같았다.

 

(브론스끼) 브론스끼는 처음으로 안나에게 노여움을 느꼈다. 자신의 처지를 고의적으로 모른 체하는 그녀에 대한 거의 적의에 가까운 그 감정은, 자신이 분노하는 까닭을 표현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더욱 증폭되었다. 만일 마음에 품은 생각을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렇게 잘 차려입고 모두가 다 아는 공작 영애와 함께 극장에 나타난다는 건, 타락한 여자로서의 처지를 인정하는 꼴일 뿐만 아니라 사교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셈이에요. 즉 영원히 사교계와 인연을 끊는 일이란 뜻이라고요.> 그는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를 존중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동시에,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의식하는 스스로를 느꼈다. (197)

 안나를 걱정하다 못해 분노하는 브론스끼의 마음도, 답답한 마음에 공연을 보러 가는 안나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사랑이 깨지는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 그리고 존중하는 마음이 엷어져 가는 것라는 것을 두 사람을 보면서 나를 성찰하게 되었다.

 

<그이에게는 원할 때 어디로든 떠날 권리가 있어.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나를 버릴 권리도 있지. 그이는 모든 권리를 지닌 반면, 나에게는 그 어떤 권리도 없어. 한데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나를 냉담하고 엄한 표정으로 쳐다봤잖아. 물론 불분명하고 미묘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어. 게다가 그 눈길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마음이 식어 가기 시작했음을 말해 주는 눈길이었어.> (408)

 상황이 최악이었음에도 사랑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들. 분명 안나가 여성으로서 너무도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브론스끼의 배려와 사랑이 더 필요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안나의 심리적 방황과 고통은 물론 그녀의 나약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안나에게 더욱 불리한 사회적 분위기와 그것을 좀더 섬세하게 배려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브론스끼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갈라놓는 자극적인 요소는 결코 외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으며, 서로에게 해명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그런 자극을 없애기는커녕 더 키우기만 했다. 그것은 안나 입장에서는 브론스끼의 식어 가는 사랑에서 비롯한, 브론스끼로서는 안나를 위해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간 것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한 내적 자극이었다. (535)

 사랑도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었기에 외적인 상황보다는 내적인 상황에서 파국의 원인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둘다 원인과 책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브론스끼가 더 나쁜 놈이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세료자의 수치와 모욕도, 내 치욕도, 그 모든 게 죽음으로 구제될 거야. 내가 죽으면 그이도 후회하고 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게 되겠지. 나 때문에 괴로워할 테지.> (545) 

 결국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안나! ()에서는 안나의 이기적인 사랑에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까지 하게된,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몰린 안나가 불쌍하다. 물론 본인이 만들어간 것도 크지만.

 

<안나와 브론스끼를 바라보는 제3자의 생각들>

<대체 왜 그 모든 걸 겪어야 하지? 그 모든 것에서 얻어질 결과가 대체 뭐냐고. 한시도 편안할 틈 없이, 임신하거나 아니면 젖을 먹이고, 끊임없이 화를 내거나 잔소리하고, 나 자신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남들도 괴롭히면서, 남편한테는 혐오스러운 여자로 한평생을 살겠지. 그리고 아이들은 불행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재능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겠지. ~ 최선의 경우는 아이들이 더 이상은 죽지 않고, 내가 어떻게든 길러 내는 거야. 아이들은 기껏해야 몹쓸 인간만 면하면 되겠지.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그런데 그 모든 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고를 낳느냔 말이야……. 인생이 통째로 망가지는 거라고!> (308)

 가장 마음이 착한 돌리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안나의 집으로 가면서. 자유롭게 사랑을 찾아 떠난 안나를 만나러 가면서 진심으로 안나가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켠으로는 가정을 박차고 떠난 안나가 과연 잘 사나 보자는 마음으로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안나) 어쨌든 언니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게 될테니 기뻐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내가 무언가를 증명하려 든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증명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나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에요.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나한테 그럴 권리는 있잖아요? (232) 

 안나의 말을 뒤집어 보면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한 것 같다. 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려한 안나의 삶은 누가 손가락질을 하든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임에 틀림없고, ‘나는 그저 살고 싶다.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고라는 말은 정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남에게 뭔가를 증명해야 하는 삶은 너무 힘겹고 불행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의아스럽소, 백작. 주민들의 보건 위생과 관련해서는 그토록 많은 일을 하면서, 학교에 관해서는 그리도 무심하다니 말이오.」 「학교는 너무 평범한 사업이 되어 버렸거든요.브론스끼가 대답했다(334)

✎ 이것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삶. 불륜을 저질렀지만 나는 러시아를 위한 위대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그것도 누구나 하는 학교 설립이 아닌 누구도 하지 못한 보건 위생 사업에

 

<세료자>

다정하고 쾌활하게 빛나던 세료자의 두 준이 생기를 잃고 아버지의 시선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할 때마다 구사하는 말투,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한 그 말투를 세료자는 이미 흉내 내는 법까지 터득하고 있었다. 세료자가 느끼기에, 아버지는 자기와 대화할 때면 언제나 그 어떤 상상 속의 소년을 대하는 듯 굴었다. 책에서나 나올 법한, 하지만 자기와는 전혀 닮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세료자도 항상 아버지와 있을 때면 책에 나오는 그런 소년인 척 꾸며 대곤 했다. (164)

✎ 이것은 비단 아버지 알렉세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아버지들, 모든 부모들이 보이는 슬픈 장면. 나 스스로도 어떤 순간은 내 아이들이 상상 속의 그 누군가가 되길 바라며 아들들을 바라본 것이 아닌지 이 부분을 읽으며 반성해 보았다. 분명 인간으로서 매력이 없는 남자이지만, 나름 삶은 성실했기에 아들에게는 좀더 솔직한 대화가 오고갔으면 좋았겠다 싶다.

 

<기타 공감이 가는 구절>

(레빈) 모스끄바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시골 사람으로서는 이상하고 비생산적으로 여겨짐에도 온갖 방면으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들로 인해 레빈은 적이 놀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에 익숙해진 터였다. 그 문제에 있어서, 이를테면 술꾼들이 겪는 현상을 그 역시 겪게 되었던 것이다. 첫 잔은 목에 걸리지만 두 번째 잔은 매끄럽게 넘어가고, 세 번째 잔 이후로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식이었다. (427) 

 하인들의 제복을 사기 위해 1백 루불 짜리 지폐를 헐었던 경험으로 시작해서 결국 은행빚을 져야 하는 레빈의 집안 사정이 나온다. 점점 무뎌지는 소비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결국 톨스토이 본인의 이야기였을 것 같고,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 그야말로 진짜 여자다!> 레빈은 한순간 모든 것을 잊은 채 안나의 변화무쌍하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465)

 레빈과 안나가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안나의 집으로 간 레빈은 안나의 다정함과 미모에 푹 빠지는데. 톨스토이가 창조한 안나는 정말 팜므파탈? 아님 정말 매력적인 신여성?

 

(키티) 당신은 그 추잡한 여자한테 홀딱 반한 거예요. 그녀가 당신을 홀린 거라고요. ~ 당신은 클럽에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다가 노름을 했고, 그러고는 갔죠……. 근데 누구한테 갔죠? 안 되겠어요. 우리 떠나요……. 내일 난 떠나겠어요. (474)

 결국 키티에게 안나는 팜므파탈이었다. 당시 가정을 이룬 거의 모든 아내들은 안나와 같은 여자를 팜므파탈로 보았겠지?? 슬프다. 오늘날 같으면 안나에 대한 대접은 분명 달라졌을 듯.

 

(레빈) 그는 형과 까따바소프를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며, 자신이 그들의 견해에 동조할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레빈 자신을 거의 파멸시킬 뻔했던 지적 오만함이었다. 형을 포함한 몇십 명의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온 몇백 명의 수다스러운 자원병들이 떠들어 대는 말에 근거하여, 자기네들이 신문과 더불어 민중의 의지와 사상을 대변한다고 주장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에 그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러한 민중의 사상은 복수와 살인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동의할 수 없었던 건, 자신이 어울려 살고 있는 민중에게서 그러한 사상의 표명을 본 적이 없으며, 자기 안에서도 그러한 사상을 발견하지 못했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러시아 민중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아닌 다른 특별한 존재로 간주할 수 없었다) 또한, 중요하게는 민중과 더불어 공공의 안녕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몰라도, 그것의 달성이 오로지 개개인에게 계시되는 선의 법칙을 엄격하게 이해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전쟁을 바라거나 주장할 수는 없었다. (659)

 결국 안나의 불륜으로만 이루어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안나의 불행한 가정사를 중심으로 러시아 귀족 사회의 타락과 부도덕을 비판하고 있음을, 세르비아 전쟁으로 슬라브 민족주의 뒤에 숨어 마치 모든 러시아 민중을 대표하는 양 위선을 보이고 있는 지식인층을 비판하고 있음을 마지막 레빈의 생각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장황하게 긴 이야기를 톨스토이 개인의 사상을 설파하며 마무리 하고 있지만, 아주 작은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 전체를 들여다보게 하고, 또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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