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은 없다(이옥수)

 

 

이 작가 참 대단하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중3 남학생, 우울증으로 폭식을 하는 뚱뚱한 스물셋 전화상담원. 교집합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소설 <개같은 날은 없다>를 만들어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희망을 다룬 <푸른 사다리>부터 청소년의 성과 사랑, 임신을 직설적으로 다룬 <키싱 마이 라이프>를 거쳐, 가정폭력과 치유를 다룬 이 작품까지 이옥수라는 작가 참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의 문제를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아픈 점을 가장 직설적으로 그려내면서, 가장 극적인 희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잊고 산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민의 형과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의 악순환, 그리고 미나의 오빠로부터의 폭력과 상처의 악순환! 처절하고 끔찍하지만, 솔직히 우리네 이야기로부터 멀지 않은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교육이 아닌 훈육으로 자라온 우리 세대는 회초리건 주먹이건 폭력에 너무 관대했다. 아니 너무 무관심했다. 그리고 강민의 아버지는 주먹 외에는 자식과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교사인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찡코라는 교집합, 그리고 오원장 같은 징검다리, 그리고 동생과 자식을 사랑하지만 방법을 몰랐던 형과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 모든 것들(여기엔 사람, 동물, 식물 모두 포함되기에 을 사용했다)과 소통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제목이 참 의미심장한 것 같은데, 왜 그런지는 알쏭달쏭하다. ‘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고, 미나와 강민에게 펼쳐질 미래가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인상 깊은 구절>

 85쪽 하지만 어차피 우리 반 에서는 특목고 갈 애들이 없으니 숨 막히는 시험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자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벌써 몇몇 녀석들은 시험지를 받아서 폼 나게 일렬로 몰아 찍기, 지그재그, 사다리채우기 등 개성과 취향에 따라 찍기 동맹까지 맺었다.

 

105쪽 외삼촌은 내가 요즘 우울증 때문에 이러는 줄 아나 봐요. 물론 폭식증은 반드시 우울증을 동반하죠. 정신없이 먹고 난 후에, 암담하게 밀려오는 우울한 마음, 정말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이었죠. 그러나 정신과 처방 약을 먹고 난 후부터는 그리 우울하진 않아요. 무엇보다 내 의지로 이 병에서 헤어나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폭식, 우울, 정말 말도 마세요. ~ 내 자신에 대한 경멸로 그 자리에서 팍 죽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내가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금방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요,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전쟁이었죠.

 

116 정말이지 나를 정신 장애아로 몰아가는 의사나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하는 아버지나 다 짜증 난다. 물론 찡코가 죽고 나서 문득문득 녀석이 떠오를 때면 미칠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땐,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온몸을 와지끈 부숴버리거나 확 죽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147 미나씨,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오빠도 그땐 어렸잖아요. 그 어린 오빠가 왜 미나 씨를 그렇게 때렸는지 한번 생각해 봐요. 오빠에게도 뭔가 아픔이 있을 거예요. 지금도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서로가 상처를 덮어 놓고 사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지요. 어쨌든 미나 씨, 고마워요. 그 아픔을 잘 견뎌 주어서. 그리고 힘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어서.

 

155 그렇게 형은 나를 패고, 아버지는 형을 패고, 또 형은 나를 패고 아버지는 형을 패고, 아니 아버지가 형을 패고, 형이 나를 패고…… 시벌, 그럴 때마다, 난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아버지와 형한테 빌어야 했다. 잘못했다고. 정말 재수없는 인간들이다. 형과 아버지는.

 

191 어쨌든 이렇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내외가 직장에 다니느라 어릴 때부터 남의 손에 애를 돌렸더니…….

 

260 별이 유난히 총총하게 빛나는 밤이었어요. 강민이도 나도, 그렇게 묵묵히 걸었어요.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서로의 교집합인 것 같아요. 뚝뚝 분질러서 흩어 버릴 수 없는.

 

297 알고 있니? 최민욱, 나 이제 용기가 생겼어. 더 이상 비겁하게 피하지 않을 거야. 혼자서 아파하지도 않을 거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건 몹시 외로운 일이래. 나 이제 말할 거야. 더 이상 외롭게 살긴 싫으니까. 알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무늬처럼 내 눈 속에 새겨진 찡코의 붉은 눈동자가 떠오를 때도 있겠지. 그러나 그 무늬가 결코 날 아프게 하진 못할 거야! 오늘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이 맑고 투명함을 꼭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

개 같은 날은 없다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비룡소 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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