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즐기다
- 행복한 글쓰기/일상에서
- 2008. 4. 12.
대원사 벚꽃길이 한창이라며 들러보라고 모임을 같이하는 선생님이 쪽지를 보냈다. 대원사는 특별한 절이다. 큰길에서 5km 정도 들어가는 진입로가 모두 벚꽃길이며, 토속신앙과 연결된 사원의 특이함과 티벳 불교박물관까지 있어, 종교의 삶의 일치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기실 대원사가 아니더라도 쌍계사를 비롯해, 도갑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곳곳의 이 즈음 길가는 벚꽃이 만발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도 그렇다. 광주랑 5도 정도의 기온차가 있어서인지 이제서야 벚꽃이 만발하기 시작했다. 도로를 내느라 절개한 곳에는 진달래가 한창이고 개나리와 조팝꽃이 한창이다. 화창한 아침 날씨도 기분을 맑게 하고, 7시 30분까지 학교에 도착해야하지만 출근길 기분이 상쾌하다.
하지만 봄기운보다 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 일이 며칠 전에 있었다.
아들 녀석을 재우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꿈을 꿨는데 꿈속에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전 살던 아파트를 배경으로 공부방에서 거실로 나오는데 아버지가 계셨다. 양복 차림으로 웃고 계셨는데 너무 반가워 아버지를 꼭 안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안아드린 적이 있었을까, 안겨 본 적이 있었을까. 참 마음이 편했다.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친척 모임에 신경이 많이 쓰이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와 닿을 때가 많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들 녀석을 안을 때 가장 크다. 때론 단순한데 아들 녀석을 안을 때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지금 사는 집을 지으면서 공사 현장에 자주 들르기 위해 세 살짜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아내 동료의 추천으로 맡기게된 어린이집인데, 첫날 잠자고 있던 아이를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맡길 때 그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정신없이 학교 일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는데,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옷까지 다 입고, 중문에 있었던 아들을 보고 나서 아무말없이 꼭 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를 기다렸을까.
경기도 수원 근처 의왕에서 고향 강진 병영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 와서 모든 것이 낯설어 학교하기만을 기다렸던 그 때의 마음과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남의 자식 잘 길러보겠다고 애쓰다 정작 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그 느낌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잘 쓰지도 않던 시를 썼던 그때. 아이를 안았을 때의 느낌과 똑같은 느낌으로 아버지에게 안겼다.
그 사이 2년 지났다. 아들 녀석은 나보다 파워레인저를 좋아한다. 가위바위보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제가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를 하고 나서 나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우리 엄마한테 함부로 한다. 그래도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곧잘 보여주고, 나름대로 말이 통할 때마다 신기하고 예쁘다.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이 녀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중학생을 키우는 학부모의 마음만큼은 못하겠지만 그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내 마음이 너무 여리지 않은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 아이처럼 모두 귀한 자식들일테니 될 수 있으면 성적으로 압박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구박하지 않으려고. 그런데 실은 내 아이의 미래가 내가 심란하게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일 것 같아 함부로 할 수 없는 마음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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