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많은 디자인씨(김은산)

수업 디자인. 교육 개혁 디자인.
요즘 교육 활동과 관련하여 '디자인'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공개 수업(나눔 수업) 뒤 열리는 수업 연구회에서도 '수업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수업을 위해 과정을 설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기존의 지도안(수업 설계)이 미리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학생을 통제하고 교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인 활동으로 수업을 한다면,
지금의 지도안(수업 디자인)은 계획한 주제에 학생들이 도달할 수 있도록 탐구할 재료(교재)를 안내하고, 학생과 학생, 학생 스스로 탐구하며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능동적이며 열려 있는 수업을 디자인한다.

이런 과정을 자연스럽게 '디자인'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디자인'도 그렇다.
평범함과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그래서 그 의미를 알 수 없고 설명해 주어도 이해가 될듯 말듯한 '비밀 많은' 디자인이,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물건과 사용자, 세상과 소통하는 '생활 속' 디자인으로의 변화해, 누구나 의미 있는 질서를 부여하려는 의식적이고 직관적인 노력이 디자인이라는 능동적이며 열려 있는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모든 활동의 기초가 된다.

이 책의 전반부(1~2부)는 '비밀 많은' 디자인에서 '생활 속'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디자인의 비밀스러움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고(그래서 어렵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눈속임이기도 하고(옷에서 아파트까지), 때론 일상과 거리가 먼, 기능과 형태에 대한 (그들만의 고답적이기까지한)논쟁으로 치닫기도 했지만, 기존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3부)에서는 결국 '디자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디자인의 공공성, 윤리성의 중요함을 고민하며 생활 속 디자인의 모습이 이야기되고 있다. 

여전히 '디자인'의 의미는 과거에 더 가깝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며, 치장에 더 신경(기능보다 형태) 쓰거나, 디자이너의 사고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디자인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들이 그렇듯, 다른 사람과 세상과 소통과 공감하는 수단으로서의 '디자인'의 역할, 기능 또한 확대될 것이고, 이 책은 그런 시각들을 자극하고 있다. 

(76) 놓여야 할 자리에 놓인 사물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모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른 수준의 아름다움과 관계되어 있다. 즉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용하다 보니 아름다워지는 아름다움, 매일 일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볼품없지만 실용적이고 오래가는 아름다움 말이다." 모리슨은 그것이 너무나 '평범한 것'이어서 더욱 멋진 것이라고 말한다. 평범해서 더욱 멋진 것, 그것이 바로 '일상'과 '삶'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자리일 것이다.

(162)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이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누리는 자원이며 자원을 할당하거나 사용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략)

최근 디자인 분야에서는 중요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내건 유니버설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중략)

유니버설 디자인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나이, 성별, 장애 여부, 신체 크기, 신체 능력뿐 아니라 계층, 인종 등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인간을 평등하게 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195) 이제 디자인은 단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형태나 기능,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더해야 하는지 묻는 행위이며 사유하는 일이다.

비밀 많은 디자인씨 국내도서 저자 : 김은산 출판 : 양철북 2010.10.19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