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이경화)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09. 1. 11.
<19세>, <동정없는 세상>을 이은 좀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1318 남자 아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좀더 칭찬하자면 이제 한국에도 제대로 된 청소년 소설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기쁨을 <유진과 유진>에 이어 또 다시 느끼고 있다. 그것은 이전에 두 유진을 만났던 것처럼, 이 소설 속의 두 준희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사에 불만이 많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돈은 조금 있지만 무기력한 아버지와 종교에만 의지하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준희(김), 그리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 일찍부터 날개를 펴는 준희(장)!
김준희는 컴퓨터 게임은 하지 않지만, 무협지와 판타지에 빠져 지내며 공부는 중간 정도를 겨우 유지하는 아이다. 판타지에서는 단 몇 줄로 끝나버리는 어린시절이, 현실에선 길고 지루해서 무척 힘들어한다. 그에게 유일한 기쁨과 즐거움은 사랑하는 논술 과외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녀는 몽정과 첫사랑의 대상이지만 판타지 소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지는 못한다. 조금은 무기력한 김준희에 비해 장준희는 삶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있다. 장준희는 자신이 좋아하는 기타를 치기 위해, 밴드를 결성하고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도 한다.
김준희는 장준희, 여자친구 정아, 논술 선생님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알아간다. 그리고, 판타지 속 상상보다 현실의 세계가 더 재미있어지는 순간 준희는 껍질을 깨고 세상을 나온다.
<밑줄 긋기>
(80) 마시멜로를 구성하는 성분은 뭘까? 장난감처럼 보이는 이것은 일정 비율의 배합으로 음식이 되는 거야. 단맛이 좋다고 비율을 바꿔 버리면 그냥 설탕 덩어리가 되고 말겠지.
(161) 너는 내가 좋은가 보다. 고마운 일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면 나는 네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거야. 이희진이라는 인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겠지. 왜냐면, 그게 내 인생이 아니라 네 인생이기 때문이야. 너무나 소중한 네 인생. 중요한 건 내가 너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 이거야. 네가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네 마음이야.
(193) 소설 속에 나오는 신이야. 그 신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한 나래를 펼친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야.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 이제 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아무도 안 가르려 주니까 혼자서 터득해야겠지만, 이제 상상만 하면서 사는 건 재미없어졌어.
(133~135) “‘델리스파이스’야. 멋있지? 꼭 저런 밴드가 될 거야.”
박승철은 소매로 입을 한 번 쓱ㅡ 닦고는 잭을 앰프에 연결하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아밍이 끝내 줘. 한번 봐.”
“아밍?”
“기타 밑에 있는 쇠막대 보이지? 이걸 이렇게 밀거나 당기면 음을 조절할 수 있어. 고도의 테크닉이지.”
조그만 방 안 가득 강렬한 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기타 줄을 건드릴 때마다 하나하나의 음들은 소리치고 웃고 울부짖었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팔을 문질렀다.
“준희야.”
“응?”
장준희와 내가 동시에 대답했다.
“너는 장진이라며? 지 이름도 모르는 자식.”
“이제부터 그렇게 불러 주는 거냐?”
“준희야, 너는 뭐를 잘 해?”
“글쎄, 뭐 잘 하는 게 없어.”
“하고 싶은 건?”
“정아 말로는 만화가가 될 거라던데.”
장준희가 대신 대답했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쓴다며? 나는 너 처음에 봤을 때 판타지에만 빠져 있는 몽상가인 줄 알았다.”
“내가 제일 재수 없어 하는 그 몽상가 말이야? 하긴 장진 저 녀석도 그냥 철없는 부잣집 자식인 줄 알고 싫어했지.”
“우리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거든. 내 노래에 저 녀석이 뻑 갔다는 거 아니냐.”
“웃기지 마. 네가 내 기타 실력에 반했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이 있던가? 장준희와 박승철 그리고 내가 나오는 연극이 있다면 나는 ‘지나가는 사람1’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연극에 저 애들이 뛰어 들어온다면 무대에서 내려와 극장 청소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거리로 나오니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좀 사그라들어 있었다. 당당한 애들 앞에서 나는 자꾸 뒤처져서 걸었다. 준희는 정아를 데리고 오라는 다짐을 한 번 더 하고는 박승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시간은 늦어 있었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고작 열여섯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늘 불만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불만은 또 다른 대상을 찾을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불행한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되면 어쩌지?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진짜 정아 말대로 만화가나 한번 돼 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 거리>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바로 ‘나’다. 나는 아름답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중심이며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등으로 나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껏 감춰졌던 아름다운 내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여러분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 > 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뚱보 내 인생(미카엘 올리비에) (0) | 2009.01.12 |
---|---|
할말이 많아요(존 마스든) (0) | 2009.01.12 |
씁쓸한 초콜릿(미리암 프레슬러) (0) | 2008.08.27 |
레슬리의 비밀일기 (0) | 2008.08.21 |
구덩이(루이스 새커) (0) | 2008.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