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이근미)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가족과 갈등할 때
- 2016. 12. 24.
책을 읽으며 누구에게든 글쓰기가 그 자체로 치유와 성찰을 통한 긍정적 에너지를 충천하는 활동임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엄마가 17세를 회상하며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를 재단하지 않고 그 과정을 인정하는 점이 좋았다. 당시의 결핍 또는 갈망을 채우려 선택했던 모습들이 살아보니 어리석은 게 아닌,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해야, 현재 딸의 선택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람이 홀로 성장할 수 없듯, 이 책에는 멋있는 어른들, 사회인들이 많다. 지금의 어른들의 모습과 견주어 볼 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성숙해 졌을까.
<인상 깊은 구절>
(51) 회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부산여고를 까맣게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다. 갑자기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나는 며칠 전 소녀 적 고민을 날려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나이를 먹어버린 그 생활은 매우 흥미로웠다.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은 굉장히 괴로울 거라고 무작정 단정하는 건 오만한 일이다. 사람은 어디서든 즐거움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또는 어느 순간 진짜 즐겁고 진짜 잊고 살기에.
(71) 어쨌거나 귀결은 내가 '어떻게 성희처럼 출중한 아이와 친구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으로 모아졌다. 충격이었다. 불과 1년 전, 중학교 때만 해도 성희는 나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성희와 언감생심 비교 대상도 될 수 없었다. 중학교 때는 '우수반에 들어갔느냐 아니냐'가 우리들의 가치판단 기준이었건만, 이젠 달라졌다.
(117) 아마도 현실이 암담해서 가출했을 겁니다. 공부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거나,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아참, 정말로 공부가 재미없고 정말로 어려워서 가출하는 애들도 있습니다. 친구 꾐에 넘어가서 가출할 수도 있고요. 가출해보셨으니 아실 테지만, 열일곱 살이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146) “아 네, 계장님. 계산기예요. 전자계산기. 주판 대신 이걸로 계산하려고요. 저 주산 할 줄 모르잖아요.”
그 순간 어디선가 팡파르가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하지만 머리는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했다. 3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하여 주산 단수를 따지 않아도 손쉽게 계산할 수 있는 계산기가 등장하다니, 이거야말로 구석기시대에 불을 발견한 것에 버금갈 만한 사건이 아니던가. 모두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김양의 표정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204) “다혜와 소통하면서 앤이 잃어버린 마음을 찾았으면 해. 열일곱 살에 잃어버린 가슴을. 성취만이 최선은 아니야.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때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오다가다 보는 게 더 중요하잖아. 갑자기 기상이 악화돼 정상에 못 올라가더라도 시골 이발소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아저씨가 바리깡으로 머리 미는 걸 구경하는 것도 인생이거든. 사실 나 이런 거 프랑스 영화 보면서 깨달은 거야. 할리우드 영화처럼 숨 가쁘게 넘어가면서 끝장을 본다고 속시원한 건 아니거든. 느릿느릿 이해가 될 듯 말 듯해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남는 거, 그게 좋은 영화더라구. 삶은 아름다운 이미지의 모음인 거 같아.
(268) 모두들 떠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회사 다니다 보면 마음 붙일 곳이 없어져. 세월이 쌓여도 말야. 집 떠나서 사회인이 되면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게 최고야. 사람은 금방 변하거나 떠나고, 상황만 남게 되지.”
이강우 씨가 공장 뒤 개울 앞에서 해준 얘기가 실감났다. 사람은 떠나고 상황만 남게 되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마음과 함께.
(333) “미래는 아무도 몰라. 우리가 계획한 대로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건 우리의 몫이야. 우리의 계획대로 될 수 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아 일이 무산되면 얼마나 애석하겠니. 무경아, 초심을 잃지 마. 152센티의 부적격자였는데도 넌 잘해냈잖아. 니가 우리 실험실 최고의 요원이었다는 거 기억해. 무경아, 우리 꼭 정상에서 만나자. 정상은 내가 만족하는 곳, 나를 즐겁게 하는 곳, 바로 그 지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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