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문을 여는 시간(노경실)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12. 11. 11.
제목에서처럼 ‘우울증’에 빠진 태수의 문제가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태수가 아닌, 태수와 어릴 적 친구이자 태수가 걱정되는 ‘현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우울증’에 빠져 있는 친구에 대한 관심과 친구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태수의 우울증은 태수 부모에게서 찾을 수 있다. 태수 부모는 실상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격려하고 태수를 공룡처럼 대단한 인물로 대한다. 과도한 기대와 현실에 맞게 위로와 격려를 기대한 태수는 사람보다는 인터넷 게임과 야동에 대한 몰입으로 현실감을 더 잃어간다. 그리고 새벽 2~3시 지하 주차장에서 홀로 울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소외와 우울증이 더 깊어져 간다.
태수의 우울증은 결국 다른 사람의 신고로 드러나고, 약물 치료와 가족 여행, 특히 절친 현호, 지혁이와 협력으로 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작가는 ‘관계’에 많은 힘을 들이고 있다. 우울증을 마치 전염병처럼 번질까 걱정하는 현호와 지역 어머니, 태수 친구들의 반응을 실감나게 드러내면서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그들을 비판하고, 급기야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역량이 ‘관계’, ‘협력’이라고 강조한다. 누구나 마음 속 아픔이 있고, 관계 속에서 풀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이 책엔 작가의 목소리가 인물들의 입을 통해 지나치게 크고 깊게 자리하고 있어 어색하고, 인물에 공감하기 어렵다. 동방신기처럼 이름 앞에 별명을 붙이는 중2 남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똑똑한 현호라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캐릭터가 현실에서 얼마나 될까. 심지어 우울증에 빠진 태수가 약물 치료 후 달라진 모습은 충격적이다.
진정한 관계나 협력보다는 성적에 집착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이 만든 겉만 중요시하는 현실 속에서 나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 중학생들의 상황을 문제제기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작가의 그 의도가 잘 전달될지 고민된다.
밑줄 긋기
(22)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고, 지금은 지금 식으로 고민해야지. 나우! 지금! 이 순간은 엄연히 자기 머리와 엉덩이 힘으로 공부하는 거야. 로마 시대 청년들이 칼을 들고 싸웠다면, 너희는 책상 앞에서 책을 들고 싸우는 거지. 칼로 승자와 패자를 단번에 가르던 예전과는 달라. 이젠 시험과 경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숱한 적과 부딪혀야 하니까. 더 복잡한 싸움이 된 거지. 자, 지금부터 전쟁 시작이다. 책 펴! 칼을 들란 말이야!”
☞ 수학 과외 선생이 학습 분위기를 잡으며 하는 이야기다. 로마 청년들은 칼을 들고 싸우는 대가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도 누렸을 것이다. 21세기 우리 중학생들은 있지도 않는 적과 싸우다가 잉여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은 공부가 아니다.
(81) “엄마, 이 문제는 연예인이 되고 안 되고 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요. 그건 엄마 세대의 가치관이죠. 지금은 무조건 180이 넘어야 해요. 180이 넘든 아버지가 재벌이든 아니면 서울대 졸업을 하든, 하나는 꼭 갖추어야 해요. 어쨌든 엄마 때하고는 가치관이 달라졌어요.”
“웬 가치관? 그건 가치관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라고 해야지.”
“우리 세대한테는 키나 얼굴, 몸매도 가치관에 속하거든요. 그리고 일종의 이념이고, 계급투쟁이라고요. 얼마나 심플하고 순수하고 무차별적이에요?”
☞ 나 홀로 살아남기 위해 벅찬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모두 스펙이 된다. 특히 타고 나야하는 것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더 큰 스펙이다. 무섭다. 나치나 일제의 우생학적 논리가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어서.
(97)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너희는 왜 이 모양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를 손에 들고 주인 명령에나 따라 바쁘게 뛰어다니는 노예가 될 거야! 정신들 차려!
자유, 개성, 일탈, 해방, 독립…… 이런 말은 좋아하면서 정작 집단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너희 세대는 노에나 마찬가지야!
(129) 나한테는 아무도 없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엄마랑 아빠는 내가 공부하고 시험 보니까 내가 세상에 있는 줄 아는 거야. 선생님들도 내가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고 시험 보니까 내가 있는 줄 아는 거지.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학교랑 학원에서 만날 성적 얘기하니까 내가 세상에 있는 걸로 아는 거지. 그러니까 시험이랑 성적이란 게 없으면 그 누구도 내 존재에 대해서 관심 없을 거야. 공부 잘하는 애들만 더 귀하게 여기고. 이젠 야동 보는 것도 자위하는 것도 지겨워. 나는 진짜 사람 냄새가 그리워. 진짜 사람살이 그리워. 사람 품에 안기고 싶어. 엄마랑 아빠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안아 주지 않아. 손을 잡아 주지도 않아. 엄마랑 아빠는 혀로만 나를 상대해.“
☞ 작가의 전 작품 “철수는 철수다”가 생각난다.
(132)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늘 접하는 소식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돕자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반강제로 읽으라고 권하는 책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든자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그런 책 읽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도와? 누가 누굴 도와? 정작 도움 받을 사람은 우리야! 얼굴이랑 몸매 재탄생시키고 성적도 올리고 꿈도 확 수정하려면 도움 받지 않고는 불가능해.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 하나도 할 수 없다고!
-당장 세계가 멸망해도 내 성적이 더 문제라고. 내가 지지리 복잡인데, 누굴 도와? 웬 세계 평화?
(164) “태수는 열흘 정도 쉴 거다. 괜한 헛소문 퍼뜨리지 마라. 공갈 유포 죄로 잡는다!”
그러자 아이들 몇이 일어나 반박했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라고요. 우울증 걸린 애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아요?”
“맞아요. 우리 인권은 우리가 지켜야죠.”
담임은 가만히 아이들의 말을 다 듣고는 한참 동안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자 어떤 아이들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이마 옆에 대고 빙빙 돌렸다. (중략)
“솔직히 우리 다 까놓고 말해 볼까? 자기 마음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있으면 일어나 봐.”
침묵이 길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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