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 시속 370km(이송현)


책 표지를 보고 ‘스키 점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말하는 ‘시속 370km’는 매가 사냥을 할 때 하강 속도라고 한다.

주인공 동준이는 스트레스를 오토바이 질주로 풀어간다. 비록 동네 중국집 ‘만리장성’의 배달용 오토바이로만 속도를 느끼고 있지만 언젠간 ‘로드스타’ 같은 제대로된 바이크를 타고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아이다.
그렇게 돈이 필요한데, 아버지는 매잡이에 빠져 가족은 물론 집안 형편을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와 별거까지 하게 되며, 매 순간 자신이 아버지가 키우는 매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며 서운해한다.

그러나 동준의 목소리에는 비관과 서운함이 가득하지는 않다. 매에 빠져 있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자리를 매가 앗아간 것 같아 불만이기는 하지만 아버지 주위의 사람들이 다 떠나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마음에 자신의 꿈 바이크를 사기 위해 매잡이를 배우기로 아버지와 계약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매잡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또 닭대가리라 부르며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길들이기 시작했던 매 ‘보로’와 인응일체가 돼 간다. 그러면서 바이크를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마음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로 찍으면 말과 다르게 표현되는 마음을 드러내는 클로즈업할 화면이 참 많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관계 속에서 문제를 이겨내는 점도 마음에 든다.
동준의 절친 ‘똠양꿍’은 필리핀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아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심지어 그 상처 때문에 필리핀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송동준과 의리 때문에 남는다.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나예리’역시 직설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관계 속에서 아픔이 드러나고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만 찍는 절차만 남겨둔 동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지막 서로에 대한 배려는 잊지 않는다.

아버지를, 또는 어머니를 존경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분들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때론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53) “좋아서 했지. 좋아서 하긴 했는데,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진 않더라.”

“왜요? 좋아서 하면 당연히 행복도 따라오는 거 아니예요? 아님 뭣하러 개고생하면서 하는 건데?”

“현실이 그래. 이 땅의 현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에게 아버지 곁에 남아 달라고, 가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237) 얘가 그래서 그렇게 마음을 못 잡았나?

사람에게는 살면서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아버지가 그랬다. 누구에게는 그 사정이란 것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울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그것이 죽고 싶은 만큼 힘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람이 이겨 내지 못할 정도의 사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의 믿음이었다.

 

(271) 보로였다. 보로가 꿩 사냥에 성공했다. 날카로운 발톱 아래 꿩 한 마리가 깔려 있었다. 새하연 시치미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돌아보는 보로. 샛노란 눈자위, 그 가운데에 또렷이 박혀 있는 나와 똑같은 검은 눈동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피가 땡긴다!’

인응일체. 사람과 매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평소엔 생각나지도 않던 말들이 또렷이 떠오른다. 보로의 눈동자 속에 내가 있고 나의 눈동자 안에 보로가 있을 것이었다. 내 기억에서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냥이었다.

 

내 청춘, 시속 370km
국내도서
저자 : 이송현
출판 : 사계절 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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