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는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파란 아이'를 줄인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는 퍽 부담스러운 단어인 '착한다', '착한 아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착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인데, 대상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단어이기에 '착하다'는 절대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착하다가 자주 쓰이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우리 선생님은 착해요', '우리 아이가 착해서 문제예요', 또 '착한 가격'이런 말을 들으면, 착하다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 자체가 힘의 균형을 잃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한쪽의 언어, 정치적인 단어라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정호는 장애를 가진 부모가 싫어 어렸..
이 작가 참 대단하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중3 남학생, 우울증으로 폭식을 하는 뚱뚱한 스물셋 전화상담원. 교집합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소설 를 만들어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희망을 다룬 부터 청소년의 성과 사랑, 임신을 직설적으로 다룬 를 거쳐, 가정폭력과 치유를 다룬 이 작품까지 이옥수라는 작가 참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의 문제를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아픈 점을 가장 직설적으로 그려내면서, 가장 극적인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잊고 산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민의 형과 아버지로..
작가 이름에 끌려 만난 . '어쩌자고' 라는 낱말이 갖는 안타까움을 책을 읽으며 여러 번 확인한다. 순지, 정애, 은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 벌로 온 서울 생활은 열일곱 소년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들다. 그래도 아이들의 말처럼 '인생 한 번 제대로 살고 싶어' 낮에는 봉제 공장의 시다로,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 학생으로 열심히 생활한다. 그러나 열여덟을 며칠 앞두고 무허가 공장의 무허가 기숙사에서 전기누전으로 발생한 화재로 정애와 은영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순지는 충격과 함께 친구들을 봉제 공장으로 불렀다는 자책감에 빠져 말을 잃는다. 객지에서의 생활을 하나씩 풀어내면 순지는 충격에서 벗어나고 목소리를 찾는다. 이 소설의 ‘어쩌자고’는 삶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드..
중학교 2학년 아이들과 공부하면서 '감상하며 읽기'의 시작은 '공감하는 것'부터라 말한 적이 있다. 하연이의 선택과 결정,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묵직해지고 눈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무엇에 공감했는지 지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10대에게도 성적 호기심과 욕구가 있다. 그건 나 역시 경험했던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생명과 책임 등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기에 이성적으로 통제하려했던 욕구이다. 하지만 이 책은 10대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고, 그 결과 갖게된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많은 부분을 풀어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기 마련이다. 하연이는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나.사랑을 뭐라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연이와 채강이는 ..
친구가 죽었다. 친구의 유언은 살고 싶었던 킬리만자로에 데려 달라는 것. 친구는 희망을 잃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건 파충류. 수회는 애완 동물들과 제인 구달처럼 킬리만자로에서 야생 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싶었다. 야생 동물과 생활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지금 당장 애완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엇비슷한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성적은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고, 애완동물을 빼앗기고, 목표가 과정 중에 소멸된다. 킬리만자로를 인터넷으로 훑어보고 무작정 떠났다. 수회의 유골과 함께. 또 실연의 아픔을 오지의 봉사활동을 풀려는 사람과 함께. 그렇게 떠난 지구의 반대편, 케냐에선 가난과 에이즈로 희망이 잃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희망을 훔친다. 반면, 적은 돈을 받..
서초등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 법원과 검찰청 앞에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 버젓이 서 있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비닐하우스촌이기에 재미있는 추억이나 신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부인을 때리는 남편, 정신을 놓은 끝네 할머니, 자식을 두고 외국으로 떠난 혜미 엄마, 그래도 왕성했던 한때를 술잔 속에서 찾는 여러 아버지들, 준비물하나 챙길 수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윤제와 또래 친구들에게 얼마나 좋은 일이 있겠는가. 가난에 쫓겨 서울까지 떠밀려 온 윤제는 그래도 강원도에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며 성적도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비참한 가정환경에 변변히 준비물 하나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수업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