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동안 한 편씩 야금야금 읽었다. 첫 작품으로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을 만난 것이 그렇게 좋은 시작이 아니어서 한동안 묵혀두었다가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한 편 씩 읽어나가는데,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고 묵직한 작품들을 만나면서 18세기, 19세기의 미국 단편 소설들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았다.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이라 여겨지지만 이 위대한 작품들을 내 짧은 지식으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미 수천, 수만 편의 논문들이 나와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읽었다는 증거라도 남기기 위해 각 단편들에 대한 짤막한 감상 메모를 남겨 본다. *젊은 굿맨 브라운(너새니얼 호손) ✎ 너무 몽환적이어서, ‘이게 무슨 의미지?’하고 물음표만 남겼던 작품이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왜 굿..
올해 5월 성취기준과 5·18 수업을 연계하여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으로 “저수지의 아이들”을 선택했다. 아내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5·18의 진실을 다루면서 5·18과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소설로 잘 표현했으며, 주인공 선욱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를 낸다는 점에서 성장소설로도 좋은 작품이었다. 중1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수업은 책을 각자 정리하고 질문하며 읽은 뒤, 모둠 별로 공통 질문(가장 인상 깊은 장면과 책에 나타난 혐오표현과 이유)과 모둠 자율 질문을 정해 책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대화 내용은 패들렛에 그대로 공유했으며 서로 댓글을 달며 학급 전체가 소통하도록 했다. 수업 마무리는 ‘서평 쓰기’로 ..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하느라 아이들 방을 차지한 채 며칠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인후통과 오한, 고열은 많이 사라졌고 코맹맹이 소리와 기침만 살짝 남았다. 읽을거리를 찾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라는 부제를 보니 코로나와 같은 미생물을 다룬 책인 것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쓸모가 있을까? 우리 인간의 시각에서라면 아니겠지만 지구의 시각에서 보면 이유가 있으니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으리라,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을 읽다보니 코로나바이러스는 생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크기가 작아 연구대상으로는 미생물에 포함한다고) 이야기를 읽어보니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은 모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4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비슷한 흐름의 글들이며 쉬엄쉬엄 생각하며..
학교자치 연구모임에서 같이 읽어 볼 책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 양극화와 능력주의, 무임승차에 대한 혐오 문제를 다루고 있고 방학 때 저자와의 만남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학기 중에는 일하느라 바빠 크게 생각하지 못했고, 방학 기간에 잡힌 저자와의 만남일은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자전거 국토종주를 다녀올 예정이라 마음에 담지 않았는데 웬걸,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책이 왔다.' 제목 “새로운 ―가난이 온다” 이전과는 다른 이유의 가난이 온다는 말인 듯싶다. 표지 삽화가 제목을 부연 설명해 주는 듯하다. 세상을 뜻할 것 같은 육면체 끝에 홀로 앉은 개인, 육면체 위에 올라앉아 있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육면체 옆에는 위로 오르는 사다리가 보이지만 위까지 연결돼 있지 않..
제목에 이끌렸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라니. 뇌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담고 있겠다는 기대감을 주는 수식어들이다. 읽어 보니 정말 ‘이토록 뜻밖의’ 뇌에 대한 이야기여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뇌의 핵심 역할이 뜻밖에도 '생각'이 아닌 '생존'이라고 한다. 동물들의 뇌를 비교한 결과 인간의 뇌에 생각을 위한 특별히 진화된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만의 고유한 본성인 '생각'은 어디에서?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네트워크로 조직된 뇌의 프로세스로 인한 결과라고 한다. 즉 뇌가 생존을 위해 외부 감각을 과거의 경험 속에서 기억해서 해석하고 예측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인간의 신체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과정의 결과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
오랜만에 600쪽이 넘는 책을 손에 쥐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보고 아동용 문고본으로 몇 번이나 읽은 적이 있는 그 허클베리의 이야기였기에 소설의 두께가 만만치 않았지만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소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디언 조와 얽힌 동굴의 황금을 얻은 후()에 펼쳐지는 허클베리 핀과 짐의 로드 스토리(무비)? 언뜻 떠오르는 ‘그린북’이나 ‘맨 인 블랙’(요건 좀 아닌가?)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혹은 어릴 적 감명 깊게 봤던 드라마 외팔이 범인을 쫓는 ‘도망자’ 시리즈 느낌도 나고.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둘 다 각자의 사연을 숨기고, 도망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뚜렷한 줄거리는 없지만 그곳에서 ..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검은 고양이’나 ‘어셔가의 몰락’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기억에 남는 선명한 작품들을 알게 되었다. 영화 이 연상되는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라든가, 흡혈귀 관련 영화나 소설과 연관 있어 보이는 ‘리지아’, 요즘 공포영화(와 같은)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윌리엄 윌슨’,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게 하는 ‘구덩이의 추’,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연상하게 하는 ‘붉은 죽음의 가면극’, 또한 홈즈 이전 추리의 시조새같은 캐릭터 ‘오거스트 뒤팽’의 등장까지! 마치 버라어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독서였다. 솔직히 지금 오락영화, 특히 공포나 괴기 영화의 영감의 원천은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들이 아니었을까? -인상 깊은 구절- **인상 깊..
-끝까지 읽고 첫장을 다시 펼쳐 읽으니 무슨 말인지 알게 된 책. -어린이 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사회풍자 문학이었다는 것(단어, 사건 하나하나 마치 작가가 마련해 놓은 보물찾기 마냥 독자들의 정독을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소인국, 거인국까지는 예상한 바와 같았으나 라퓨타를 다룬 3부부터는 충격 그 자체. 지금의 시각으로도 엄청난 SF적 상상에 날카로운 풍자까지. 특히 불로하지 않는 불사의 스트럴드부러그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아집과 편견으로 늙어가는 인간에 대한 가장 끔찍하고 무자비한 저주 혹은 비판이 아닐까? -제4부 후이늠 종족과 야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을 떠올린 것이 나만은 아니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의 인간들보다 책 속의 야후는 끔찍하..
동료들에게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담양공공도서관과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찾았지만 모두 대출 중이었다. 일단 예약을 해 두고 기다렸는데 다행히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금요일 점심 때 빌릴 수 있었다.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피카레스크식 구성 속에 편의점 always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그들의 공통점은 삶이 힘들고 외롭고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이지만,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독고 시의 사람에 대한 접대와 배려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관계를 회복할 용기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에서 독고씨 역시 술로써 회피하려 했던 자신의 과거와 대면할 힘을 얻고. 이야기 진행에 무리가 없고, 적절하게 유쾌한 부분도 있어 좋다. 생각해 보니..
작년(2021) 담양공공도서관에 들렀다 전남공공도서관에서 이 책을 일반인 대상 추천도서로 홍보하는 걸 보았다. "거짓말이다"를 통해 김탁환 작가의 필담도 경험했고, 월간지 "전라도닷컴"에서 웃는 얼굴로 우리 쌀을 소개하는 미실란 대표의 이야기도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가 작년 8월 하순이었다. 들녘의 빛깔이 녹색에서 미세하게 바뀌고 있을 때였다. 나 역시 여름 방학을 마치고 기운을 내서 2학기를 살아야 하는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2년 동안 학교 밖에서 생활을 하다 복귀한 학교는 코로나로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꼈다. 하루하루 가는 시간이 아쉬웠는데 얼른 일 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어느덧 지금 내 나이 대의 선배들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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