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이옥수)

'파라나'는 '마음이 푸르러서 언제나 싱싱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파란 아이'를 줄인 말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는 퍽 부담스러운 단어인 '착한다', '착한 아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착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인데, 대상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단어이기에 '착하다'는 절대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착하다가 자주 쓰이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우리 선생님은 착해요', '우리 아이가 착해서 문제예요', 또 '착한 가격'이런 말을 들으면, 착하다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 자체가 힘의 균형을 잃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한쪽의 언어, 정치적인 단어라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 정호는 장애를 가진 부모가 싫어 어렸을 때 엄마를 멀리 했고, 마음의 병을 가진 어머니를 고치려는 아빠의 부담 때문에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다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정호는 형편도 괜찮고, 특별히 착한 일을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사이버에서는 오해로 팬클럽에 독설을 하며 갈등과 문제를 키운다. 정호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키우는 애완동물 '전갈'과 전갈의 이미지 이야기하는 '전갈법'도 착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정호에게 엄마의 세상 누구보다 착하다는 과장되고 편협된 정보가 빌미가 되고, 학교는 학교대로 효행의 의미를 되새기기 힘든 시대에, 적당한 수상자를 찾다 효행 대상자로 추천한다. 그리고 상금 100만 원의 대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호는 상을 거부한다.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호소하기 위해, 착하다는 말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이야기 속에는 경비원 아저씨도, 심청이도 결국 착하다는 말속에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단어가 된다. 특히 심청이에 대한 정호의 의견은, 착하다는 말이 덕업상권적이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정치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착하다'는 수직적인 관계의 용어는 '존중'이라는 수평적인 관계의 의미를 가지고 부모와 자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를 제시한다.


'착하다'는 말에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문제제기하는 정호가 그래서 '파라나'이다. 한편, 효은이와 정호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은 결국 모두가 밟아야 할 단계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되어야하는 통과의례적인 것들이, 우리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인상적인 구절>

(148) 싫다, 좋다, 싫다, 좋다... 싫은 것도 좋은 것처럼, 아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정직하게 생각을 나타낼 기회도 주지 않고 무조건 착하다는 말로, 아니 착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 아버지, 불쌍하다. 그런데 불쌍한 것과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은 다르다. 이것은 자신이 살아내야 할 현실이고 삶이다. 그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는, 묵묵히 홀로 걸어가야 하는...
 
(210) "그게 다 뻥이라고. 심청이는 자기가 죽어도 아버지 눈 못 뜬다는 것 다 알았어. 그러니까 나중에 왕비가 되고 아버지 찾으려고 맹인 잔치를 벌였잖아. 눈 못 뜬 아버지 찾으려고."
"그럼 왜 심청이가 스스로 팔려 갔을까?"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한창 사춘기 아이가 허구한 날 밥 얻어 오고 일해야 하잖아. 거지로 살아 봐, 애들이 만날 놀릴 건데 창피해서 미치지. 더 살아 봤자 희망도 없잖아. 뭐,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지 주제에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할 수도 없고. 자살이라고 하고 싶던 차에 죽여줄 인간들이 떼거리로 나타났으니 따라간 거지. 어린 애가 죽으러 간다고 해도 구조할 생각도 안 했던 미친 세상이지. 자살 방조, 인신매매, 모두가 공범이야, 공범."
 
(265) 누가 낳아 달라고 했냐고... 아들의 그 한마디 외침이 아버지를 무너지게 했다. 그 소리, 바로 그 소리였다.
누가 낳아 달라고 해냐고요!
어린 날, 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에게 외쳤던 그 말! 오늘 부메랑처럼 돌아와 사정없이 가슴에 붉게 밝혀들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이 맞고 들어온 것을 보자 놓아 버리고 싶었던 생각은 사라지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왜 다 큰 녀석이 맞고 있었나, 손발은 뒷다 뭐하려고! 자신이 아들을 때린 것도 가슴이 쓰려서 죽겠는데 그 꼴로 나가서 맞고 들어왔으니...
 
(279) 야, 백정호. 아무도 널 공격하지 않아. 그건 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이라고. 이 세상 누구도 널 공격하지 않아. 혹, 누가 공격하든 무슨 상관이야. 굳세게 살아가면 되지. 넌 지레 겁을 머고 두려워했던 거야. 네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괜한 열등감과 편협한 생각으로 네 자신을 숨기려 했지, 모든 일에... 이젠 그 두려움에서 비켜서지 마. 절대 지면 안 돼, 전갈법이 있잖아. 전갈법? 그래 독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지. 독을 품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고. 자존심을 지킨다는 뜻이야. 전갈답게! 이렇게, 정호는 전갈을 집어 손등에 올렸다.

 

파라나
국내도서
저자 : 이옥수
출판 : 비룡소 20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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