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_영국(김영희 엮고 옮김)

이번에는 영국이다. 지난번 미국 단편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영국 단편들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약간은 싱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그라든 팔’, ‘유품’, ‘차표주세요’, ‘가든파티’, ‘지붕 위의 여자’는 미국 단편들과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고 할까? 여성작가들도 미국 단편에 비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이 주는 인상이 남다르면서도 생생했다.


1. 신호수(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소설 작품은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소설을 쓰는 작가, 입담 좋은 이야기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신호수는 끝까지 읽으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정말 유령이 있는 것인지, 고독한 업무 속에서 우연히 본 일련의 헛것 때문에 정신 착란을 일으킨 것인지, 신호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힘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29쪽 "기관사의 경고에는 그 불운의 신호수가 자기를 따라다닌다고 했던 그 말만이 아니라, 신호수가 해 보이는 몸짓을 보면서-신호수가 아니라-바로 내가, 그것도 속으로만, 떠올린 말도 들어 있었다." 이 부분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모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궁금증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 오그라든 팔(토마스 하디)

농장주의 사생아를 낳은 로다 브룩, 그리고 사생아인 그의 어린 아들, 또 농장주와 이제 막 결혼한 어린 신부. 모든 불행의 씨앗은 늙고 탐욕스러운 롯지 농장주에게 비롯되었건만, 아들을 통해 어린 신부를 염탐하는 로다나, 저주(?)로 인해 팔이 오그라든 어린 신부 둘 다 끔찍하고 불행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버린 로다, 또 젊은 사형수의 목에 팔을 대야만 저주가 풀리는 젊은 거투루드 모두 죄가 없는 희생자일 뿐인 것 같다. 남성중심적인 신분사회의.


3. 진보의 전초기지(조지프 콘래드)

영국문학 하면 영국 내의 이야기가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국문학의 소재에 대한 편견을 넘어설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얼마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했는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대영제국이라는 환상에 가려진 식민지의 모습을 일부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립된 식민지에서 비정상적으로 미쳐가는 카이어츠와 칼리어가 제국주의의 민낯을 빗댄 것은 아니겠지만,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다.

(100) “나는 배도 고프고 몸도 아파요. 농담이라니! 위선자는 질색이야. 당신은 위선자야. 노예상이잖아. 나도 노예상이고. 이 저주받을 나라에는 온통 노예상뿐이야. 아무튼 오늘은 커피에 설탕을 타야만 하겠어!”


4. 애러비 / 구름 한 점(제임스 조이스)

예전 <더블린 사람들> 읽었을 때가 아련히 떠오르는 작품들이었다. 
다 끝나버린 축제의 마지막 장면 속에 소년의 풋풋한 짝사랑이 식어가고, 또 닿지 못할 친구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다 아기 울음 가득한 현실 한복판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꼭 더블린은 아니어도 우리 이웃 혹은 나의 삶 어딘가에서 포착되었을 익숙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두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영국보다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19) "그 어둠 속을 올라다보면서 나는 허영에 조종당하고 조롱당한 짐승같은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고통과 분노로 타올랐다."

(132) "자기와 친구 인생의 현저한 차이가 날카롭게 느껴지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허는 출신도 학력도 그보다 못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친구가 해냈거나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천박하고 번지르르한 기자생활보다 뭔가 더 고상한 일을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가? 그 안타까운 소심함 때문이다!"


5. 큐가든/ 유품(버지니어 울프)

‘큐가든’은 정말 정신없을 때 읽어서 그런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품’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우아하고 예쁘고 친절하며 내조 잘하는 모든 것이 완벽한 귀부인이었던 앤젤라(이름도 천사구만)의 비밀이 한 장씩 벗겨지며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정말 소름 돋을 정도였다. 자신과 계급이 다른 개인 비서 오빠와 못다 이룬 사랑을 죽음을 통해 이루려 했던 앤젤라는 남편의 예쁘고 자랑스러운 치장품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다운 결말! 

(161) 그러나 거기, 죽기 바로 하루 전,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할 용기가 있을까?” 그러고는 끝이었다.

(162) 그도 자기에게 남겨진 유품을 받은 셈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녀는 애인과 다시 결합하기 위해 인도에서 내려섰던 것이다. 남편인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도에서 내려섰던 것이다.


6. 차표 주세요 / 말장수의 딸(D.H. 로런스)

로렌스의 작품은 왜 이렇게 비슷하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아들과 연인>이 떠올랐고, <아들과 연인> 속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인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과 이 소설 속 바람둥이 존 토머스와 겹쳐지는 것이었다. ‘차표 주세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존 토머스에 의해 농락당하지만 복수하는 장면에서는 무서운 마녀들로 변신한다.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는. 로렌스에게 여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서운 캐릭터로만 등장하는 것일까?
그리고 ‘말장수의 딸’도 마찬가지. 도대체 이 의사 뭐지? 동정인지 사랑인지, 자살하려는 메이블을 살려주고는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사랑을 선언하는 도대체 이 의사 뭐지? 많은 사람들이 연민과 관심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려는 걸까? 역시 모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8) “끔찍한 기분이에요. 당신이 나를 끔찍해한다는 걸 알아요.” “아니요, 난 당신을 원해요. 당신을 원해요.” 그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한테는 남자가 자기를 원하지 않는 것보다도 더 두렵게까지 느껴지는 그 끔찍한 어조로. 맹목적으로.


7. 가든 파티(캐서린 맨스필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서 ‘죽음’을 맞닥뜨린 주인공. 혈육이 아닌 가난한 이웃의 죽음을 통해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23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에게 무언가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라는 큰 소리로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이 모자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말했다.


8. 지붕 위의 여자(도리스 레씽)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한 느낌의 소설이랄까? 6월 뜨거운 태양 아래 아파트 옥상에서 배관 작업 중인 세 명의 인부들. 그들은 일광욕을 하는 여성을 발견한다. 땡볕 아래 노동을 해야 하는 남성들, 그리고 여유 있게 태양을 즐기은 유복해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 관심은 있지만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해리, 현재 신혼이지만 그 여성에게 가장 열광하고 가장 분노하는 스탠리, 어리고 순수(?)한 톰. 줄거리는 매우 단순한데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림처럼 그려지는 듯한 소설이었다. 해설자의 논평처럼 계급, 젠더, 세대 등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정말 인상적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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