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SF단편집)


올해부터 새로 시작한 청소년 소설 읽는 모임에서 SF 단편집으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모임 날짜에 맞춰 급하게 읽기 시작해서인지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모임 샘들도 책이 잘 안 읽혀 끝까지 읽은 샘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각 단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소재도 참신하고 반전 있는 작품들도 많았다. 새삼 책이 달리 보이며 다시 읽어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샘들의 소감을 더해 정리해 본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알골(장강명)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초능력자들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지구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난다. 그래서 화성 근처 위성에 세 초능력자가 서로 통제하며 결계를 치고 살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들을 알골이라 부른다. ‘나’는 신기한 일을 취재하는 작가인데 나의 글을 보고 알골들이 초대해 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나’는 각성하게 되고 스스로 이름을 ‘볼드모트’라고 정한다. 어디서부터 반전일까?

2.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임태운)
달에 링이 생기면서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 당연히 빌런도 나타나고.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슈퍼 히어로들이 슈퍼 빌런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시민과 히어로를 연결해 주는 ‘히어로콜’ 앱에서 히어로를 평가하다 보니 인정욕구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관종은 인간의 본질일까.
모임 샘들은 ‘리얼맨’을 예로 오히려 평사시 성실하고 남을 부축하는 ‘기술’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주는 공익근무요원 우람이가 더 히어로일 수 있다는, 슈퍼 히어로가 아닌 일상의 히어로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히어로는 ‘달인’으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에게 감춰져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수업과 연결 지어도 좋겠다.

(70) “빌런은 왜 태어나는가! 비대한 인정욕구를 가진 히어로가 부족한 슈퍼파워를 긁어모아 폭발시키려다 보니 어둠의 길로 빠져 버리고 마는 거야. 충분히 뜨거운 불씨는 로켓을 우주로 날려 보내지만, 어중간한 불씨는 성층권에 가지 못하고 떨어져 땅 위를 불바다로 만드는 거라고.”
*히어로에게도 인정욕구가 있겠지만, 시민들의 지나치고 삐뚤어진 히어로의 대한 열망, 잘못된 히어로에 대한 소망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슈퍼 히어로 아닌 일상의 히어로를 기대한다.

 

3. 저격수와 감적수의 관계(이수현)
순간이동 능력자(저격수)와 예지력을 가진 능력자(감적수)의 이야기. 제목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능력자가 원전 폭발물 처리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필요성과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히어로들 인간이다. 멘털이 흔들리기도 하고 협력해야 해결 가능성이 높고. 슈퍼 히어로가 있어도 100% 원전의 안전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 웨이큰(구병모)
메타버스로 현장체험하는 세상, 그런데 프로그램 오류로 체험하던 아이들이 가상현실에서 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일상의 히어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추어진 속사정을 히어로의 외국인 아내가 서툰 우리말로 표현하며 우리 사회를 풍자한다. 외국인 아내의 등장으로 주제가 더 잘 전달되었다.

(140)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신 타이츠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요.


5. 영웅도전(곽재식)
홍길동전과 허생전을 섞어놓은 듯한 이야기이다. 해적이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지배층은 매관매직, 당파 싸움, 형벌만으로 정치를 한다. 이런 세상일수록 영웅을 더욱 찾게 된다. 그나마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여 민중에게 큰 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청해진 시대의 마감을 그럴듯하게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에게 사용하는 높임말이 다르다. 의도가 무엇일까.

6. 캘리번(듀나)
혹시나 싶어 출판 연도를 보니 코로나 이전에 지어졌는데 코로나가 떠오르는 이야기다.
적사병이란 질병 이후 ‘프로스페로’라는 독립적인 생명체(시체조각들을 엮어 살아가는 뇌 없는 생명체)가 창궐하고 그 영향으로 알파 히어로들이 생겨난다. 인류는 ‘프로스페로’의 힘을 갖기 위해 연구 과정에서 많은 히어로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우두머리를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더 큰 위험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를 어렵게 만드는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을 것이다. 새로운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만일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그 대응 과정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 같다.

7. 주폭천사괄라전(dcdc) 
제목에서 술 냄새가 강하게 난다. 이른바 편의점의 개저씨들을 소재로 했다. 중년이란 말속에 안타까움이 담겨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중년은 빌런으로 통할 수도 있다. 편의점 아저씨들은 헛헛한 속을 술로 채울 것이 아니라 소통으로 채워야 한다. 배려심 넘치는 남자의 등장으로 여자 히어로가 돋보인다.

8. 로그스 갤러리, 종로
초인과 정상인이 공존하는 세상. 정상인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언론을 통해 초인에 대한 혐오를 끊임없이 조장하여 마녀사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억울할 수밖에 없는 초인 일부가 민원도 제기해 보지만 결국 묵살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항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인가 정당한 힘만을 사용할 것인가. 이야기 속에서 문제제기하고 있지만 다양한 논의를 정당화하지 않는 권력과 언론 등 사회구조는 그대로 두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의’라는 단어가 진영에 따라 달리 쓰이는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합의점이 필요할 것 같다.
파문의 시작점으로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파원(波源)’. 소설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충분한 정보와 토론 등이 보장되지 않는 기울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상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

(300) “나라에서는 초인들이 무서워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그딴 짓을 했어. 그렇게 사방에 뿌려놓은 것들이 지금 다 기어 나오고 있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왜?”
“그냥 한 거야. 어떻게든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서로 돕거나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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